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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형 국립외교원장 “지금 한반도는 70년의 분단질서 극복할 좋은 기회” [세계초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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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11-05 19:30:48 수정 : 2019-11-05 19:3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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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한반도 70년 분단질서 극복 기회 / 또 강대국 대결국면으로 되돌아가면 / 과거의 역사 반복… 분단체제 고착화돼 / 평화 프로세스 장애물은 북한 / 핵무기 외교역량 총동원 중립적 역할 찾아야 / 北 금강산 관광 남측 시설 철거 요구는 / 美조차도 설득 못하는 南에 대한 불만 / 北·美 실무협상 깨져도 물밑협상 계속 / 北, 美의 양보 확신할 때 협상장 나올 것 / 미사일 도발은 좌절 탓… 판 깨지 않을 듯

지난 8월 김준형 한동대 국제지역학과 교수가 외교부 차관급 자리인 국립외교원장에 내정되자 외교가에서는 의외라는 반응이 나왔다. 문재인정부 외교·안보 정책의 큰 그림을 그려온 국제정치학자가 외교부 인사들이 주로 담당해 온 외교관 양성기관의 원장을 맡게 되자 사람들이 보인 반응이다.

한편으로는 국립외교원이 외교관 양성과 교육을 전담하는 조직이기 때문에 청와대가 외교부 체질을 뿌리부터 바꾸기 위한 조치를 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미국 유학파 출신 학자임에도 진보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김 원장이 그 적임자라는 것이다.

오는 9일로 취임 석달째를 맞는 김 원장을 지난 4일 서울 서초구 국립외교원 원장실에서 만났다. 그는 “현재 한반도는 지난 70년간 이어져 온 분단의 관성을 극복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앞에 서 있다”고 강조했다. 주변 강대국들은 대한민국을 향해 미국이냐 중국이냐를 선택하라고 압박하고 있지만, 이럴 때일수록 “우리의 외교역량을 총동원해 완충적이고 중립적인 역할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서 제기되는 한·미동맹 불화설에 대해서도 김 원장은 “동맹의 유연화와 조정이 필요한 때”라고 지적했다. 다음은 김 원장과의 일문일답이다.

 

김준형 국립외교원장이 지난 4일 서울 서초동 국립외교원에서 세계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최근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이제원 기자

―문재인정부 외교·안보 정책을 수립할 당시 어떤 부분에 중점을 뒀나.

“외교정책의 밑그림을 그릴 당시 전제 조건은 외교 상황이 쉽지 않을 것이란 점이었다. 가장 큰 변수는 미·중 대결구조라고 봤다. 우리의 분단체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두 강대국의 갈등이 시작되면 현실주의적 국제정치가 다시 주류가 될 수 있었다. 다시 강대국의 대결 국면으로 돌아가면 지난 70년의 관성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주변국 모두와 관계가 좋아야 하는 지정학적 위치를 지녔다. 우리에게 유리한 것은 국제협력, 신자유주의, 자유무역 같은 것들이다. 이런 어려운 환경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평화구조를 만드는 것이었다. 대결구조의 희생양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게 바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다. 한국에서 통일 담론은 진보정권이 내세우기는 쉽지 않다. 분단 고착 세력으로 몰릴 수 있기 때문이다. 통일을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평화공존이라는 점에서 평화프로세스를 계획했고, 지난해 엄청난 변화까지는 예측하지 못했지만 한반도의 지속가능한 평화체제 건설이라는 것은 큰 그림 중 하나였다.”

―남북관계가 올해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교착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처음 출발점을 연결해 준 것은 분명 우리의 역할이었다. 이 평화프로세스의 입구에서 막고 있는 장애물은 북한의 핵무기다. 비핵화는 평화로 가는 중요한 과정이다. 미국과 북한의 입장은 서로 엇갈려 있다. 북한은 비핵화를 위해서는 미국이 먼저 적대시 정책을 풀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미국은 비핵화를 해결해야만 제재를 풀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두 가지를 동시 병행하는 것이 제일 좋지만, 지난 70년간 쌓인 북·미 간 불신이 문제다. 한 사람은 총을 내려놔야 신뢰가 생긴다고 하고, 다른 사람은 신뢰가 생겨야 총을 내려놓을 수 있다고 하는 격이다. 다만, 북한은 신뢰를 달라고만 하는 것이 아니라, 무기를 내려놓을 테니 몇 가지 보증과 담보를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검증과 사찰,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이나 풍계리 핵실험장 등은 모두 협상의 앞부분에 있고, 이후 미국이 해줄 보상은 협상의 뒷부분에 있다. 미국도 보증을 협상의 앞부분에 최소한 맛보기 수준이라도 줘야 한다.”

―금강산 관광을 둘러싼 문제가 이슈가 됐다. 정부가 묘수를 찾아내 관광을 재개할 수 있을까.

“북한이 마지막 승부를 위해 모든 역량과 카드를 다 꺼내는 것 같다. 김계관, 김영철, 최룡해까지 나왔으니 북한도 부를 수 있는 사람은 다 부른 것이다. 금강산 관광지구 내 남측 시설 철거 요구에는 다중적 의미가 다 있다고 본다. 북한의 대내, 대미, 대남적 의중을 다 품고 있다. 자력갱생 측면에서 미국이나 남한이 도와주지 않으면 중국이나 러시아 등에 자신들의 정당성을 이야기할 것이다. 남한을 향해서는 대북 제재 대상이 아닌 금강산조차도 미국을 설득하지 못한다면 이번 협상 판에 들어오지 말라는 것이다. 미국을 향해서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계속 경제적 잠재성, 장밋빛 미래만 이야기하는데 지금 줄 수 있는 것을 달라, 제재만 풀어주면 발전은 우리(북한)가 한다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다.”

―스톡홀름 실무협상 결렬 이후 추가 접촉 소식이 잘 들리지 않고 있다. 향후 북·미 대화는 어떻게 전망하나.

“북·미가 친서외교나 연락외교는 하는 것 같다. 물밑에서 이야기는 이어가고 있지만 북한 입장에서 금방 협상이 결렬됐다고 했는데 당장 다시 협상장에 나오기는 힘들 것 같다. 특히 미국이 무엇을 양보할 수 있느냐에 대한 확신이 생기기 전에는 다시 나오기 힘들 것으로 본다. 그렇다고 북한이 전략 도발로 돌아가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이 판을 완전히 깨는 건 북한이 되고 그 책임을 져야 한다. 그때는 제재도 더 강화되고 중국과 러시아도 북한을 도울 명분이 없다. 북한이 최근 보이는 모습(미사일 도발)은 실제로는 북한의 좌절감과 절박감의 표현이라고 본다. 이제 한국은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할 것인지, 미국 주류가 이야기하는 북한의 양보와 항복 요구로 거래할 것인지, 아니면 북·미가 다시 만나는 것을 기다릴 것인지 하는 선택이 남았다.”

―한·미동맹이 예전 같지 않다는 우려가 크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문제부터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 이르기까지 파열음이 계속 생기는데.

“한·미동맹은 중요하다. 중국이라는 거대한 세력이 부상하면서 우리에게 위협이 되고 있다. 우리가 당장 백척간두에 목숨이 걸려 있는 상황이라면 일본이나 이스라엘처럼 한·미동맹에 올인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의 무역구조나 경제구조를 보면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다. 미국에 올인하려면 기업가들이 중국에서 다 나와야 하고, 중국과 다변화나 디커플링(탈동조화)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 중국을 포기하고 한·미·일 동맹에 바로 들어가 버리기는 어렵다. 이슈별로 한·미·일 군사동맹은 할 수 있지만 한·미·일 동맹은 다른 문제다. 한·미동맹을 두고 파열음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경로 의존적이거나 신화로 이 문제를 바라보는 것이다. 우리의 미래는 아직 미국이나 일본과 정확히 일치하지 않는다. 한·미동맹의 조정기라고 본다. 동맹의 유연화와 조정이 필요한 시기다.”

―얼마 전 중국과 러시아가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카디즈)에 진입하는 문제가 발생했다. 주변 강대국들과 어떻게 관계를 설정해야 하나.

“전 세계적으로 외교·안보 지형이 변하고 있다. 가장 큰 변수는 미국과 중국이다.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주변 4강도 모두 불안한 상황이다. 러시아는 유럽에 제재를 당하고 있고, 아시아 정책에서는 자신들이 실패했다고 판단하고 있다. 탈냉전기에 섣불리 한국 편을 들었다가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상실했다고 생각한다. 중국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를 과장해 대응한 것을 후회한다. 한국에 제재를 가해보니 미국 쪽으로 가버리더라는 것이다. 이제 중국이 한국을 중국쪽으로 끌어들이기는 불가능해졌다. 중국은 한국이 완충적, 중립적 역할만 해줘도 유리하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북한이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를 모른다는 것이다. 자신들의 도발에 한국과 미국, 일본이 어떻게 대응하는지를 보는 것이다. 과거처럼 한·미·일 대 북·중·러 구도가 확정된 것이 아니라 한국의 약한 고리를 건드려보면서 반응을 떠보는 것이다. 앞으로도 비슷한 문제가 엄청난 스트레스로 작용할 것으로 본다.”

―한국의 외교정책 방향은 어떻게 설정해야 하나.

“현재 편 가르기 구도에 우리가 직접 뛰어들면 미국이나 중국 중 한 곳에 서야 한다. 일본은 계속 우리와 미국을 이간질하며 이번에 확실히 편을 정하라고 압박한다. 이럴 때일수록 대외적인 발언이 중요하다. 미국은 최근 보호무역을 하고 있지만 우리가 지켜야 할 대원칙은 자유무역이다. 자유무역 수호, 항행의 자유를 계속 이야기해야 한다. 아시아의 비핵지대가 필요하다고 역설하고, 우리는 핵무기 경쟁에 참여할 수 없다는 담화를 내야 한다. 우리가 긍정도 부인도 하지 않는 모호성 정책을 쓰다가 사드 문제가 촉발됐다. 정확한 외교원칙을 발신해야 할 때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지금은 격동의 시기다. 우리가 가장 영향을 받고 있지만 주변 강대국들도 불안한 것은 마찬가지다. 위기에서 기회가 온다. 70년간 이어져 온 분단질서를 극복할 기회 말이다. 우리에게는 미국이라는 안전판이 있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해본 뒤에 안 되면 돌아가도 늦지 않다. 처음부터 숙명론이나 위기론으로 간다면 70년의 분단질서를 극복할 기회를 놓치게 될 것 같다.”

 

대담=박종현 외교안보부장
정리=조병욱 기자 brightw@segye.com

 

김준형 국립외교원장은… ●강원 홍천 출생(1963년) ●대구 달성고 ●연세대 정치외교학 학사 ●미국 조지워싱턴대 정치학 석·박사 ●대통령직속 정책기획위원회 평화번영분과 위원, 한반도평화포럼 외교연구센터장, 외교부 혁신이행외부자문위원회 위원장 등 역임 ●한동대 국제지역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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