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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보다 대화로”… 범죄 확산 막는 ‘회복적 경찰활동’ 뜬다

입력 : 2019-11-05 19:34:59 수정 : 2019-11-05 21: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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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대, 아랫집 항의 방문에 칼 위협 / 경찰, 사법처리 앞서 대화로 중재 / 가해자측 알코올 중독 등 사정 설명 / 피해자측 사과 받고 치료 전제 합의 / 2019년 완료 72건 중 92% 조정 이뤄 / 피·가해자 모두 만족도 80% 달해 / 학폭·강제추행 등 사건서도 성과

‘쿵쿵쿵.’

지난 6월 어느 날 오후 6시쯤 경기 부천의 한 아파트에 사는 이모(37)씨는 또다시 위층에서 시작된 소음에 눈살을 찌푸렸다. 그칠 때까지 기다려보자고 생각했지만 소음은 멈출 기미가 없었다. 임신 초기라 예민한 아내가 극도의 스트레스 증세를 호소하자 이씨는 결국 위층으로 올라갔다. 그간 전화로 수차례 항의해도 ‘뭐! 안 들려!’라며 큰 소리로 대꾸하던 위층 거주자에게 직접 따지기로 한 것이다. 문을 두드리자 김모(89)씨가 나왔지만 그는 이씨의 항의에 사과는커녕 흉기를 들고나와 욕을 하며 위협했다. 이씨는 곧바로 112에 신고했고, 김씨는 체포됐다.

증거가 명백했기 때문에 사건은 빠르게 종결될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경찰은 층간소음이란 특성상 김씨의 처벌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데 주목했다. 양측의 앙금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언제든 김씨가 다시 소음을 낼 수 있고, 이씨 역시 계속 불안감을 가질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경찰의 중재로 결국 민간 전문가가 진행하는 대화의 장이 마련됐다. 이씨의 요청으로 고령의 김씨를 대신해 그의 아들이 나왔다. 기대하지 않았던 자리에서 이씨는 김씨가 치매에 걸린 아내를 11년간 돌보며 생긴 스트레스로 알코올 중독상태라는 걸 알게 됐다. 난청으로 거칠게 전화를 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도 이해했다. 김씨 측 역시 이씨 가족이 예민한 상황임을 이해하며 진심 어린 사과의 말을 건넸다. 이씨는 김씨가 향후 알코올 중독 치료를 위해 노력하는 조건 등을 제시하며 합의서를 써줬다. 김씨는 검찰에서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자칫 큰 싸움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있던 사건이 대화를 통해 해결의 실마리를 찾은 것이다.

이 사건은 경찰청이 전국 15개 경찰서에 시범 도입한 ‘회복적 경찰활동’의 한 성공사례다. 회복적 경찰활동은 단순히 가해자를 처벌하며 사건을 종결하는 것이 아니라 피·가해자 간 대화를 유도해 피해자의 실질적 권리를 회복하는 제도다.

5일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 4월부터 회복적 경찰활동을 시범운영한 결과 총 90건이 접수돼 72건이 완료됐는데, 이 중 66건(91.7%)에서 조정이 이뤄졌다. 조정 내용(중복 포함)은 재발방지 및 관계회복 약속 58건, 가해자 사과 49건으로 조사됐다. 사건당 대화는 평균 3회 이뤄졌고, 모임마다 6시간 정도가 소요됐다.

고무적인 부분은 피·가해자의 만족도가 각각 80.9%, 80%로 높게 나타났다는 점이다. 피해자의 실질적 피해 회복과 함께 가해자의 재발방지 노력이 동시에 이뤄질 수 있다는 사실이 확인된 셈이다.

사건별로는 학교폭력 사건이 28건으로 가장 많이 접수되며 긍정적인 결과를 보였다. 자신의 여자친구에게 관심을 보였다는 이유로 친구 사이인 가해자들이 피해자 1명을 협박한 사건이 대표적이다. 이 사건에서 피해자는 아파트 옥상에서 투신자살을 시도하기도 했지만 대화를 통해 재발방지 약속과 함께 관계회복이 이뤄졌고 사건이 정식으로 접수되기 전 사안은 종결됐다. 다른 학교폭력 사건에서는 째려보지 않기, 서로 인사하기 등 사법절차에서 보기 힘든 창의적인 해결책이 제시되기도 했다. 강제추행처럼 대화가 쉽지 않아 보이는 사건도 성과를 거뒀다. 지난 8월 한 남성으로부터 강제추행을 당한 C씨는 변호사의 만류에도 가해자와 대화를 나눴고, 결국 사과를 받아낸 뒤 정신적 외상을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었다. 경찰은 이런 내용을 수사기록에 담아 이 남성을 검찰에 송치했다.

현재 검찰 단계 형사조정제도 등 다른 제도가 있지만 갈등의 골이 깊어지기 전인 경찰 단계에서 대화를 매개로 해결책이 마련된다는 점에서 회복적 경찰활동의 성공적 정착은 의미가 크다는 분석이다. 경찰 관계자는 “이 활동이 정착되면 사소한 갈등이 큰 범죄로 확대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며 “공동체 구성원 간 갈등해소, 관계회복 등을 통해 지역사회의 평온을 유지해 나가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희경 기자 hjhk3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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