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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 ‘보존센터’ 개장 땐 문화재 보존 처리 숨통 트일까

입력 : 2019-11-19 06:00:00 수정 : 2019-11-18 21: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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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존과학 진화에도 인력·시설 부족 여전 / 유물 파손 심해도 처리기술 급속 발전 / 마갑·기마인물형 토기 등 완벽히 복원 / 과학적 분석 통해 새 역사 사실 확인도 / 중앙박물관 소장품 처리조차도 버거워 / 대학·사립 박물관은 손도 못대는 실정 / 2024년 완공 ‘보존센터’ 중심역할 기대

지난달 16일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신라의 마갑(말갑옷)을 언론에 공개했다. 마갑이 출토된 것은 2009년. 길이 3m, 무게 40㎏에 육박하는 덩치로 카리스마가 돋보이는 이 유물은 긴 잠에서 어렵게 깨어나고도 표면의 흙과 오염물을 제거하고, 금속 재질의 강도를 높이느라 다시 10년 동안 세상과 분리됐다. 멀쩡한 모습으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기 위한 조치였다.

국보 91호 기마인물형토기는 1924년 경주 금령총에서 발견될 당시 산산조각이 난 채였다. 임시로 복원돼 1970년대까지 버텼으나 더 큰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1977∼1978년 국립중앙박물관(중박)은 결손 상태이던 장식, 인물상의 일부 등을 되살렸다.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재 중 하나로 꼽히는 이 토기가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이 이때였다.

유물 자체가 워낙 뛰어나고 그럴듯한 스토리까지 갖춰 예외적인 사례처럼 보이지만 대부분의 문화재는 크든 작든 마갑, 토기와 마찬가지로 보존과학의 수혜를 입는다. 문화재 역시 생로병사에서 예외일 수는 없다. 수백 년 혹은 수천 년의 세월을 비켜간 듯한 착각을 일으키는 문화재는 보존과학을 통해 ‘생명연장의 꿈’을 현실화시키기 마련이다. 이처럼 1970년대 첫발을 내딛은 한국의 보존과학은 큰 발전을 이뤘다. 그러나 인력, 시설, 설비 등의 부족은 여전하다는 지적이다.

(맨 위 사진) 기마인물형토기는 1924년 경주 금령총에서 산산조각난 상태로 출토됐다. (중간 사진) 임시로 복원돼 1970년대까지 버텼으나 안정성 문제가 제기됨에 따라 분해돼 보존처리작업을 거쳐 현재의 모습으로 재탄생했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이사지왕의 칼(?)’…보존처리 통해 알려진 문화재의 진면목

기마인물형토기의 사례처럼 과거 보존과학은 원형 회복에 중점을 두었으나 기술의 발달과 함께 영역이 훨씬 다양해졌고 그것에 비례해 우리의 역사 역시 풍부해지고 있다.

유물의 속을 들여다보며 제작과정을 파악하는 일도 그중 하나인데, 흥미로운 사실들이 새로 알려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경남 유형문화재인 ‘최치원 진영’은 의자에 앉은 최치원의 좌우로 문방구류, 서책을 배치해 유학자의 정체성을 강조했다. 그런데 X선 투과조사를 한 결과 서책과 문방구류 자리에는 원래 동자승이 그려져 있었던 게 확인됐다. 사찰에서 그려진 것을 서원으로 옮기면서 동자승의 흔적을 지워 유학자의 모습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1970년 전북 익산 왕궁리 석탑에서 발견된 금강경판은 선명한 금색을 띠고 있어 순금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과학적 분석을 통해 은판 위에 도금을 한 사실이 확인됐다. 가벼운 은을 사용해 전체 무게를 줄이고 명문(銘文·새겨 놓은 글)을 보다 쉽게 새기고 보관을 용이하게 하기 위한 조치인 것으로 보인다.

보존과학의 역할이 다양해지고 있지만 주된 영역은 역시 문화재 치료다. 1921년 경주 금관총에서 나온 고리자루칼은 네 부분으로 파손되고 금속부분이 부식되어 손상과 결손이 심했다. 2011∼2013년 진행된 보존처리작업에서 표면의 이물질·부식물 제거, 재질의 안정화 및 강화, 파편의 접합 등이 진행되어 전시, 연구에 활용이 가능한 상태가 됐다. 보존처리를 통해 녹이 제거되면서 ‘?斯智王’(이사지왕) 등의 글자가 발견돼 큰 화제를 모았다. “지금까지 확인된 신라의 명문중 왕과 관련된 최초”의 사례다.

◆문화유산 디지털 보존센터’ 건립…보존과학의 현실을 반영

중박은 내년부터 2024년까지 270억원 정도를 들여 ‘문화유산 디지털 보존센터’ 건립을 추진 중이다. 사뭇 야심찬 내용들을 보존센터의 기능으로 제시하고 있는데, 찬찬히 뜯어보면 한국 보존과학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우선 자체 소장품 보존처리 기능 강화를 꼽았다. 한국을 대표하는 박물관인 만큼 중박의 보존과학 인력, 시설, 장비 등은 다른 곳에 비해 잘 갖춰져 있지만 소장품 관리조차 버거운 게 사실이다.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중박 소장품은 지난해 기준 41만여점이고, 시급한 조치가 필요한 것이 7만4000여점에 이르지만, 보존처리 건수는 1만4000여점에 불과하다. 다른 문화재 관련 국립기관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보존과학 기반이 없다시피한 개인 소장자 혹은 기관의 지원 요청에 대응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대학 혹은 사립 박물관의 보존과학 기반이 없다시피 하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민간 업체에 의뢰하고 싶어도 숫자가 적을 뿐만 아니라 믿고 맡길 만한 기술, 장비를 가진 곳이 드물다. 중박이나 국립문화재연구소 같은 기관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지만 이런 곳들 역시 여력이 충분치 않다 보니 중요도가 높은 지정문화재나 보존처리가 시급한 극히 일부 유물에 대한 보존처리 의뢰만 수용할 수 있다.

박물관 사정에 밝은 한 전문가는 “대부분의 대학·사립 박물관이 보존의 기본인 온·습도 정도만 맞춘 채 현상유지에 급급하고 있다”며 “사립박물관의 90%는 유물을 그냥 갖고만 있다고 해도 될 정도로 열악하다”고 말했다. 기본적인 보존처리도 못하는데 인력 양성, 소장품 데이터베이스(DB) 구축 등을 기대하는 건 무리다.

이런 이유로 중박은 ‘소장품 보존처리 강화’, ‘보존처리 업무 지원 강화’와 더불어 ‘보존처리 인력에 대한 세분화 교육’, ‘국외박물관 한국실 담당자 교육’, ‘보존과학 분야 전문 DB 및 아카이브 구축’ 등을 보존센터의 주요 기능으로 상정하고 있다. 최선주 학예연구실장은 “예산이 계획대로 확보되면 내년에는 보존센터 실시설계에 들어갈 것”이라며 “문화재 디지털 자료 확보, 외부 박물관 지원, 전문가 교육 등을 통해 문화재 보존의 중심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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