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수도 옮기는 국가들… 균형발전 숙원과제 성공할까 [세계는 지금]

관련이슈 세계는 지금

입력 : 2019-10-05 12:00:00 수정 : 2019-10-05 14:35:52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인니 자카르타 인구 과밀·교통 정체 심각 / 東칼리만탄주 2개 군 일부 지역 후보지 / 수도 기능, 경제·금융과 정치·행정 분산 / 신행정수도 건설 최소 40조원 소요 추산 / 브라질, 주요 자원 부침따라 수도 이전 / 나이지리아, 정치·인종 중립지대 천도 / 인구 밀도 높은 태국·필리핀도 검토 중 / “공공재 접근성·통합성·현실성 감안해야”

한국과 대만, 브라질, 나이지리아, 카자흐스탄, 미얀마에는 공통점이 있다. 근대국가 수립 이후 수도 이전을 검토했거나 수도를 옮긴 나라들이다. 최근 100년 새 30개국 이상이 수도를 옮겼고, 현재도 40여개국이 수도 이전을 고민 중인 것으로 파악된다. 수도권 인구 과밀화와 그에 따른 각종 문제점 해결, 국토 균형발전, 보다 중립적인 지역에 수도를 둘 필요성이 주로 이유가 됐다.

 

수도 이전은 식민지에서 해방된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의 제3세계 국가들에서 많이 나타나는 현상이다. 하지만 일본도 1990년대 초 이후 거품경제를 겪으며 도치키(?木)·후쿠시마(福島) 지역 등 세 곳으로 수도 기능을 분산하는 논의가 이뤄졌던 것을 보면, 선진국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의 전경. 연합뉴스

◆인구과밀·지반침하에… 숙원사업 다시 꺼낸 印尼

 

얼마 전 인도네시아가 이 대열에 다시 합류했다. 조코 위도도(조코위) 대통령은 지난 8월26일 자바섬 자카르타에서 보르네오섬 동(東)칼리만탄으로 수도를 옮기겠다고 발표했다. 그는 후보지로 “동칼리만탄주에 있는 북(北)프나잠파세르군과 쿠타이 카르타느가라군 등 2개 군의 일부 지역”을 꼽았다.

 

이유는 대단히 많다. 자카르타의 인구 과밀과 혼잡은 심각한 수준이다. 자카르타에만 1000만명, 수도권 전체에 3000만명이 거주한다. 자카르타 시내 차량 주행속도 시속 8∼10㎞의 악명 높은 교통체증으로 인한 손실(연간 70억달러)을 견디는 것도 이제 한계에 다다랐다는 평이다. 하수 처리율은 2∼4%에 그쳐 환경오염 문제도 크다. 자카르타가 위치한 자바섬은 전체 면적의 7%에 불과하지만 거주 인구는 전체 국민(2억6400만명)의 절반이 넘으며, 국내총생산(GDP)의 58%를 창출한다. 균형발전 측면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코위 인도네시아 대통령 수도 이전지 발표. 콤파스TV 캡처

조코위 대통령이 수도 이전 예정지로 꼽은 지역은 동서로 길게 뻗은 국토의 중심에 가깝다. 인도네시아 국부 수카르노가 수도로 삼으려 했던 팔랑카라야로부터도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다. ‘불의 고리’(환태평양조산대)에 속한 자바섬과 달리 지진, 화산 등으로부터도 상대적으로 안전하다.

 

인도네시아가 수도를 이전하려는 데엔 특별한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저지대 지역인 자카르타는 지하수 과다 개발 등으로 지반이 가라앉고 잦은 침수 피해가 일어난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에 따르면 반둥기술연구소 헤리 안드레아서 연구원은 “일부 지역은 이미 해수면보다 2∼4m 낮은 상태”라며 “우리 계산상으로 자카르타는 매년 1∼20㎝씩 가라앉고 있다”고 말했다.

◆과거 사례들… 균형발전·인구분산 등 이유는 제각각

 

조코위 대통령은 수도 이전의 성공 사례로 브라질과 카자흐스탄, 말레이시아, 한국을 꼽았다. 그는 정치·행정(워싱턴)과 경제·금융(뉴욕)으로 나뉜 미국처럼 자카르타를 경제 수도로 남기고 새 도읍은 행정수도로 키우겠다는 계획이다. 신행정수도 건설에는 최소 330억달러(40조원)가 들 것으로 추산된다.

 

그의 수도 이전 계획이 성공하려면 3만∼4만㏊의 공간, 90만∼150만 명가량의 거주인구가 필요하다. 황무지에 가까운 지역을 수도로 발돋움시킨 사례는 찾기 어렵지 않다.

 

브라질은 주요 자원의 부침에 따라 수도 이전을 겪었다. 설탕 무역 의존도가 높았던 1763년까지는 대규모 사탕수수 농장들이 인접한 살바도르가 수도였다. 이후 금이 경제를 이끌기 시작하면서 주요 탄광지역인 리우데자네이루가 수도가 됐다. 남부 해안지역에 위치한 리우데자네이루에서 국토 중앙부에 가까운 브라질리아로 천도한 것이 1960년 일이다. 브라질리아는 1956년부터 41개월간 공사를 거쳐 황량한 고원지대에서 수도로 재탄생했다. 유엔 본부 설계 등에 참여한 라틴아메리카 근대 건축의 대표적 인물 오스카르 니에메예르가 주요 정부청사와 대성당 등을 지으며 새 수도 건설을 주도했다. 이후 인구 300만명의 대도시로 빠르게 성장하며 라틴아메리카 도시 중 가장 높은 GDP 수준을 기록한 ‘계획도시’ 브라질리아는 수도 이전을 고민하는 많은 나라들에 영감을 줬다.

 

나이지리아도 지리적 중심으로 수도를 이전한 경우다. 새 수도 아부자는 정치적·인종적으로도 중립지대여서 사하라 이남에서 인구밀도가 가장 높은 옛 수도 라고스에서 천도하는 좋은 명분이 됐다.

 

카자흐스탄은 1991년 소비에트연방에서 독립한 후부터 남부 알마티를 수도로 삼았다. 1997년 알마티의 팽창 가능성이 적고, 지진 위험이 크며, 키르기스스탄과 너무 가까워 정정 불안이 우려된다는 이유 등으로 1200㎞ 떨어진 북부 아크몰라로 옮겼고, ‘하얀 무덤’이라는 뜻의 이름부터 ‘수도’라는 의미의 아스타나로 바꿨다. 브라질리아와 마찬가지로 처음부터 새로 만든 계획도시다. 세계에서 가장 큰 텐트로 불리는 ‘칸 샤티르’ 쇼핑센터로 유명한 아스타나는 카자흐스탄 석유 산업의 부흥에 힘입어 자리를 잡았다. 수도 이전을 이끈 30년 장기독재자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는 지난 3월 대통령직을 내려놨지만, 아스타나 이름이 누르술탄으로 바뀌면서 자신의 이름을 남겨놨다.

태국 방콕 시내 모습. AFP연합뉴스

◆태국, 이집트 등도 고민 중

 

인도네시아가 칼을 빼든 가운데 태국과 필리핀 등에서도 수도 이전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필리핀에서는 지구상에서 가장 인구밀도가 높은 도시 중 하나인 마닐라에서 뉴클라크시티로 중앙정부기관을 옮기는 방안이 제기됐고, 쁘라윳 짠오차 태국 총리도 최근 방콕의 과밀화 문제를 언급하며 수도 이전 추진 가능성을 내비쳤다. 이집트는 낙후하고 과밀한 카이로에서 40여㎞ 떨어진 사막에 현대적 도시를 세우는 450억달러(약 50조원) 규모의 신행정수도 프로젝트를 2015년부터 추진 중이다.

 

그러나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수도 이전의 역사는 용기를 북돋우기보다는 경고를 한다”고 지적했다. 오랜 세월 자연스럽게 수도에 집중된 행정 기능과 자본을 인위적으로 이동시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탄자니아는 1973년 수도 이전 결정을 했지만 여전히 많은 관공서와 대사관이 옛 수도 다르에스살람에 남아 이전을 거부하고 있다.

 

개인적 성과를 만들겠다는 과도한 권력욕이 수도 이전의 동기로 작용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합리적 이유가 결여된 수도 이전은 돈 낭비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 코트디부아르는 1983년 아비장에서 당시 대통령의 고향인 야무수크로로 수도를 옮겼는데, 여전히 인구 20만명의 작은 도시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미얀마는 2005년 수도를 양곤에서 네피도로 이전한다고 전격 발표했다. 하지만 정확한 천도 이유는 아직도 밝히지 않고 있다. 왕조 시대의 오랜 관습대로 점술가들 조언에 따른 것이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군부가 외국 침략에 대비해 산으로 둘러싸인 내륙 밀림지대로 옮긴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네피도는 ‘세상에서 가장 기묘한 수도’라는 달갑지 않은 평가를 받는다. 영국 런던의 4배, 뉴욕의 6배 크기이면서 인구는 92만여명뿐이다. 텔레그래프는 “텅 빈 도시, 도로에 차가 거의 없고 군중을 볼 수 없다”며 “생의 유일한 흔적은 밀짚모자를 쓴 채 도로를 청소하는 이들뿐”이라고 했다. 광활한 20차선 도로는 유사시 비상활주로로 쓰기 위해 일부러 넓게 만들었다는 소문이 있다.

 

많은 경우 새로운 수도는 계획도시 형태로 탄생한다. 세월의 흔적이 녹아 있는 도시의 자연스러운 아름다움, 역동성과는 거리가 멀다. 브라질은 너무 외딴 곳에 수도를 만들다 보니 권력 감시·견제가 어려워지고 최근 부패 스캔들이 만연하는 이유가 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국토 균형발전을 꾀하고 권력의 과도한 집중을 방지한다는 긍정적 측면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수도들(Capital Cities): 다양성과 발전 패턴, 이전’의 저자 바딤 로스먼은 언론 인터뷰에서 수도가 창출하는 공공재에 대한 각 지방의 균형적 접근 가능성, 영토적·경제적·인종적·종교적 통합성, 이전 비용 등 현실성을 감안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새로 계획된 도시가 성공하려면 최소 1세기가 걸린다”며 조바심을 내지 말 것도 당부했다. 1790년 미국의 수도가 된 워싱턴도 20세기가 다 돼서야 제기능을 하기 시작했다는 설명이다.

 

유태영 기자 anarchyn@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김혜윤 '사랑스러운 볼하트'
  • 김혜윤 '사랑스러운 볼하트'
  • 채수빈 '매력적인 미소'
  • 조보아 '아름다운 미소'
  • 아이브 장원영 '빛나는 미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