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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료·이익집단 결탁 부패 고리… 그들만의 세상 ‘ ○ 피아’ [대한민국 신인간관계 보고서]

, 대한민국 신인간관계 보고서

입력 : 2019-10-19 19:00:00 수정 : 2020-08-05 15: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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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어느분야든 ‘독버섯’처럼 존재 / 모피아·정피아·법피아·세피아·교피아 / 고위공직자 퇴직 후 자리 만들려 유착 / 마피아 같은 ‘권력망’ 구축 사회 주물러 / 생명력도 끈질겨 / 세월호 때 안전불감 ‘해피아’ 도마 올라 / ‘모피아’ 독식 6개 금융협회장 바꿨지만 / 사태 잠잠해지자 3곳 다시 官출신 회귀 / 제재는 솜방망이 / ‘취업제한 강화’ 2014년 법 개정했지만 / 재취업 심사 10명 중 9명은 ‘무사 통과’ / 임의취업 걸려도 ‘생계형’ 등 이유 면탈 / 전문가들 진단 / 정부 로비 필요없는 ‘공정경쟁’ 룰 필요 / 퇴직자 취업 무조건 막는 건 실효 없어 / 투명 공개 후 비리 적발 땐 처벌 강화를
모피아(옛 재무부+마피아), 정피아(정치권+마피아), 해피아(해수부+마피아), 법피아(법조+마피아), 세피아(국세청+마피아), 교피아(교육부+마피아), 국피아(국방부+마피아), 철피아(철도+마피아), 농피아(농업+마피아)…. 우리 사회 곳곳에 퍼져있는 ‘○피아’의 다양한 이름이다. 관료와 이익집단이 결합해 이탈리아 범죄조직 마피아와 같이 거대한 세력을 구축했다고 해서 이름붙여진 ‘○피아’는 각 분야에서 기득권을 쥐고 사회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고 있다.

◆어느 분야에나 있는 ‘○피아’

‘○피아’의 출발은 관료와 마피아의 합성어인 ‘관피아’이다. 대개 정부 부처의 고위공직자들이 퇴직 후 유관 기관에 취업하고 전 소속 기관에 영향력을 행사하며 공고한 관계망이 형성된다.

문제는 이들이 ‘부패의 고리’로 엮여 우리 사회에 골고루 배분돼야 할 자원을 독식하며 왜곡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형 사건 사고가 터질 때마다 원인을 파고 들어가다 보면 그 끝에는 관피아가 등장한다. 지난 2014년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드러난 ‘해피아’가 대표적이다.

당시 사고 원인은 명쾌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화물 과적과 무리한 선체 증축 등도 일정 역할을 했다고 지목된다. 사고 조사 과정에서 세월호가 선박 안전검사권을 독점하고 있는 한국선급의 안전검사를 무사 통과했고, 여객선의 안전운항을 지도·감독하는 해운조합은 과적 등의 규정 위반을 걸러내지 못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한국선급과 해운조합은 해양수산부 퇴직 관료인 ‘해피아’가 많이 취업한 곳이었다. 해운조합은 1962년 출범 이후 해수부 출신이 이사장을 거의 독식했다. 당시 공직자윤리법은 고위공직자가 퇴직 후 민간기업, 법무, 회계, 세무법인에 취업할 때만 취업승인 심사를 받고 공공기관이나 조합, 협회 형태로 된 비영리단체는 취업제한 대상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해수부 일을 위임받아 해운업계를 쥐락펴락하는 이들 단체와 해수부의 유착관계도 드러났다. 지난 2016년 법원은 해수부 관련 부서 공무원에게 장기간 골프 접대와 향응 등을 제공한 한국선급 주요 간부들에게 뇌물공여 혐의로 벌금형을 선고했다.

금융권에는 관피아의 원조 격으로 통하는 ‘모피아’가 있다. 옛 재무부의 영어 약자(MoF·Ministry of Finance)를 따서 붙은 이름이다.

모피아는 재무부와 경제기획원이 통합된 재정경제부를 거쳐 현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로 이어진다. 국가 경제와 돈을 주무르는 이들 엘리트 관료조직은 유독 끈끈한 응집력을 바탕으로 금융권을 움직이면서 낙후된 금융산업의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은행연합회, 생명·손해보험협회, 금융투자협회, 저축은행중앙회, 여신금융협회 등 6개 금융협회장은 모피아의 단골 자리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관피아 논란이 커지면서 한때 모두 민간 기업 최고경영자(CEO) 출신으로 채워지기도 했지만 현재 3곳은 다시 관 출신으로 교체됐다. 각 업권의 이익을 대표하는 이들 협회 외에 각종 금융공기업 수장도 모피아가 차지하고 있다.

한 금융기관 관계자는 “금융권에서 모피아는 여전히 득세하고 있다”며 “예전에는 고위공무원이 퇴직 후 금융 유관기관장 자리를 2번에서 3번까지 차지했다면, 최근에는 한 번만 맡는 정도로 줄어든 정도”라고 말했다.

관피아 개인 차원을 넘어 부처에서 조직적으로 퇴직자들의 민간기업 재취업을 알선한 정황이 드러나기도 했다.

지난 7월 서울고법은 공정거래위원회 퇴직 공무원들한테 일자리를 달라고 강요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정재찬 전 공정위 위원장에게 1심과 같이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같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학현 전 부위원장에게는 징역 1년6개월을 선고했다. 함께 기소된 일부 공정위 전·현직 간부들은 각 사유에 따라 무죄 또는 벌금 300만∼500만원, 집행유예 등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취업자들의 나이, 실제 수행 업무와 내용을 봤을 때 기업이 자의로 이런 사람을 채용할 이유가 없었다고 보고 공정위의 위력이 행사됐다고 판단했다.

◆공직자 취업제한에도 대부분 ‘무사통과’

관피아 세력을 불려나가는 핵심 고리를 끊기 위해 도입된 것이 고위공직자의 퇴직 후 취업제한 제도이다. 2014년 개정된 공직자윤리법(‘관피아 방지법’)에 따라 4급 이상 공직자와 일부 특정업무를 수행하는 5∼7급 공직자가 퇴직 후 3년 이내에 업무 관련 기관에 취업하려면 공직자윤리위 심사를 받아야 하지만 취업제한을 받는 공직자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참여연대 행정감시센터가 지난 3일 발간한 ‘세무·시장 감독기관 퇴직공직자에 대한 취업심사 운영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 6월부터 2019년 5월까지 취업제한 심사를 받은 5개 세무·시장 감독기관 퇴직공직자 179명 중 ‘취업가능’ 결정을 받은 사람은 173명(96.7%)이었다.

기관별로 공정위는 취업제한심사를 받은 20명 중 18명(90%), 관세청은 60명 중 59명(98.3%), 금융감독원은 44명 중 41명(93.2%)이 ‘취업가능’ 결정을 받았다. 국세청과 금융위는 각각 48명, 7명이 심사를 받아 모두 취업이 허용됐다.

이들은 전 소속 기관의 업무와 사업상 관련이 있는 전문분야로 취업했다. 관세청 퇴직공직자 중 39%(23명)는 한국면세점협회 등에, 국세청 퇴직공직자 중 33.3%(16명)는 세무법인 등에 취업했다. 특히 정부공직자윤리가 업무 관련성이 없다고 판단한 173명 가운데서도 35명(20.2%)은 업무 관련성이 있는 것으로 보이거나 의심되는 것으로 확인됐다.

참여연대는 앞서 지난해에도 고위공직자 취업제한 제도 운영실태를 분석해 2014년∼2017년 사이 취업제한 심사를 받은 공직자 1465명 중 1340명(93.1%)이 ‘취업가능’ 결정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 기간 취업심사를 거치지 않고 임의 취업한 퇴직자도 648명으로, 이 중 411명(63.4%)이 ‘생계형 취업’, ‘자진퇴직자’라는 이유로 과태료 등 제재를 면제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참여연대는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퇴직 후 취업제한 기간을 늘리고 취업제한 기관 및 직무 관련성 판단 범위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공직자윤리법이 개정됐지만 취업승인 비율은 도리어 증가하고 있다”며 “취업심사를 거치지 않고 임의 취업한 퇴직자에 대해서도 책임을 면제하는 것은 온정주의적 처분”이라고 지적했다.

 

◆“관피아 없애려면 정부의 시장 개입 줄여야”

 

공직자와 각종 단체가 유착하는 ‘관피아(관료+마피아)’ 문제를 막기 위해 고위공직자의 퇴직 후 취업제한 제도가 강화되고 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시장에서 공정한 경쟁이 이뤄지도록 돕는 역할을 하는 등 유착 유인을 차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상인 서울대 교수(행정학)은 16일 세계일보와의 통화에서 관피아가 사라지지 않는 이유에 대해 “과거 정부 주도적인 경제 발전을 해왔고 정부가 개입하는 부분들이 여전히 너무 많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이익단체에서) 정부에 로비 필요성이 있다면 당연히 정부와 커넥션을 만들려고 할 것이고, 관료들도 그런 걸 통해 퇴임 이후 자리를 보장받을 수 있다”며 “정부 주도형 경제운영이 바뀌지 않고서는 사건이 터져서 바꾼다고 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복구되고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이 같은 문제를 막기 위해 정부 역할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예컨대 특혜 논란이 자주 불거지는 면세점 사업권은 심사해서 사업권을 주는 방식이 아닌, 경매 방식으로 바꾸면 정부의 개입 여지가 줄어들 수 있다는 설명이다.

 

박 교수는 “시장과 정부가 어떻게 관계를 맺느냐가 중요하며, 정부는 시장에서 공정한 게임이 이뤄질 수 있는 룰을 만들고 그걸 집행하는 역할로 바뀌어 나가야 한다”며 “시장에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나 디스커버리 제도(재판 전 당사자들이 서로 자료를 공개하는 제도) 등을 도입해 공정한 경쟁과 공정한 보상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퇴직 공직자가 관계 기관에 재취업한 사실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문제가 생기면 처벌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유한범 한국투명성기구 사무총장은 “관피아가 여전하긴 하지만 ‘관피아 방지법’ 등의 제도적인 장치로 어느 정도 줄어든 것 같다”며 “향후 공직자가 재취업할 때 이해관계가 있었던 부분, 근무했던 부분에 대해서 모든 관피아의 우려가 있는 여러 기관이 다 공개하고 등록을 하게 하면 제도의 취지를 더 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양재진 연세대 교수(행정학)는 “우리나라는 모든 걸 사전 규제로 봉쇄해버리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며 “공직자의 직업 선택이나 이동 자체를 막기보다는 커넥션이나 부정부패가 있다거나 할 때 처벌을 강화하는 식이 낫다고 본다”고 말했다.

 

백소용‧이희진 기자 swini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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