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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어지고 소실되고… 홀대받는 벽화들

입력 : 2019-12-25 10:00:00 수정 : 2019-12-24 21:0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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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 및 유지 방안 / 건축물의 단순한 부속물로만 여겨 / 보존에 소홀… 폐기되는 경우 많아 / 안성 청룡사 대웅전 보수 현장서 우연히 1894년 여래불 벽화 발견 / 문화재 가치 높아 보존 놓고 고민 / 전국 사찰에 5351점 벽화 전해져 / 문화재청, 체계적 보호방안 구상중
충남 서산의 개심사 대웅전(보물 143호)의 수리공사가 마무리된 것은 광복 직전인 1945년 초. 그 과정에서 백의관음상 등이 그려진 벽화를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가 불거져 전문가의 자문까지 구했으나 모사는 이루어지지 않고, 벽체도 폐기돼 지금은 그림이 없는 회벽으로 남게 됐다. 사찰벽화에 대한 무심함과 홀대는 일제강점기 때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전북 고창의 선운사 영산전에는 나한상 뒤에 병풍 형식의 산수도 벽화가 2000년까지 전해졌으나 내부 공사를 하면서 유실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사찰을 비롯해 궁궐, 서원, 향교, 사당 등의 장식하고, 그곳을 이용하는 이들을 교화하는 등의 기능을 하는 동시에 뛰어난 문화재적 가치를 가진 벽화의 위기는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이 그려진 건물의 부속물로만 여겨지는 경향이 강해 건물의 보존관리 과정에서 원래의 위치에서 떨어져 나가거나 손상, 손실되는 경우가 많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문화재청은 ‘벽화문화재 보존 및 관리에 관한 원칙’을 훈령으로 제정, 벽화의 체계적인 보호에 나서는 방안을 구상 중이다.
경기도 안성 청룡사 대웅전 수리현장에서 50개의 조각으로 분리한 벽체가 놓여 있다. 양병갑 소장 제공

◆회벽 떨어지며 드러난 19세기 불화

지난 17일 경기도 안성의 청룡사 대웅전(〃 824호) 보수, 수리현장에는 50개의 조각으로 잘라낸 대웅전의 벽체들이 앞뒤로 포장재에 쌓여 있었다. 대웅전은 대들보에 균열이 생기고 초석이 깨진 부분들이 확인돼 지난해 전면 해체해 보수작업을 시작했다. 작업이 완료되는 2021년 3월에는 50개의 벽체 조각은 원래의 모습으로 재조립되어 있을 것이다.

벽체를 여러 조각으로 자르고, 다시 조립하는 번거로움을 감수하는 건 이것이 갖고 있는 다양한 문화재적 가치를 보존하기 위한 조치다. 여기에는 30점 정도인 벽화의 보존도 포함되어 있다. 작업 도중 대웅전 벽화의 역사를 명백히 보여주는 흔적이 발견되기도 했다. 1985년 칠해진 회벽의 일부가 떨어져 나가면서 19세기에 그려진 그림이 나타난 것. 작업을 이끌고 있는 양병갑 소장은 “1985년에 회를 바르고 그 위에 그린 그림은 부처의 중생 교화를 주제로 했으나 그림 자체가 특별한 가치를 가진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1894년 그림은 여래불을 정성스럽게 그려놓아 주목된다”며 “1985년의 그림을 지우고 1894년의 것을 따라 새로 그려놓자는 의견도 있다”고 말했다.

대웅전 회벽은 대개 3중으로 파악되는데, 회를 바를 때마다 새로운 벽화를 그렸다고 가정하면 벽체가 품고 있는 그림은 훨씬 많을 것이란 게 당연한 추론이다. 문화재청 박희웅 과장은 “지금의 기술로는 그림을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덧바른 회를 떼어내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에 현재의 상태로 재조립하게 될 것”이라며 “건물 벽을 만드는 전통기법을 파악하고 보존하는 것도 중요한 고려 대상”이라고 밝혔다.

경기도 안성 청룡사 대웅전의 벽화 중 일부. 1980년대 덧바른 회가 떨어지면서 1894년에 그린 불화의 일부가 드러나 있다. 양병갑 소장 제공

◆저평가된 벽화, 보존원칙 제정 추진

2006∼2014년 실시한 ‘사찰건축물 벽화조사’에 따르면 전국에 5351점의 벽화가 전해지고 있다. 부처, 보살을 그리거나 불교의 교리, 석가의 전생 이야기 등에서부터 하늘의 신과 산수, 화조 등 다양한 소재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이런 벽화에 대한 보존작업은 일제강점기 이후 간간이 이어졌으나 체계적인 보존체계가 잡힌 것은 2000년대 이후로 평가된다. 2005년 전남 강진 무위사 극락전의 30점을 전시관으로 이전해 안료와 벽체의 재료 분석, 초음파와 열화상을 이용한 상태진단이 진행돼 벽화 조사의 범위가 다양해지고 체계화됐다. 전북 김제 금산사 미륵전 벽화 보존은 이 시기 대표적인 사업으로 꼽힌다. 미륵전 벽화 187점은 1992년 해체해 보존처리 후 조립되었다가 보존상태가 열악해 2009년 다시 보존처리 후 수장고에 보관됐다. 원래의 자리에는 모사한 그림을 그려 넣었다.

벽화에 대한 인식과 보존작업은 이처럼 발전을 거듭해 왔으나 여전히 건물의 부속물로만 보는 인식이 강하고, 분리되거나 균열, 먼지 등으로 손상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에 따라 벽화의 보존과 관리를 위한 원칙의 제정이 추진되고 있다.

문화재청이 지난달 공청회에서 제시한 안은 벽화 보존행위의 원칙으로 ‘원위치 보존’, ‘직접적 개입 최소화’, ‘재처리 가능한 보존행위’, ‘제작 당시의 본래 기법 활용’, ‘건물 보수 설계는 처음부터 벽화 고려’를 제시했다. 원래의 위치에서 분리해 보관하는 것은 천재지변 등으로 원위치 유지가 불가능하거나, 건물이 기능과 역할을 하지 못해 해체가 불가피한 경우 등 극히 예외적인 사례로 규정하고 있다.

문화재청은 “공청회 등의 의견수렴 과정을 거쳐 벽화문화재 보존, 관리에 관한 원칙을 정하고 내년 상반기에는 훈련으로 제정할 계획”이라며 “원칙이 마련되면 문화재 보수정비 사업의 근거 지침으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안성=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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