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이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 논의 과정에서 한·미연합사령부의 위기관리 대응 범위를 ‘한반도 유사시’에서 ‘한반도 및 미국의 유사시’로 확대해 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진 이후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우리 정부의 강력하고 치밀한 대응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미국의 요구는 자국의 안보가 위협받을 경우 한국이 군사작전에 나서 달라는 요구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주장하고 있는 동맹국의 “더 많은 기여”를 군사작전 분야에서도 요구한 셈이다. 전문가들은 대등한 관계에서 이익을 주고받는 ‘호혜주의’에 입각한 미국의 요구를 무조건 거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거부보다는 한국의 책임과 한계를 명확히 하고, 전작권 전환에도 보다 신중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29일 복수의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양국의 군 실무자들이 지난주 한·미연합사의 연합방위 및 위기관리체제를 규정한 ‘한·미 동맹위기관리각서’를 전작권 전환에 맞춰 개정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논의 과정 중 미측은 위기상황에 ‘미국의 유사시’라는 문구를 추가해 달라고 제안한 것으로 전해졌다. 우리 측은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이후 내부회의를 여는 등 대책 마련에 분주한 분위기다.
미국의 요구대로 ‘미국의 유사시’라는 문구가 각서에 포함되면 향후 미국이 호르무즈해협 파병, 남중국해 분쟁까지 한국군의 개입을 요구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해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한·미 양국이 1953년 체결한 한·미 상호방위조약에 따라 원칙을 세우고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상호방위조약에는 태평양지역에서 무력공격을 받을 경우 양국이 공통의 위험에 대처하기 위해 각자 헌법상의 절차에 따라 행동하도록 규정돼 있다. 신 센터장은 “한국의 과거 역량으로는 미국을 지원할 수 없었지만, 이제 한국의 영향력이 커진 만큼 호혜원칙에 따라 미 측이 동맹위기관리각서에 관련 조항을 넣자는 요구를 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요구 자체를 거부하는 것은 안 된다”며 “호르무즈 파병 등 방위조약을 넘어서는 요구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기준과 원칙을 명확히 세우고 대응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도 “미국의 요구에 대해 안 된다고 얘기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은 전작권이 전환되면 (미군이) 다른 일에 집중할 수 있고 한국군의 기여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듯한데, 전작권 전환을 서두르는 게 바람직한지 깊이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최현수 국방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전작권 전환 후 미국이 위기라고 판단하는 해외 분쟁지역에 우리 군을 보내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엄형준 기자 tin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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