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현지시간) 오후 미국 뉴욕에서 이뤄지는 한·미 정상회담이 북·미 실무협상의 풍향계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북·미 실무협상은 양국 분위기로 보아 이르면 수일 내에, 늦으면 10월 초에 재개될 가능성이 높다. 양국은 뉴욕채널을 통해 실무협상의 시기와 장소 등을 조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매체들은 23일 실무협상 재개와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미국이 남북문제에 간섭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남측을 향해 ‘국제공조’ 대신 ‘민족공조’에 나서라고 촉구했다. 대외선전매체 메아리는 “최근 미국이 북남관계 진전이 ‘북핵문제’ 진전과 분리될 수 없다고 또다시 을러메면서 남조선 당국을 강박하고 있다”며 “강도의 횡포”라고 비난했다. 대남선전매체 우리민족끼리도 ‘민족공조만이 유일한 출로’라는 글에서 “남조선 당국이 겨레와 국제사회 앞에 확약한 북남관계 문제들에 대해 의무를 이행할 생각은 하지 않고 외세의 눈치를 보며 외세의 지령하에 움직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북한은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이후 남측을 북핵 문제에서 철저히 배제해 왔지만, 이날 남측 정부에 ‘민족공조’를 압박하고 나선 것이다. 북한의 행보는 한·미 정상회담을 의식한 것으로 분석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연말 협상에서 전향적 입장을 갖고 나올 수 있도록 문재인 대통령이 설득해 달라는 뜻이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미 정상회담은 북한이 실무협상 전 트럼프 대통령의 생각을 가늠할 사실상 마지막 기회다.

문 대통령을 수행 중인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이날 뉴욕에서 한국 기자단을 만나 “현재 제일 중요한 것은 북·미 실무 협상 재개”라며 “북·미 간 협상이 된다면 어떤 부분이 중요하게 부각될 것인지에 대해 한·미 간 많은 공조를 해왔다”고 설명했다. 강 장관의 언급처럼 북핵 협상이 갖는 비중을 고려할 때 문 대통령은 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아이디어를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금강산 관광 재개나 개성공단 재가동 등 문 대통령이 이미 제시했던 남북 협력 분야가 비핵화의 상응조치로 재론될 수 있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통일안보센터장은 “현재까지 알려진 북한의 비핵화 관련 입장에서 미국이 약속할 상응조치는 금강산 관광 재개, 개성공단 재가동, 연합훈련 중단 정도의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북한의 그간 언급처럼 이달 말 실무협상이 재개되려면 이번 주말 협상이 시작돼야 한다. 하지만 협상의 윤곽이 드러나지 않아 내달 초로 연기될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한·미·일 북핵수석대표가 모두 유엔총회 기간 뉴욕에 모이는 만큼 정부 당국은 북한 측 협상 수석대표인 김명길 외무성 순회대사가 뉴욕에 모습을 드러낼 가능성에도 대비하고 있지만 아직 움직임이 포착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협상 장소로는 판문점이나 동남아, 북유럽 등 북한 대사관이 소재한 제3국일 가능성이 제기된다. 일각에선 평양도 거론되지만 시기상조라는 의견이 많다.
홍주형·조병욱 기자, 뉴욕=김달중 기자 jh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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