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지하철 6호선 창신역에서 낙산 채석장 전망대로 가는 길은 숨이 턱턱 막힌다. 오르막의 연속이다. 언덕배기를 빼곡히 메운 살림집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다리가 고달프다. 얼마나 더 가야하나 싶을 때쯤 나타난 전망대에 오르면, 순간 가슴이 탁 트인다. 강북 시가지가 발 아래로 시원하게 펼쳐진다. 전국 1호 도시재생 선도지역인 서울 종로구 창신숭인 지역의 과거와 미래를 보여주는 단면이다. 30일 방문한 창신숭인 지역에서는 서울시 도시재생사업의 현 주소를 확인할 수 있었다.
낙산 자락에 있는 이 지역은 일제강점기에 채석장으로 사용됐다가 6·25전쟁 이후 이주민과 피난민이 모여들면서 마을을 이뤘다. 2007년 뉴타운으로 지정됐지만 주민 반대로 2013년 지정이 해제됐다. 이듬해 도시재생 선도지역으로 선정됐다. 종로구 창신1·2·3동, 숭인1동 약 83만㎡ 지역이 대상이다.
그런만큼 주거 환경은 좋지 않다. 골목길은 좁고 구불구불한 데다 급경사다. 서울시는 재생 사업을 통해 지역 주민이 아파트 단지 못지 않은 편의 시설을 누리고, 함께 모여 어울릴 수 있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노후 주택을 전면 철거하기보다 지역 대표 산업인 봉제산업과 역사·문화자산을 보존하려 했다. 그 결과 낡은 듯 정감 어린 주택 사이로 이 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매력적인 공간들이 자리잡게 됐다.
다음 달 문을 여는 채석장 전망대도 이런 공간 중 하나다. 시는 채석장 일대를 2025년까지 약 944억원을 들여 지역 명소로 재단장할 계획이다. 전망대에 이어 낙산배수지 주변에 입체 보행데크 공원을 조성하고 야외 음악당 등도 들인다.
좀더 아래로 발길을 돌리면 창신소통공작소가 나타난다. 주민들이 목공, 수공예 등 생활예술을 즐기는 곳이다. 그 아래 자리한 ‘산마루 놀이터’는 외관부터 예사롭지 않다. 황토빛 둥근 건물로, 골무 모양을 형상화했다. 들어서자마자 9m 높이 정글짐이 나타나 아이들이 환호성을 지른다고 한다.
빼곡한 저층 벽돌주택 사이에 자리한 ‘이음피움 봉제역사관’은 이 지역의 정체성을 응축한 곳이다. 창신숭인은 봉제 업체 1100여곳과 봉제 종사자 3300여명이 몰려 있어 우리나라 봉제산업 1번지로 불린다. 지난해 문을 연 역사관에는 지금까지 2만5000여명이 다녀갔다. 미디어 아티스트 백남준(1932∼2006)이 다섯 살 때부터 살았던 옛 집터는 2017년 기념관으로 거듭났다.
도시재생사업으로 주민들의 주거 환경도 개선됐다. 골목길 14곳에는 폐쇄회로(CC)TV와 비상벨이 설치됐고, 200곳에는 태양광 조명등이 들어섰다. 노후 하수도(9.4㎞) 정비는 2021년 완료된다.
창신숭인은 전국 1호 지역재생기업(CRC)이 탄생한 곳이기도 하다. 지역주민들이 공동출자해 2017년 5월 ‘창신숭인 도시재생협동조합’을 설립했다. 조합은 백남준 기념관의 마을카페 및 지역축제 ‘꼭대기장터’ 운영, 도시재생 전문가 교육 등을 통해 일자리와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 지역 주민의 자발적 힘으로 도시 재생 관련 사업을 이어가도록 하는 것이 서울시의 목표다.
지난 5년간 창신숭인 재생에 투입된 총 사업비는 200억원. 현재 12개의 마중물 사업 중 11개가 마무리됐다. 내년 3월 마지막으로 창신3동 주민공동이용시설인 ‘원각사’가 문을 연다.
글·사진=송은아 기자 se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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