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가정폭력범죄 사법처리 ‘하세월'… 두번 우는 피해여성들

입력 : 2019-11-26 06:00:00 수정 : 2019-11-26 07:33:39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법적절차 복잡… 불안·생계난 이중고 / 가정폭력사건 신고건수 매년 증가세 / 남편 처벌·이혼·양육권 문제 겹칠땐 / 가정·지방 법원 오가며 여러번 재판 / 시간·비용 많이 들고 일상생활 불편 / 전문가들 '가정폭력전담법원 마련 / 한 가족의 사건 통합적으로 다뤄야” / '민·형사 구분 제도선 어려워” 지적도

“빨리 모든 게 끝났으면 좋겠어요.” 남편에게 심한 폭력을 당하고 이혼 소송을 진행 중인 A씨는 이렇게 하소연했다. 협의이혼을 거부한 A씨의 남편은 특수상해 등 혐의로 형사재판에 넘겨진 상태다. A씨는 남편이 벌금형 등 경미한 처벌만 받고 자신과 아이에게 해코지하지는 않을지, 모든 절차가 마무리되는 데에는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걱정이 많다. 아동학대 등 혐의로 남편을 추가 고소하고 싶지만 고민 중이라고 한다. 원치 않는 남편 측의 연락에 시달리며 언제 어떻게 끝날지 모르는 재판절차가 자칫 더 길어질까 걱정이기 때문이다.

A씨와 비슷한 상황에 놓인 B씨 역시 빨리 재판절차가 끝나길 원하고 있다. B씨는 “이혼이 되기 전까진 한부모가정 인정이 안 돼 어린이집 입소 순위가 높아질 방법이 없다”면서 “당장 생계유지가 시급해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인데 아이를 봐줄 사람이 없다”고 발을 동동 굴렀다. 형사재판과 이혼 소송은 동시에 진행될 수 있지만, 재판부 판단이나 상황에 따라 형사재판이 끝나고 이혼 소송 선고가 이뤄지는 경우도 많아 최종 결론이 내려질 때까지 긴 시간을 가해자와 부딪쳐야 하는 고통에 내몰리고 있다.

◆한 가정폭력사건에 재판은 여러 번… 두 번 우는 피해자들

가정폭력 추방주간(11월25일∼12월1일)을 맞아 가정폭력범죄와 관련된 사법절차가 지나치게 복잡해 피해자가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25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여성 긴급전화(1366)를 통한 가정폭력 상담 이용 건수는 18만9057건으로 최근 5년간 꾸준히 늘고 있다. 2014년 13만7560건 대비 약 137% 증가한 수치다. 지난해 전체 1366 상담 건수 35만2269건 가운데 절반이 넘는 53.7%에 달한다. 경찰청 통계를 봐도 가정폭력 112신고 건수는 2015년 22만7630건, 2016년 26만4567건, 2017년 27만9082건으로 계속 늘어나고 있다. 이처럼 가정폭력범죄의 증가세가 꺾이지 않는 상태지만, 사법처리 과정에서 오는 피해자들의 고통은 줄어들지 않는 실정이다.

앞선 사례처럼 가정폭력범죄 가해자가 재판에 넘겨지는 경우 가해자는 형사재판 또는 가정보호재판을 받게 된다. 여기서 가정보호사건은 형법이 아닌 ‘가정폭력 처벌에 관한 특례법’에 따르게 된다. 처벌보다 가정보호에 중점을 두는 것으로, 가해자는 환경 조정과 성품·행실의 교정을 위해 상담이나 사회봉사 등의 처분을 받는다. 여기에 부부가 이혼 의사가 있다면 이혼과 이혼위자료, 재산분할, 양육권 등의 문제는 별도의 가사재판(가사소송, 가사조정, 가사비송 등)으로 다뤄진다. 또 피해자가 손해배상을 받기 위해 민사소송을 거치거나 배상명령신청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가정폭력 피해자가 가해자의 형사처벌과 법적 관계 단절, 자녀 보호 등을 위해 가정법원과 지방법원을 오가며 시간과 비용을 들여 여러 차례 재판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얘기다. 피해자들은 이러한 절차 속에서 같은 진술의 반복, 잦은 신문, 가해자 측과의 접촉 등으로 일상생활에서 불편을 느끼게 된다고 호소한다. 피해자는 한 가정폭력사건의 사법절차가 마무리되기까지 많게는 경찰·검찰수사과정에서의 진술, 형사소송 증언, 가정보호사건이나 피해자보호명령 관련 가정보호사건조사관의 조사, 이혼사건 또는 친권자·양육권자 결정과 관련된 가사조사관의 조사, 이혼 소송의 당사자신문 등을 겪게 된다.

 

◆한계 부닥친 현행 체계… “가정폭력사건 통합적으로 다뤄야”

전문가들은 가정폭력사건을 통합적으로 다룰 수 있는 전담조직 설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가정폭력과 이혼, 아동보호 등의 문제를 별개의 사건으로 보지 않고 통합법정에서 다루며 총괄 심리를 진행하는 방법 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럴 경우 피해자 입장에서도 시간과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원혜욱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현 시스템은 (가정폭력사건이) 검사에 의해 형사기소 또는 보호사건 송치로 구분되기 때문에 심리 과정에서 밝혀지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특성 및 환경 등이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고 처분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면서 “가정폭력전담법원 등을 통해 사건 해결을 위한 종합적인 정보를 법관에게 제공해 가해자에 대한 모니터링과 정확한 처벌이 이뤄지도록 지원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 등이 고려돼야 한다”고 했다.

민사와 형사사건이 엄격히 구분되는 현 사법 시스템 안에서 가정폭력전담법원과 같은 제도를 마련하기 어렵다는 한계도 있다. 가정법원 관계자는 “재판이 따로 진행되긴 하지만 형사사건을 제외한 가정보호사건, 이혼사건, 아동보호사건 등의 모두 가정법원 소관이기 때문에 가정법원은 현 제도 안에서 한 가정의 문제를 총체적으로 관리하는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다”면서 “필요한 경우 법원 내에서 관련 사건에 대한 정보 공유도 원활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美 '하나의 가정, 한 명의 법관' 모토 전담법원 설치

 

해외 여러 국가는 가정폭력 사건을 다룰 때 피해자의 신속한 보호를 최우선 목적으로 두고, 가정폭력전담팀이나 가정폭력전담법원을 설치해 신속하고 일관성 있게 가정폭력 사건을 처리한다.

 

미국은 가정폭력전담 경찰과 법원을 두고 있다. 미국 전역에만 200여개의 가정폭력법원이 있다. 그중에서도 뉴욕의 통합형 가정법원(IDV 법원)은 ‘하나의 가정, 한 명의 법관(One Family, One Judge)’이라는 이념에 따라 한 명의 판사가 한 가족 내의 형사사건, 피해자보호명령사건, 이혼사건 등 모든 유형의 사건을 다룬다. 각각의 사건을 별개의 문제로 보지 않고 통합법정에서 다루면서 심리하는 방식이다. 재판의 효율성 측면에서 소송당사자의 법정 출석이 줄어들고 처리 속도가 빨라지는 것뿐 아니라 다양한 정보를 통해 사법적 결정을 내림으로써 피해자에게 더 나은 법률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장점이 있다. 이처럼 IDV 법원을 갖춘 지역에서는 그렇지 않은 지역에 비해 재범률이 절반 가까이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영국은 2005년 가정폭력전담법원(SDVC)을 설립하고 가정폭력에 대한 전문성을 갖춘 경찰, 검사, 판사, 법률자문가 등이 사건 초기 단계부터 재판 이후까지 피해자를 위한 원스톱 법률지원·보호 서비스를 제공한다. SDV 법원을 설치한 지역에서 피해자 보호가 강화되는 등 효과가 나타나자 점차 이를 확대하고 있다. 법원마다 있는 가정폭력대응 전문관은 재판 이후에도 피해자가 위험한 상황에 부닥치는 일이 없도록 지속 관리하고, 국가기관의 법정의무 이행이 부족한 경우 피해자의 이의제기를 지원하는 등 ‘애프터 서비스’도 확실히 해준다.

 

가정법원의 책임하에 재판부와 별도의 조직을 운영함으로써 독자적으로 가정폭력 피해자를 위한 사회복지서비스 기능을 수행하는 국가들도 있다. 1997년 도입된 이스라엘의 ‘사회서비스 부서(Social Service Units)’는 가정법원 부속조직으로 가정법원에서 재판을 받는 가족을 위한 상담과 치료, 감정적 지원, 각종 법적 절차에 대한 법률서비스 등 각종 지원을 하고 있다.

 

유지혜 기자 keep@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천우희 '매력적인 포즈'
  • 천우희 '매력적인 포즈'
  • 수지 '하트 여신'
  • 탕웨이 '순백의 여신'
  • 트리플에스 코토네 '예쁨 폭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