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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폭·지느러미·백룡… '애물단지'된 공공조형물 [뉴스+]

입력 : 2019-11-25 06:00:00 수정 : 2019-11-24 22:5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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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지자체 설치 공공조형물 6287점 / 삼척시 대나무 형상 조형물 최근 설치 / 양산시 내년초 3개 조형물 공모 앞둬 / 광주시는 31억 들여 톨게이트에 계획 / 춘천 약사천공원 ‘프러포즈’ 조폭 연상 / 고령 말머리상은 “혐오감 준다” 도마위 / 무주 ‘태권브이’ 조형물도 전면 재검토 / 장기적인 관점서 충분한 검토 아쉬움 / 경남 김해시, 전수조사 거쳐 DB 구축 / 경기도, 공모제·검수단 도입 관리 강화
지방자치단체의 ‘애물단지’로 전락한 공공조형물 논란은 해마다 끊이지 않고 있다. 올해 파악된 전국 지자체 공공조형물은 총 6287점이다. 6년 전보다 3000여개 증가했다. ‘자고 나면 하루가 멀다’ 하고 공공조형물이 전국 방방곡곡에 세워지고 있는 셈이다. 장기적 관점에서 충분한 검토 없이 공공조형물을 세우다 보니 상당수 조형물이 천덕꾸러기로 전락하고 있다.

 

지자체들이 상징물이나 조형물 건립에 주민들의 혈세를 낭비하고 있는 것은 멀리 단체장 임기 중에 세워야 한다는 강박관념과 세워만 놓으면 관광객을 유치하고 지역을 홍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안이한 판단 때문이다. 하지만 주민들은 “치밀한 지역 여론 수렴이나 타당성 분석 없이 단순히 눈길을 끌기 위해 조형물을 건립하려는 것은 ‘보여주기식 행정’이자 ‘예산 낭비의 전형’”이라고 우려한다.

경북 포항시가 3억원을 들여 포항시 남구 동해면 포항공항 입구에 설치했던 과메기 홍보용 조형물 ‘은빛 풍어’.  포항시 제공

◆우후죽순 건립되는 공공조형물

 

24일 전국 지방자치단체에 따르면 전국에서 회화·조각 등 조형시설물을 비롯해 벽화·분수대 등 환경시설물, 상징탑·기념비 등 상징조형물 설치가 봇물을 이루고 있다. 백두대간 고갯길 중 하나인 강원도 삼척 댓재공원에 상징조형물이 최근 설치됐다. 삼척시는 중요 거점인 댓재를 명소화하고 등산객에게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댓재 정상에 상징조형물을 설치했다. 4800만원을 들여 설치된 댓재 상징조형물은 대나무가 많이 자생하고 있는 곳이란 뜻의 ‘댓재’의 지명에 대한 유래를 의미하는 형상으로 제작됐다.

 

경남 양산시는 1억원을 들여 시내 젊음의 거리에 상징물을 이달 중, 늦어도 다음 달까지 설치할 예정이다. 양산시는 또 1억5000만원의 사업비로 스타광장을 비롯한 나머지 3개 조형물에 대한 공모도 내년 초에 진행할 예정이다.

 

서울 강동구는 전통시장에 활력을 불어넣고 암사종합시장을 홍보하기 위해 상징조형물을 설치하고 최근 준공식을 가졌다. 상징조형물은 높이 7, 폭 15의 아치형으로 양쪽 기둥에는 신석기 시대 빗살무늬 토기를 형상화해 선사유적지와 인접한 암사종합시장을 관광명소로 알릴 수 있게 제작됐다.

 

광주시도 31억원을 들여 무등산을 형상화한 조형물을 고속도로 톨게이트에 세운다. 광주시는 전남 장성 남면방향 고속도로 광주톨게이트에 가로 74, 높이 8의 대형 조형물 ‘무등의 빛’을 내년 4월까지 설치할 계획이다.

 

세계한글작가대회 기념조형물도 경북 경주에 건립됐다. 국내 문인들과 경주지역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세계한글작가대회가 5회째나 열린 경주에 이를 기념하기 위해 조형물을 세웠다.

 

경기 하남시도 우산조형물을 석바대시장 상점가에 설치했다.

 

◆끊이지 않는 혈세 낭비 논란

 

강원 춘천 약사천공원에 설치된 공공조형물 ‘프러포즈’란 작품은 ‘조폭 논란’에 휩싸였다. 이 조형물은 짧은 머리에 꽃무늬 와이셔츠, 금목걸이를 한 조폭처럼 생긴 남자가 꽃다발을 들고 여자에게 프러포즈를 하는 모습을 조형물로 만든 것이다. 조폭이 연상된다는 의견과 함께 “그냥 예술작품으로 봐야 한다”는 의견도 있는 등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강원 춘천시 약사천 공원에 설치된 ‘프러포즈’란 제목의 공공조형물. 강렬한 인상을 지닌 남자가 여자에게 프러포즈하는 모습이다.  춘천조각심포지엄 제공

전북 무주군은 2016년부터 국비 등 72억원을 들여 태권도원 인근 항로산 정상에 높이 33 크기의 ‘태권브이’ 대형 조형물 등을 갖춘 ‘태권브이 랜드’ 조성사업을 추진하다 최근 제동이 걸렸다. 무주군은 전면 재검토를 결정했다. 상당수 주민과 환경단체는 “만화 캐릭터를 이용해 산 정상에 인공조형물을 설치한다고 해서 태권도 성지로서 이미지가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며 “치밀한 검토 없이 추진하면 자칫 자연경관을 훼손하고 흉물로 전락해 예산을 낭비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제시 문화체육공원에는 높이 2.5의 백룡 조형물이 있다. 김제시가 지난 3월 7800만원을 들여 만들었다. 벽골제 쌍용놀이 전설을 모티브로 백룡의 선한 이미지를 표현했다고 한다. 그러나 시민들은 “악한 기운이 느껴지는 데다 밤에는 아치(몸통)에 빨간색 조명이 들어와 더 기분이 나쁘다”며 무섭다는 반응이다.

 

대구에서도 일부 공공조형물이 주민들 사이에 존치와 철거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대구 달서구는 지난해 진천동 도로변에 2억여원을 들여 ‘2만년 역사가 잠든 곳’이란 원시인 조형물을 설치했다. 달서구는 국가사적 제411호 진천동 입석이 있는 선사유적공원 일대를 ‘선사시대 테마거리’로 조성하면서 길이 20, 높이 6의 잠든 원시인 상을 설치했다. 일부 주민은 “주변 환경과 어울리지 않는다”거나 “조형물이 너무 커 영업에 지장이 있다”고 반발했다. 조형물을 철거해 달라며 주민 3140명이 청원도 냈다. 일부 주민은 석상 주변 경관조명을 부수기도 했다.

 

경북 군위군의 ‘대추화장실’은 한국에서 가장 비싼 공중화장실 겸 조형물이다. 특산품인 대추를 홍보하기 위해 2016년 6억9500만원을 들여 의흥면 수서리에 ‘어슬렁대추정원’을 조성하고 정원 한가운데에 대추 조형물을 설치했다. 그런데 조형물로서도, 화장실로서도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면 소재지에서 2.5㎞나 떨어진 한적한 도로변에 위치해 이용객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고령군의 말머리상도 “혐오감을 준다”고 주민들은 입을 모은다. 말머리상은 고령군이 2015년 6억5300만원을 들여 설치했다. ‘왕국의 혼’이라는 이 작품이 대가야읍내 교차로에 등장하자 일부 주민들이 흉물스럽다고 말한다.

강원도 고성군의 ‘항아리 조형물 겸 건축물’에 대한 비난도 무성하다. 논두렁에 자리한 16 높이의 이 기괴한 조형물엔 무려 15억원에 달하는 제작비가 투입됐으나 제대로 관리되지 않을뿐더러 관람객도 드물다.

 

양양군도 지역 관문 두 곳에 설치된 송이 조형물을 교체한다. 양양송이와 송이축제 홍보를 위해 2006년 1억6000만원을 들여 양양읍 연창삼거리와 현남면 지경리에 송이 조형물을 설치했으나 조형물이 지역의 미래상을 반영하기 어렵고 이미지 표현에도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이어지자 이를 교체하기로 했다. 김준홍 포항대 교수는 “지자체의 과욕과 전문성 부족으로 귀중한 예산만 낭비하고 있다”며 “충분한 의견수렴 등을 거치는 등 공공조형물 건립 과정이 투명하게 진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전북 김제시 문화체육공원에 설치된 백룡 조형물. 주민들은 “무섭게 느껴진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김제시 제공

◆지자체 조형물 통합관리체계 구축 잰걸음

 

“제대로 공공조형물을 설치하고 관리하자.”

 

무분별하게 세워지는 공공조형물에 대한 비판여론이 일고 있는 가운데 지자체들이 주민들의 공감을 얻기 위한 다양한 제도개선과 관리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경남 김해시는 시내 공공조형물 통합관리체계를 구축했다. 김해시는 설치 목적과 장소 등에 따라 부서별로 흩어져 있던 공공조형물 관리를 일원화하기 위해 관내 155곳의 공공조형물을 전수조사해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했다. 또 재질에 따라 유지관리계획을 수립하고 일부 훼손된 공공조형물은 세척 등을 거쳐 보존처리를 마무리했다.

 

시는 지난해 공공조형물 화보집을 제작, 배부했으며 ‘공공조형물의 설치 및 관리 등에 관한 조례’를 제정했다. 올해는 공공조형물의 장기적이고 효과적인 유지관리를 위해 공공조형물 상태 전수조사와 보존처리 용역을 진행했다.

 

경기도는 공공조형물 설치에 공모제를 도입했다. 그동안 별도의 공모과정이 없어 공정하고 투명한 작품선정이 어렵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도는 먼저 경기도시공사에 공모제를 의무화하도록 하는 한편 민간에도 제도 도입을 권장하기로 했다. 민간 건축주가 미술작품을 설치할 경우 현행 제도는 건축물 미술작품 심의위원회의 심의를 거치도록 하고 있는데, 공모제를 통해 미술작품을 설치할 경우 가산점을 주거나 위원회 심의 면제 등의 인센티브를 제공해 공모제를 확산시킨다는 구상이다.

 

이밖에 미술작품 검수단을 운영해 건축물 미술작품 설치 여부 확인은 물론 하자발생과 개선사항에 대한 권고 등 품질관리를 강화할 계획이다. 특히 작품 이미지, 가격, 작가명, 규격, 사용계획서 등을 미술작품 설치 이전에 공개해 투명성도 높일 계획이다. 국민권익위원회도 공공조형물 건립을 둘러싼 갈등과 무분별한 건립에 따른 예산 낭비를 방지하기 위해 ‘지자체 공공조형물 건립 및 관리체계 개선방안’을 권고한 바 있다. 국민권익위가 권고한 개선방안은 주민대표가 참여하는 건립심의위원회 구성과 주민 의견수렴 절차 규정 등 건립 과정의 투명성과 공정성 확보장치 마련을 비롯해 주기적 안전점검 등 사후관리 강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포항·전주·대구·김해=장영태·김동욱·김덕용·강민한 기자 3678jy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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