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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엑스레이 아트 개척… 인생 2막 즐기는 ‘별난 의사’ [나의 삶 나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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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12-28 07:00:00 수정 : 2019-12-29 14:5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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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섭 인천국제성모병원 영상의학과 교수 / 남다른 발상으로 X선과 예술 융합 / 개인전 19회 등 100여차례 전시회 / TV드라마·초중고 미술 교과서 실려 / 무엇이든 뚝딱 제작 ‘맥가이버’ 별명 / 화폐 수집·별자리 관측 등 취미 다양 / ‘아시안 아트 프라이즈 30인’ 뽑히기도 / 53세에 입문… 소소한 행복찾기 노력 / EBS 프로 ‘명의’ 선정… 본업도 충실 / 하고싶은 일 하며 나이 드는게 소망

1895년 뢴트켄이 발견한 ‘X―RAY(선)’이 있기까지 우리가 볼 수 있었던 물질의 속내는 극히 일부분이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미지의 X’라는 의미로 X선이라 부른다. X선 덕에 의학과 산업은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했다. 이 X선 사진을 판독해 숨겨진 질병을 찾는 이가 영상의학과 전문의들이다. 자신의 업을 밥벌이로써 방어적으로 수행하는 데 그치지 않고 남다른 발상으로 예술과 융합해 새 예술 장르를 개척한 이가 국내 최초의 엑스레이 아티스트 정태섭(65) 인천 국제성모병원 영상의학과 초빙교수다. 4000여명의 영상의학과 전문의 가운데 면허번호 1호이기도 한 그는 2006년 이 세계에 입문한 후 개인전 19회를 포함해 100여 차례의 작품전을 열었다. 그의 작품은 TV 드라마 ‘태양의 후예’에도 등장했고, 초·중·고교 미술 교과서에 실렸다. 2014년에는 ‘아시아 아트 프라이즈 30인’으로 선정됐다.

그가 엑스레이 아트에 뛰어든 해 나이는 53살이었다. 무언가에 도전하기에는 다들 주저할 시기에 자신만의 독자적인 예술 영역을 구축해 그의 말대로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인생 2막을 즐기고 있다. 무엇이든 뚝딱 만들어내 ‘맥가이버’란 별명도 지닌 데다 세계 화폐 수집, 별자리 관측 등 스무 가지가 넘는 취미의 소유자다. 의학계에서 ‘별난 의사’로 통한다. 지난 23일 정 교수를 서울 서초구 양재동에 있는 그의 작업실에서 만났다. 협소한 공간의 작업실은 ‘꽃의 빅뱅’, ‘조용한 아침’ 등 사방이 엑스레이 아트 작품으로 가득했다. 이곳이 그의 말대로 인생 2막의 재미와 짜릿함을 주는 아지트다.

―요즘 어떻게 지내나.

“지난 8월 연세대를 정년퇴직한 뒤 지금은 인천국제성모병원에 새 둥지를 틀었다. 병원에 나가는 주 3일을 제외하고는 이곳에서 엑스레이 아트 작업을 한다. 요즘은 새로운 작품을 구상하고 있다. 지난여름에 연세대박물관에서 정년 기념 전시를 했다. ‘투시’라는 제목으로 42점을 출품했는데 사인참사검이 관심을 모았다. 언더우드 선교사가 고종 황제에게 직접 하사받은 귀한 유물이다. 여기서 착안해 우리의 소중한 유물을 엑스레이 아트를 통해 새로운 예술 작품으로 만들어 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그래서 관계자들을 만나 의논하고 있다. 지난해 ‘하루를 살아도 후회 없이 살고 싶다’는 책을 낸 뒤로 강의 요청이 많이 들어오는데 시간이 나는 대로 특강을 다닌다.”

―엑스레이 아트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 계기가 있나.

“(기자에게) 동전의 앞뒤 면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본 일 있나? 별로 없을 것이다. 엑스레이로 보면 된다. 전국에 영상의학과 전문의 4000여명을 포함해 방사선 관련 분야 종사자가 약 2만명이 되지만 누구도 그 생각은 하지 않는다. 난 어릴 적부터 호기심이 많았다. 남들과 달리 생각하는 버릇이 있다. 영상의학과 교수가 하는 일은 엑스레이 사진을 판독해 질병을 찾아내는 것이다. 엑스레이 사진을 보다 보면 특이한 것을 발견할 때가 있다. 어느 날 콧속 엑스레이에서 ‘하트’ 모양을 봤다. 이것을 엑스레이로 잘 찍으면 예술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봤다. 그때부터 이것저것 찍어보기 시작했다. 하나 좀처럼 작품(?)이 나오질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TV에서 기형도 시인의 ‘입속의 검은 잎’이란 시가 언급되는 것을 보고 “바로 이거다”라고 무릎을 쳤다. 그림으로 그리기도 어렵고, 사진으로 담아낼 수도 없는 관념적인 소재가 아닐 수 없다. 엑스레이 사진으로 표현하면 최상이라고 생각했다. 그날 바로 장미 모양 브로치를 구해 입에 물고 직접 엑스레이 기계 앞에 섰다. 처음엔 제가 모델을 했으나 마음에 들지 않아 제 후배를 모델로 해 작품을 만들었다. 인터넷에 작품을 올리자 반응은 뜨거웠다. 이때 희열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 후 대상을 사람뿐 아니라 꽃, 소라껍데기 등으로 넓혀 엑스레이 사진으로 일상의 삶을 작품화하기 시작했다.”

'꽃의 빅뱅'

―첫 전시회를 열기까지 난관도 많았다고 들었다.

“작품 전시회를 하려고 여러 갤러리를 찾아다녔지만, 번번이 거절당했다. 갤러리에선 생소한 분야라서 그런지 “무슨 엑스레이 예술이냐”며 거부했다. 세어보니 열두 번이었다. 속이 쓰렸지만 오기가 앞섰다. 전시장 관계자들에게 거절당할 때마다 이유를 물어 노트에 받아 적었다. 열세 번째 방문한 갤러리에서 전시 공간을 얻었다. 놀랍게도 그때 메모해둔 내용이 작품을 만들 때 큰 도움이 됐다. 그 후 차츰 인정을 받으니 신이 나 밤잠 아껴가며 작품에 몰두했다. 신기하게도 피곤하지 않았다. 예술이 가져다주는 기쁨과 행복 때문이다.”

인천 국제성모병원 영상의학과 정태섭 교수는 쉰이 넘은 나이에 본업인 의학에 예술을 융합한 새로운 형태인 엑스레이 아트에 입문해 10여년 만에 세계적인 엑스레이 아티스트의 위상을 확보했다. 개인·단체전 등 100여 차례의 작품전을 열었고, 초·중·고 미술 교과서에서도 작품이 실렸으며 ‘아시안 아트 라이즈 30인’에도 선정됐다. 정 교수는 작업실에서 가진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니 인생 시계가 거꾸로 가는 것 같다”며 “경자년 새해를 앞두고 나 같은 중년들에게 당부하고 싶다. 한 번뿐인 인생을 원 없이 살기 위해선 체면이나 주변의 눈치를 살피지 말고 신나고 재밌는 일을 찾아 몰두하자”고 말했다. 허정호 선임기자

―엑스레이 아트 작품화 과정과 그간의 활동을 소개한다면.

“한 작품 하나를 완성하기 위해 사람의 전신을 부위별로 나눠 40여장을 찍는 일이 흔하다. 부위별로 찍은 사진을 이어 붙이는 일이 어렵다. 잘못하면 이어 붙인 사진 사이사이로 틈이 보이거나 간격이 맞지 않아 어그러지기 때문이다. 작품 대상은 다양하다. 해바라기, 목련, 장미 등 꽃을 많이 이용한다. 사람도 대상이다. 악기 연주하는 사람, 골프 치는 사람, 춤추는 사람 등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들이다. 엑스레이가 뿜어내는 기계적인 차가움은 꽃과 사람 등 자연물의 따뜻함과 어우러지며 절묘한 작품이 된다. 제 작품 ‘바이올린 선율’을 예로 들면 연주회에서 흔히 보는 바이올린 연주자의 모습이 아니다. 해골과 목뼈, 손뼈, 근육의 미묘한 움직임을 포착하면서 바이올린의 선율이 몸의 어떠한 운동과 반응으로 생겨나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10여년 동안 개인전 19회, 단체전 84회 등 103차례 전시회를 가졌다. 파리와 모스크바 등 해외초청 전시회에도 다녀왔다.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이 와인 마시는 여인의 모습을 담은 ‘좋은 날이야’를 비롯해 3점의 작품을 사갔다. 시립미술관, 세브란스병원, 강남세브란스병원 등에 제 작품이 소장돼 있다. 의학과 과학, 미술의 융합 사례로 2010, 2013년, 2104년 초등학교와 중학교 교과서에 제 작품이 실렸다. TV 드라마 ‘태양의 후예’에도 ‘언약’과 ‘장미의 영혼’ 등의 작품이 노출됐다. 2014년에는 홍콩과 런던에 근거지를 두고 있는 소버린 예술재단에서 주최하는 ‘아시안 아트 프라이즈’ 30인에 선정됐다. 다들 신기해하고 놀라워한다. 그래서 일상이 즐겁다. 엑스레이 아트에 빠져든 순간부터 내 인생 시계는 거꾸로 가기 시작했다.”

‘바이올린 위의 선율’
'입 속의 검은 잎'

―영상의학과 교수로서의 본업과 예술활동을 같이 하는 일이 쉽지 않았을 텐데.

“엑스레이 아트에 빠져서 일을 게을리 한 게 아니다. 너무 재미있게 놀면 남들이 질투할까 봐 일도 더 열심히 했다. 그래서 EBS 프로그램 ‘명의’에 선정되고, 세계적인 학술지에 논문을 1년에 2~3편 이상 실었다. 집중력의 문제다. 의사로서의 삶이 집중이라면, 아티스트로서의 삶은 몰입이다. 의사로서의 집중은 엄청난 에너지 소모를 요구하지만, 아티스트의 몰입은 자신도 모르게 빠져들게 된다. 직업적인 일은 결과의 목표 중심의 작업이기에 스트레스가 쌓이지만, 예술가의 일은 과정 자체를 즐기는 것이기에 스트레스가 오히려 해소되고 에너지가 충전된다.”

―쉰이 넘은 나이에 새로운 예술세계에 입문해 독보적인 영역을 구축했는데.

“내 나이 53세에 엑스레이 아티스트를 시작했다. 은퇴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나이에 입문했다. 동료 교수의 눈총도 있었지만 내가 좋아서 한 일이라 신경 쓰지 않았다. 향후 20년이란 세월 동안 즐길 수 있는 엄청난 놀잇감이 생긴 셈이었다. 주목받는 아티스트가 아니었으니 부담도 없었다. 기대도 간섭도 하는 이가 없었고, 얼굴이 두꺼워져서 뭐든 내 맘대로 시도해볼 수 있었다.”

'좋은 날이야!'
‘우리 너무 가까운 것 아냐’

―‘맥가이버’ ‘취미왕’ 등의 별명을 지닌 튀는 의사로 알려져 있다.

“바쁘고 긴장된 병원생활에서 소소한 행복과 재미를 찾으려고 노력했다. 종일 머리 쓰는 일에 매달리다 이런저런 장남감을 만들며 머리를 식혔다. 그러다 보니 취미가 소라껍질 스피커 만들기를 비롯해 세계 화폐 수집, 옛 엑스레이 기계 수집, 음향기·망원경 만들기, 붓글씨 쓰기 등 스무 가지쯤 된다. 숨어 있던 재미를 찾으니 일에도 활기가 돈다. 60대 중반인 지금도 또 다른 새로운 즐거움이 없을까를 생각한다. 무엇이든 만들기를 좋아한다. 집에 종이박스로 고양이아파트를 만들었다. 실내 공기청정기도 만들고, 소라를 이용한 스피커도 직접 만들었다. 요즘은 커피로스팅기를 만들었다. 아내에게 아침마다 커피를 서비스한다. 얼마 전 ‘튀는 의사’로 TV에 소개되기도 했다.”

―앞으로의 계획과 소망은.

“밝고 재밌는 교수로 보이지만 제게도 내일 오는 게 두렵던 순간이 있었다. 고백하건대 30, 40대는 지옥 같았다. 대학 시절은 의사가 되기 위해, 의사가 되고 나서는 교수가 되기 위해 청춘을 몽땅 바쳤다. 그러던 어느 날 “이러다간 정말 큰일 나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정신이 번쩍 났다. 그래서 찾은 것이 엑스레이 아트다. 이제는 하루하루가 즐겁다. 인생에는 여섯 발의 총알이 있다고 생각한다. 20∼60대까지 10년에 한 발씩 총알을 쏘는 시기다. 60대 중반인 내게는 이미 여러 발을 쏴 한 발밖에 남지 않았다. 한 발뿐인 것은 슬픈 일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감사한 일이다. 마지막이기에 끝장을 본다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방아쇠를 당길 수 있다. 그 한 방이 나의 엑스레이 아트다. 정열적으로 작품 활동과 전시를 지속할 계획이다.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며 재밌게 나이 드는 게 소망이다.”

 

박태해 선임기자 pth1228@segye.com

 

정태섭 교수는… ●1954년 부산 출생 ●1979년 연세의대 졸업, 의사면허 취득 ●1983년 영상의학과 전문의 취득 ●1987년 연세의대 전임강사 ●1992∼93 미국 필라델피아 펜실베이니아의과대학 연구교수 ●1997년 인제의대 의학박사 취득 ●2000년 연세의대 정교수 ●2007년 X-ray아트 1회 전시회 갤러리정 ●2010∼12년 대한자기공명의과학회장 ●2011년 프랑스 파리 AUP갤러리 X-ray아트 초청개인전 ●2014년 런던·홍콩 소버린예술재단 아시아 30인 작가 선정 ●2014∼16년 MBC 어린이과학프로그람 ‘아하! 그렇구나’ MC ●2015년 러시아 모스크바 티미랴제프 국립박물관 X-ray아트 초청 개인전 ●2010∼19년 X-ray아트 초중고등교 교과서 8종 수록 ●2019년 8월 연세의대 교수 정년퇴임, 옥조근정훈장 수상 ●2019년 9월∼ 가톨릭관동대 인천국제성모병원 영상의학과 초빙교수 ●저서 ‘아하 박사님 과학하고 놀기’, ‘X-Ray Art’, ‘하루를 살아도 후회 없이 살고 싶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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