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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란 '두 개의 전선' 직면한 미국 [박수찬의 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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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01-11 06:00:00 수정 : 2020-01-11 10:3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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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과 동아시아 정세가 요동치고 있다. 미국의 ‘눈엣가시’인 이란과 북한 때문이다.

 

지난 3일 이라크 바그다드 공항에서 미군의 무인기 폭격으로 이란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 가셈 솔레이마니가 사망하자 이란은 8일 이라크 주둔 미군기지에 탄도미사일 수십발을 발사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방식으로 당한 만큼 돌려준다는 이란의 보복 의지가 담긴 조치였다.

미군의 드론 공격으로 사망한 가셈 솔레이마니 이란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 세계일보 자료사진

북한도 지난 1일 발표된 노동당 전원회의 결과에서 “새로운 전략무기를 보게 될 것”이라며 미국의 압박에 맞설 의지를 재확인했다. 미국으로서는 북한이 개발한 새 전략무기가 동해상을 넘어 북태평양에 떨어지는 모습을 봐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美의 대외 의존도 약화가 ‘불씨’

 

스스로를 ‘거래의 달인’이라 부르는 트럼프 대통령은 기존의 전통적 외교와는 다른 정책을 구사한다. 이란에 대해서는 강경 일변도의 압박을, 북한에는 외교적 해법을 지나치게 추구했다.

지난 4일 미 육군 82공수사단 장병들이 중동으로 이동하기 위해 수송기 탑승을 기다리고 있다.  AP통신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대이란 외교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전통적인 외교가 아니다. 지나치게 경직됐거나 낙관적이다”라고 지적한다. 우방국들과 보조를 맞추면서 일정 수준의 억제와 제재완화를 연계한, 부분적 합의를 통한 외교를 배척했다는 것이다.

 

이같은 외교정책의 원인은 미국의 에너지 의존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미국이 중동에 개입했던 가장 큰 이유는 석유였다. 석유는 전깃불을 밝히고 자동차를 움직이게 하는 연료가 아니다. 우리가 쓰는 거의 모든 물건을 만드는 재료다. 석유가 없다면 인터넷도 휴대전화도 비행기도 없으며 농사조차 제대로 짓지 못한다. 때문에 미국은 중동 정세를 자국에 유리하도록 유도하면서 분쟁을 억제하는 전략을 추구했다.

 

하지만 지금의 미국은 예전과 다르다. 중동의 유전이 없어도 미국은 에너지를 충분히 확보할 수 있다. 미 본토에 불어닥친 셰일 혁명 때문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향후 5년간 석유시장 전망 보고서에서 미국이 2021년 석유 수출량이 수입량보다 많은 순수출국이 되고, 2023년 하루 수출량은 러시아보다 많은 890만 배럴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은 지난해 하루 평균 1200만 배럴의 원유를 생산해 세계 최대 산유국이 됐다. 2024년 미국의 산유량은 1370만 배럴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이 8일(현지시간) 대국민성명에서 “우리는 지금 세계 1위의 원유와 천연가스 생산국이다. 우리는 독립적이므로 중동 원유가 필요하지 않다”고 말한 것도 이같은 자신감 때문이다.

4일(현지시간) 이란 시아파 성지 쿰에 위치한 잠카란 모스크에 '피의 복수'를 뜻하는 붉은 깃발이 내걸였다. 뉴스1

에너지를 자체 조달하고 수출까지 하면서 미국은 석유에 발목잡힌 외교에서 벗어났다. 원유 수급에 필요한 정세안정을 위해 외교적 ‘양보’ 또는 ‘절제’를 해야 할 필요가 사라진 것이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2015년 이란과 핵합의를 한 것은 이란 핵문제가 중동 정세를 위협해 국제유가가 폭등할 가능성을 의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이란이 솔레이마니 사령관의 죽음에 대해 강경 대응 기조를 유지하면, 국제유가는 더욱 올라간다. 미국은 원유를 팔아 더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다.

 

북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트럼프 대통령은 비핵화의 대가로 경제적 번영을 강조했지만, 이는 선(先)비핵화를 전제로 한 것이었다. 북한의 반발에도 이같은 기조는 변하지 않았다. 북한이 미국의 에너지 수급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양보를 할 이유는 없었던 것이다.

 

◆북한과 이란을 동시에 상대할 수 있나

 

솔레이마니 사망 이후 사우디를 비롯한 중동 내 미국의 우방국들은 침묵을 지켰다. 북한은 선(先)비핵화를 거부하고 있고 중국과 러시아는 제재 완화를 주장하며 미국의 입장에 맞서고 있다.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오른쪽)이 핵 연구시설 내 관련 장비들을 돌아보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반면 이란과 북한은 수십년 동안 이어진 협력관계 속에서 우군을 확보하는 작업을 지속했다. 

 

1970년 외교관계를 맺은 북한과 이란은 반미 감정을 공유하면서 협력 관계를 강화해왔다. 1980년대 이란 이라크 전쟁 당시 북한은 이란에 탄도미사일을 제공했으며, 1990년대 이후 관련 기술과 부품을 수출했다. 이란의 이번 공격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키암-1 탄도미사일은 북한이 만든 스커드 C형을 바탕으로 개발됐다.

 

양국간 탄도미사일 기술 협력은 2013년 이후 소강상태지만, 북한은 2018~2019년 고위급 대표단을 이란에 보내는 등 외교관계 유지에 공을 들이고 있다.

북한과 이란은 중동 내 핵개발에도 공동 참여한 바 있다. 2002년 7월 시리아와 이란, 북한은 시리아 영토에 북한이 원자로를 건설하고, 이란은 20억 달러를 지원하는 내용의 합의문을 체결했다. 영변의 5MW 원자로와 유사한 방식으로 건설되던 원자로는 2007년 9월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파괴됐다.

 

이란은 북한 외에도 중동에 대리군을 만들어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이라크의 친(親)이란 시아파 민병대와 더불어 예멘 후티 반군과 레바논 헤즈볼라, 시리아의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 등은 이란의 든든한 우군이다. 이들은 대미 도발을 잠시 멈추고 있으나, 언제든 미국을 향한 공격을 감행할 능력이 있다.

북한 권력서열 3위인 박봉주 노동당 부위원장(붉은 원)이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주재한 당 중앙위원회 제7기 5차 전원회의 4일 차 회의에 참석한 것으로 확인됐다. 1일 조선중앙TV가 보도한 당 중앙위원회 제7기 5차 전원회의 4일 차 회의가 끝난 후 박봉주가 휠체어를 탄 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같은 상황에서 북한이 신형 전략무기를 선보이면서 도발에 나설 경우 미국으로서는 ‘두 개의 전선’에서 군사적 대응을 취해야 하는 어려움에 직면하게 된다. ‘두 개의 전쟁에서 승리한다’는 윈윈(win-win) 전략을 고수했던 미국이지만, 현재 군사력으로 이란과 북한의 도발에 동시 대응하는 것은 쉽지 않다.

 

중동 지역은 유럽과 아시아 국가 석유 수급에 여전히 영향을 미치는 곳이다. 따라서 트럼프 행정부는 이란 문제 해결에 집중하고, 북한은 일본 열도 너머로 미사일을 쏘거나 핵 관련 시험을 실시하지 않는 한 현상 유지에 치중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러한 기조가 굳어지면서 북미 대화의 정체 국면이 장기화되면,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우리 정부의 노력은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할 수 있어 향후 미국의 태도와 중동 정세 변화에 관심이 쏠린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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