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과거의 고통·분노… 기억을 어루만지다

입력 : 2019-10-08 21:22:29 수정 : 2019-10-08 21:22:27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장강명 소설 ‘그믐, 또는…’ 연극 무대로 / 행동의 나열 통해 인물·장면 전달 / 일반적 시간의 개념·흐름 뒤집어

‘한국이 싫어서’, ‘댓글전쟁’, ‘우리의 소원은 전쟁’ 등에서 날선 비판의식을 보여주며 가장 주목받는 소설가로 떠오른 장강명의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이 연극 무대에 오른다.

서울문화재단 남산예술센터가 극단 동과 공동 제작한 이 작품은 지난해 초연에서 “추상적인 소설의 내용이 신체행동 연극을 주로 펼치는 극단 동의 장점과 잘 결합한 수작”이라는 평을 받으며 주요 연극상을 휩쓴 작품이다. 고등학교 시절 연인이었던 남자와 여자 이야기로 ‘기억’, ‘시간’, ‘고통’, ‘속죄’에 대한 새로운 접근과 해석을 시도한다.

연극 무대에 오른 소설가 장강명의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의 한 장면.

동급생 영훈을 살인한 죄로 교도소에 들어간 남자는 ‘우주 알 이야기’라는 소설을 써 여자가 일하는 출판사에 보낸다. 여자는 소설의 내용이 자신의 이야기인 것을 알고 남자를 찾아간다. 한편 자기 아들을 죽인 남자를 쫓는 영훈의 어머니는 재회한 두 사람 주변을 맴돌고, 남자는 본인이 저지른 살인이 세상을 얼마나 황폐하게 하였는지 깨닫는다.

작품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사건이 전개되지 않는다. 과거·현재·미래의 순으로 단 한 번만 경험할 수 있다는 일반적인 시간의 개념도 뒤집는다. 그믐날 자신에게 들어온 ‘우주 알’을 받아들인 남자는 과거부터 미래까지 동시에 볼 수 있게 되면서 시간을 한 방향으로만 사는 사람들의 기억 속 고통을 어루만진다. 관객은 해체된 시·공간 속에서 한 남자의 세계를 조각난 이야기와 파편화된 장면으로 만난다.

극단 동은 과거로부터 쌓여 온 현재가 아니라 언제인지 알 수 없이 ‘계속되는 현재’를 무대에서 표현하기 위해 ‘신체행동연기’를 작품에 집약시켰다. 감정이나 심리 표현보다 행동 나열을 통해 인물과 장면을 전달하는 연기 방법론이다. 시간의 해체라는 원작 소설의 형식과 신체행동연기라는 연극 양식으로 만들어진 이 작품을 통해 관객은 저마다의 해석에 따라 인물을 다양하게 해석하고 달리 볼 수 있는 몰입을 경험하게 된다.

원형무대도 이 작품의 미학적 특징이다. 원형 무대 위에서 저마다의 세계를 표현하는 배우들은 균형이 무너진 채로 끊임없이 돌고 도는 몸짓을 만든다. 이는 과거에 대한 기억, 기억에서 비롯된 고통과 분노, 현재에 대한 위로를 의미하는 것이다. 강량원 연출가는 “소설을 읽었다면 책과 연극을 비교하는 재미를, 읽지 않았다면 공연을 통해 작품을 알아가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라며 “이 작품이 기억으로부터 받은 고통을 덜어주는 공연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서울 남산예술센터에서 10월 9일부터 27일까지.

 

박성준 기자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엄현경 '여전한 미모'
  • 엄현경 '여전한 미모'
  • 천우희 '미소 천사'
  • 트와이스 지효 '상큼 하트'
  • 한가인 '사랑스러운 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