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지중해의 진주’ 지키던 방어요새... 궁전처럼 아름답다 [박윤정의 그레이트 이집트]

관련이슈 박윤정의 그레이트 이집트

입력 : 2019-11-23 14:00:00 수정 : 2019-11-23 13:41:28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17)·〈끝〉알렉산드리아에서 카이로로 / 카이트베이 성채, 멋진 해안 풍경에 데이트족들 많아 / 대통령궁 옆 몬타자 궁전, 지중해 태양에 붉은 빛으로 빛나 / 역사의 깊이·문명의 위대함 느끼며 이집트 여정 마무리
카이트베이 성채. 성채는 15세기 방어 요새로 1477년 술탄 알-아쉬 라프 사이프 알-딘 카이트 베이에 의해 설립되었다. 유명한 파로스 등대 폐허 위에 새롭게 등대를 세울 때 사용했던 석재를 요새 건축에 재사용했다고 한다.

이집트 여정이 막바지에 이르니 아쉬움이 커서인지 일찍 눈을 떴다. 커피 한잔을 준비하고 발코니에 나간다. 차가운 공기가 피부에 닿아 쌀쌀하지만, 오렌지 빛깔로 물든 하늘은 따스하게 주위를 감싼다. 떠오르는 태양을 반기는 듯 하늘은 점점 더 붉게 번진다. 시야에 담긴 몬타자 궁전은 하늘의 붉은빛을 돌돌 말아 건물을 덮고 있다. 어느새 하늘은 붉은 끝자락을 내어주고 점점 푸르게 번져간다. 쌀쌀한 공기를 잊고 해가 떠오르는 광경을 말없이 지켜본다. 붉은색과 푸른색 그리고 태양의 햇살이 커피 향에 젖으니 이곳이 지중해 해안에서 가장 멋진 장소인 듯하다.

몬타자 궁전. 하늘의 붉은빛을 돌돌 말아 건물을 덮고 있다. 눈앞에서 멋진 풍광을 자랑하던 건물은 1892년 H H 케디브 압바스 II(1892-1914)에 의해 몬타자 정원의 대통령 궁 옆에 지어진 살렘렉 궁전이다.

눈앞에서 멋진 풍광을 자랑하던 건물은 1892년 H H 케디브 압바스 II(1892-1914)에 의해 몬타자 정원의 대통령 궁 옆에 지어진 살렘렉 궁전이라 한다. 도심에서 먼 거리에 위치해 조용하기도 하지만 하늘의 평화로운 분위기가 더하니 아름답기 그지없다. 체크아웃을 마치고 나서는 길에 호텔 발코니에서 보았던 몬타자 궁전 앞에 내려 주변을 산책한다. 마무라 해변의 모래가 바람에 쓸려 눈을 따끔거리게 한다. 아쉽지만 휴양도시인 알렉산드리아의 분위기를 이렇게라도 짧게 즐기고 알렉산드리아 시내로 향한다.

풍경을 만끽하는 커플들. 성채의 테라스에 오르면 알렉산드리아의 멋진 바다 풍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코르니쉬의 넓은 해안 산책로를 따라 카이트베이 성채에 도착한다. 성채는 15세기 방어 요새로 1477년 술탄 알-아쉬 라프 사이프 알-딘 카이트베이에 의해 설립되었다고 한다. 유명한 파로스 등대 폐허 위에 새롭게 등대를 세울 때 사용했던 석재를 요새 건축에 재사용했다. 성채는 동부 항구의 입구에 있는 파로스섬 북동쪽에 위치하고 있어 멀리서 보면 햇빛을 받아 황금색으로 빛난다. 방어용 요새라고 하기에 무색할 만큼 아름답다. 성채의 테라스에 올라 보면 알렉산드리아의 멋진 바다 풍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데이트하는 선남선녀들 역시 이 풍경을 만끽하는지 여러 커플이 눈에 띈다.

앞 바다에는 잠수부들이 발굴 작업을 하고 있다. 기원전 31년, 악티움해전에서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가 패배한 후 클레오파트라가 독사에게 물려 죽기까지 머물렀던 궁의 수많은 유물이 이 해안 바다 밑에 묻혀 있다고 한다. 당시의 도시 잔해들이 이 성채 아래 바다에 잠겨 있다고 생각하니 상상만으로도 호기심이 가득 차오른다.

지중해의 아름답고 푸른 물을 배경으로 해안 도시들이 멋진 관광지를 형성한다. 이 매력적인 도시들은 아름다운 자연과 함께 오랜 역사와 유서 깊은 문화를 간직하고 있다. 이제는 역사의 중심지에서 한발 물러나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찾는 관광지로서의 매력은 시간이 갈수록 더 깊어지는 듯하다. 몬타자의 무덤과 함께 수중 유적과 같은 몇몇 고대 유적지를 뒤로 하고 70㎞ 이상 뻗어 있는 해안선을 따라 아름다운 항구를 바라보며 다음 목적지인 카이로를 향해 떠난다.

성 비쇼이 수도원. 와디 나트룬은 카이로에서 북서쪽으로 100㎞ 떨어진 서부 사막에 위치한 콥트 수도원으로 4세기에 지어졌다.

카이로로 되돌아가는 길에 콥트 수도원을 방문하기로 했다. 와디 나트룬은 카이로에서 북서쪽으로 100㎞ 떨어진 서부 사막에 위치한 성 비쇼이 수도원으로 4세기에 지어졌다. 비쇼이 수도사는 이 수도원에 거주했던 수도사로 320년에 태어났으며 일곱 형제 중 막내였다고 한다. 천사는 그의 어머니에게 아들 중 한 사람을 하나님께 달라고 부탁했고 약하고 연약한 아이 비쇼이가 선택되었다고 한다. 비쇼이는 20세의 나이에 지금의 성 비쇼이 수도원의 위치로 인도되어 은둔생활을 시작했으며 사랑, 지혜, 단순함, 친절, 극단적인 자기 수양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수도원과 그의 이야기를 전하는 수도사는 비쇼이 성인이 여러 차례 예수님을 만났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종교적 성지에 대한 설명은 신비함으로 다가왔다. 그의 시신은 무슬림세력이 침공했을 때 수도원을 떠날 수밖에 없었지만, 결국 다시 수도원으로 돌아와 안장되었다고 한다. 수많은 콥트교 유물과 함께 알렉산드리아의 교황 셰누다 III 시신도 이곳에 묻혀 있다.

수도사의 안내로 성 비쇼이 수도원에 관한 설명을 듣는다. 성 비쇼이 시신은 무슬림세력이 침공했을 때 수도원을 떠날 수밖에 없었지만 결국 다시 수도원으로 돌아와 안장되었다고 한다. 수많은 콥트교 유물과 함께 알렉산드리아의 교황 셰누다 III 시신도 이곳에 묻혀 있다.

안내하는 수도사를 따라 베르베르인들이 마흔 아홉 장로 순교자들을 죽인 후 칼을 씻었다는 순교자의 우물을 찾아 교회 밖으로 나왔다. 정원을 걷다 보니 새로운 성당을 돌아다니는 상주 수도사들이 보인다. 그들을 따라 일상생활을 훔쳐본다. 그들은 여전히 수도원에 살고 있다고 한다. 더 이상 접근할 수 없는 수도원 생활공간을 벗어나 그들의 옛 모습을 전시해 놓은 박물관을 들여다보기로 했다. 식사를 준비하고 먹는 장소와 예배를 드렸던 장소까지 훑어본다. 2012년 3월에 사망한 알렉산드리아의 콥트 정교회의 교황 셰누다 III에 의해 수도원 주변이 개발되고 고대 건물과 교회가 복원됐다. 옥상에서 사막의 아름다운 전망을 감상하며 시간의 역사를 되짚어 본다. 성경의 한 구절인지 아니면 역사책 한 장인지 누군가의 기억 한 편 한 편이 사막 저편으로 사라진다. 무언지 모를 무거운 마음도 따라 흩날린다.

오랜 여정 동안 놀라운 시간의 여행으로 역사를 찾아가고 다시 되돌아오며 신비한 마음을 갖고 카이로로 들어선다. 가늠할 수 없는 역사의 깊이와 척박한 환경을 헤쳐 나온 인류의 위대함을 가슴에 새기며 오랜 이집트 여정을 마무리한다.

박윤정 여행가·민트투어 대표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박보영 '빠져드는 눈빛'
  • 박보영 '빠져드는 눈빛'
  • 임지연 '러블리 미모'
  • 김민주 '청순미 폭발'
  • 김희애 '여전한 미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