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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정보 빼내 카톡 사기… 악성앱 설치 신고전화 가로채 [진화하는 보이스피싱]

입력 : 2019-12-30 06:00:00 수정 : 2019-12-30 07:5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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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 악용 피싱 방식 교묘해져 / 9월까지 4817억 피해 ‘역대 최대’ / 메신저 ID 도용한 금전탈취 기승 / 가짜 檢 직인 영장으로 계좌 캐기도 / 경기악화로 영세상인 등 피해 급증 / 작년 피해액 70% 대출 빙자한 수법 / 승인 등 조건으로 선이자 받고 잠적 / 檢 “통장 빌려주거나 중개 엄중처벌” / 피해 땐 112신고·금융기관 연락 먼저 / 범죄 연루 출두 땐 인근 署 이첩 가능

퇴근 시간이 가까워진 오후, 낯선 번호로 전화가 왔다.

“서울중앙지검 첨단과학수사부 김동석 수사관입니다.”

굵직한 목소리의 김 수사관은 ‘인천에서 씨티은행 계좌를 개설한 적 있냐’고 물었다. ‘없다’고 답했다. ‘정필재씨 명의의 통장이 범죄에 활용됐으니 검찰 조사를 받으러 나오라’고 했다. 그냥 전화를 끊었다. ‘보이스피싱’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서울중앙지검에 첨단과학수사부는 없다.

수법이 진부하다고 생각하는 찰나 다시 전화가 왔다. 김 수사관이란 사람이 다짜고짜 큰소리를 쳤다. 검찰 수사관이 우습게 보이냐고 했다. 보이스피싱을 확신하지 못한 채 전화를 종료했다면 속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를 내는 김 수사관에게 ‘그냥 끊겠다’고 했다. 그러자 섬뜩한 한 마디가 돌아왔다.

“198×년 ×월×일생 정필재. 내가 너에 대해서 이것만 알 것 같아?”

보이스피싱 범죄가 진화하고 있다. 어눌한 한국말을 사용하는 외국인이 금융 정보를 캐내던 방식에서 유출된 개인정보를 조합해 피해자를 속이고 협박해 돈을 가로채는 방식으로 발전했다.

◆진화하는 보이스피싱 범죄

29일 대검찰청 등에 따르면 올해 9월까지 집계된 보이스피싱 피해규모는 4817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하루 평균 피해액이 17억8000만원에 달한다는 의미다. 이는 역대 최대 피해액을 기록한 지난해 4440억원을 이미 뛰어넘은 액수다. 보이스피싱 피해는 꾸준히 증가하다 2015년 이후 1000억원대로 낮아졌다. 하지만 2017년 피해규모가 2431억원을 기록하며 늘어나기 시작했다. 법조계 관계자는 “대국민 홍보가 한창이던 2016년에는 보이스피싱 피해가 줄었고 이 시기부터 검찰의 직접수사도 축소됐다”며 “아직 10% 국민들은 보이스피싱을 모르는 것으로 조사된 만큼 다시 홍보를 강화해 피해를 예방해야 한다”고 말했다.

보이스피싱이란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을 이용해 피싱이나 스미싱, 파밍, 메모리해킹 등과 같은 전자금융을 통한 사기를 뜻하는 전자금융범죄다. 범죄자들은 거짓말을 하거나 상대방을 위협해 재산상의 이익을 취한다. 전화통화로 상대방을 기망해 계좌 및 비밀번호를 확인하는 방식은 대만에서 처음 시작됐다. 대만에서 관련 범죄조직이 와해되면서 이들이 우리나라에 침투했고 이어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보이스피싱 사건 수사 경험이 있는 검사는 “중국 콜센터에서 검거했던 한 범죄자는 중간책으로부터 매주 400명의 새로운 개인정보를 받았다”며 “기본급과 성과급을 정해두고 매월 1600명에게 전화해 범행을 시도했다”고 말했다.

휴대전화가 스마트폰으로 바뀌면서 보이스피싱의 방식도 다양해졌다. 카카오톡이나 페이스북 등 메신저 아이디를 도용해 로그인한 뒤 등록된 지인에게 메시지를 보내 금전을 탈취하는 수법이 유행했고 금융위원장 얼굴을 합성해 만든 사이트도 등장했다. ‘청첩장’이나 ‘돌잔치’ 초대 메시지 밑에 링크를 보내 접속을 유도하고 이후 불법 프로그램을 설치하게 만들어 정보를 빼내는 방식도 성행하고 있다. 악성 애플리케이션이 설치되면 경찰이나 금융감독원에 신고 전화를 걸어도 사기범이 전화를 가로챌 수 있다. 최근에는 허위 쇼핑몰 사이트를 만들어 구매를 유도한 뒤 송금을 받고 물건을 보내주지 않는 수법이 나왔고, 검사장 직인이 찍힌 가짜 압수수색 영장을 만들어 계좌와 비밀번호를 캐내는 지경에 이르렀다.

◆경기침체 틈타 취약계층 노린다

법조계에서는 경기가 좋지 않아지면서 영세 상인이나 저신용자 등을 상대로 한 범죄가 활개를 치고 있다고 우려한다. 지난해의 경우 전체 피해금액 4440억원 중 69.7%(3093억원)가 대출을 빙자한 수법에서 발생했다. 저신용자들에게 대출을 승인해 주거나 고금리 대출을 전환해 주겠다고 속여 선이자를 받고 잠적하는 방식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대출 실행에 앞서 선이자를 요구하거나 연 24% 이상의 금리를 책정하는 것은 명백한 불법이지만 돈이 급한 사람들은 상관없이 대출을 요구한다”며 “선이자 마련을 위해 어렵게 끌어모은 돈을 사기꾼들에게 넘겨주는 셈”이라고 말했다.

 

보이스피싱에 활용되는 대포통장도 무분별하게 생산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보이스피싱 조직은 계좌당 200만원을 준다며 취업준비생이나 주부 등을 유혹한다”며 “여기에 넘어간 이들은 계좌를 5개씩 빌려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어 “통장을 건넨 사람의 신원은 금방 특정할 수 있기 때문에 쉽게 잡히는데, 대부분 자신의 행위가 큰 범죄임을 인지하지 못한다”며 “빌려준 통장은 분명 범죄에 악용되고 그로 인해 피해자가 발생하는 것은 물론 빌려주는 사람도 당연히 보이스피싱 범죄에 가담한 것으로 처벌받게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개정된 전자금융거래법에 따라 대포통장 양수에 대한 처벌을 징역 3년 이하에서 5년 이하로 강화했다. 또 대가를 전제로 통장을 빌려주거나 중개하는 행위를 처벌하고 보이스피싱 피해자금을 전달하는 등 단순 편의를 제공한 행위에 대해서도 과태료나 계좌사용 중지 등의 제재를 신설했다.

천기홍 대검 조직범죄수사과장은 “대법원에서 보이스피싱 총책에게 징역 20년의 중형을 확정하기도 했다”며 “보이스피싱 범죄에 가담하기만 해도 범죄단체조직죄가 적용돼 가중처벌된다”고 경고했다.

◆모르는 번호로 걸려온 전화는 우선 의심 SNS 등에 세세한 개인정보 게재 삼가야

 

정부가 보이스피싱과 관련한 대책을 내놓고 강력한 처벌을 경고하고 있지만 피해자는 끝없이 발생하고 있다. 무엇보다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스스로가 조심하는 방법뿐이다.

 

29일 법조계 등에 따르면 보이스피싱 피해구제를 위한 부패재산몰수법이 개정돼 피해금액을 환급받을 수 있게 됐다. 피해회복이 곤란할 경우 범죄자의 재산을 몰수해 피해자에게 돌려주는 것도 가능해졌다. 검찰 관계자는 “조직적인 범죄를 통해 얻은 수익을 박탈하게 되면서 범죄를 하고자 하는 유혹을 꺾을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보이스피싱 범죄는 타인을 속여 획득한 개인정보와 금융정보를 이용한 만큼 사기죄로 처벌받을 수 있다. 통장 등을 양도해 준 사람은 전자금융법 위반죄와 별도로 형법상 사기 방조죄로 처벌받게 된다. 이 범죄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받는다. 범행 과정에서 ‘아이가 사고를 당했다’거나 ‘개인정보가 유출됐다’는 말로 피해자에게 공포를 준 경우는 형법상 공갈죄에 해당된다. 이 범죄를 저질렀을 경우에도 역시 10년 이하의 징역과 20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될 수 있다.

 

강력한 처벌에도 보이스피싱은 끊이지 않고 있어 피해자들의 주의가 요구된다. 법조계에서는 모르는 번호로 온 연락은 우선 의심해야 한다고 경고한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모르는 번호로 연락이 왔을 때는 받지 않는 것이 좋다”며 “급한 연락인데 상대방이 전화를 받지 않으면 신분을 밝히고 문자를 보내게 돼 있다”고 말했다.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에 지나치게 세세한 개인정보를 올리는 것도 지양하는 것이 좋다. 국내 대기업 A 부장은 최근 보이스피싱을 당했다. 외국에 있는 부인과 아들에게 문제가 생겼다며 거액의 돈을 요구했는데 여기에 속아 넘어간 것이다. 주변에서는 자녀의 SNS를 보고 A 부장에 대한 정보를 얻었고 보호자가 대기업에 근무하는 것을 알고 고액을 요구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범죄에 연루됐다는 연락을 받아 지방으로 나오라는 전화를 받으면 근처 경찰서로 사건을 이첩시켜달라고 하면 된다.

 

‘페이인포’에 접속하면 통장개설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보이스피싱에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면 신속히 범죄신고 전화 112나 금융기관 콜센터에 연락해 사기계좌 지급정지를 요청해야 한다. 이후 경찰서에 방문해 ‘사건사고 사실 확인원’을 발급받은 뒤 사기 이용계좌를 관리하는 금융회사 영업점을 찾아 피해구제 신청서를 작성해야 한다. 금융감독원(1332)에서 피해상담을 받아도 된다.

 

정필재 기자 rus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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