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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수저의 통쾌한 복수극 객석을 들었다 놨다∼

입력 : 2019-09-22 21:00:00 수정 : 2019-09-22 16:4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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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단, 佛 희극 ‘스카팽’… 폭소·해학·풍자 다 있다! / 임도완 연출가·김요찬 음악감독 / ‘희극의 대부’ 몰리에르 완벽 부활 / 재치있는 하인 ‘스카팽’을 통해서 / 불평등·갑질 횡포 유쾌하게 풍자 / 이미 입소문 타고 전석매진 행렬
마임 연기의 정수를 보여주는 임도완 연출의 국립극단 연극 ‘스카팽’. 국립극단 제공

대중을 웃고 울게 하였던 우리나라 코미디는 명맥이 끊어진 상태다. 수많았던 TV코미디 프로그램은 대부분 사라졌다. ‘개그콘서트’ 정도가 간신히 명맥을 지키나 ‘노잼콘서트’라는 불명예가 붙어있다. 코미디가 그 생명인 ‘풍자’의 날카로움을 이런저런 이유로 잃어버리면서 시청자가 변화무쌍한 예능 프로그램에 마음을 뺏겼기 때문이다.

 

이처럼 안방극장에선 힘을 잃은 코미디가 국립극단 무대에서 화려하게 부활했다. 그것도 ‘희극의 아버지’라고 할 몰리에르 작품을 통해서다. ‘마임 연출의 명인’ 임도완 사다리움직임연구소장이 첫 국립극단 연출작으로 택한 ‘스카팽’은 110분 공연 내내 객석을 웃음으로 뒤흔들었다. 그러면서도 “등장인물과 상황의 우스꽝스러움에 웃음과 쾌락을 느끼면서도 그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찾아보며 현실을 비판적으로 인식하게 한다”는 희극의 본령(本領)으로 관객을 안내했다.

 

무대는 첫 시작부터 이 작품이 르네상스 시대 희극을 부활시킨 ‘코미디아 델라르테’ 계보임을 분명히 드러낸다. 요란한 분장과 의상을 갖춘 출연진이 서커스 풍으로 아코디언 등을 연주하고 노래를 부르며 이동무대를 통해 무대 뒤편에서 등장한다.

 

중세 이탈리아에서 희극 붐을 일으킨 코미디아 델라르테는 ‘희극 유랑단’이다. 탈춤의 ‘양반탈’, ‘각시탈’처럼 탐욕스러운 주인과 주인을 골탕 먹이는 하인 등 전형적인 캐릭터가 즉흥으로 세태를 풍자하며 대중을 웃겼다. 고대 그리스 시대 비극 사이 간막극으로 유행하다 웃음을 죄악시한 중세시대 빛을 잃었던 희극을 전 유럽에 다시 퍼트린 공을 세웠다.

 

인간 군상 부조리를 풍자와 해학으로 꼬집는 코미디아 델라르테의 힘은 수백 년 후 한국에서도 여전했다. 줄거리는 ‘재치있는 하인이 꾀를 내어 부모가 정한 정략결혼에서 벗어나려는 연인을 돕는다’로 단순하다. 관객 폭소는 재치있는 대사와 맞물리는 출연진의 맛깔스러운 몸짓 연기에서 나온다. 프랑스 자크 르콕 국제연극마임학교에서 신체극을 배운 후 마임과 움직임을 주요한 요소로 삼으며 독보적 연출력을 쌓아온 임도완 연출이 빛났다. 개그맨의 어설픈 개인기쯤으로 그 격이 떨어진 마임 연기가 가진 매력을 제대로 보여준다.

 

특히 ‘스카팽’에선 배우간 ‘합’이 돋보였다. 신체극 특성상 무대 위에 선 각 배우 몸짓은 대사를 주고받는 것보다 훨씬 더 긴밀하게 톱니바퀴처럼 서로 맞물려야 한다. 이번 무대는 사다리움직임연구소 소속 이중현(스카팽), 성원(몰리에르)과 박경주(실베스트르),김한(제롱뜨), 양서빈(아르강뜨), 옥따브(이호철), 임준식(레앙드르) 등 국립극단 시즌단원이 함께 만들었다. 두 극단 배우가 섞였음에도 출연진은 치열한 연습으로 주거니 받거니 딱 맞아떨어지는 합을 만들어 관객을 소리 내 웃게 하였다.

 

스카팽이 “엄청 재밌다’는 입소문을 타며 전석 매진사례를 이어가는 데에는 임도완 연출과 오랫동안 작품을 함께 만들어온 김요찬 음악감독 활약도 빼놓을 수 없다. 무대 전면에 자리잡은 1인 밴드로서 다양한 음향과 음악으로 배우 신체 연기를 돋보이게 하며 ‘희극 유랑단’의 진가를 보여줬다.

 

말장난과 과장된 몸짓뿐이면 공허했을 무대를 채운 건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는 ‘선을 지킨 풍자’다. 애초 ‘우리나라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몰리에르 희극의 참모습을 보여주겠다’는 취지로 이 작품을 고른 임도완 연출은 무대에 ‘몰리에르’를 극중 연출자 격으로 투입했다. 몰리에르를 통해 이 작품을 소개하는데 “이제 한국에서도 몰리에르 작품이 빛을 발할 때가 왔다”며 ‘통렬한 사회비판’을 몰리에르 작품 첫째 특징으로 꼽았다.

 

이후 작품 속에선 하인을 함부로 대하는 부자들의 갑질 행태와 위선 등이 웃음짓게 만들지만 “소송은 지옥에 빠지는 지름길”이라며 사법제도에 대한 통렬한 비판과 결혼은커녕 연애하기도 힘든 세태에 대한 비판 등이 예리하다. 주인을 속여 소송 없이 거액을 빼돌리는 과정에서 주인공 스카팽은 “(소송에)끼어들어 돈을 요구하는 짐승 같은 놈들도 있어. 집행관, 검사, 변호사, 관리, 판사를 거치고 나면 돈 주머니가 헐렁해지고 아무리 작은 일도 이들 손을 거치지 않고는 일이 안돼…….변호사는 변호사대로 어떻게 해서든 배를 불리고, 법정에는 나타지도 않고, 나타나더라도 큰소리만 치고……부장판사는 정부로부터 청탁받고, 결국 자네에게 불리한 재판을 하고”라며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사법체계와 최근 사법농단 사태를 비꼰다.

 

임도완 연출의 분신 격인 몰리에르가 가장 길게 한탄하는 대목은 불평등과 ‘흙수저’의 애환이다.

 

“결혼, 결혼, 결혼, 결혼? 사랑의 완성? 돈 없이 사랑을 완성할 수 있나? 특히나 나 같이 돈 없는 미천한 계급을 가진 ‘기생충’은 완성을 하고 싶어도 못하지. 그런데 이런저런 것을 떠나 요즘 시대에 사랑하는 것은 너무나 어렵지. 사람 만나는 것 또한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법 앞에 평등하게 만나야 하거든. 합법적인 절차를 평등하게 만나면 뭐해? 너무 사랑해서 같이 살고 싶어도 결혼 할 엄두가 안 나는데. 혼술, 혼밥, 혼족. 하다못해 인형(리얼 돌)까지 만들고 있어. 혼자 먹고살기도 힘든데 결혼은 무슨 결혼이야? 사랑의 결론은 결혼인데 결론은 결혼을 못 한다는 게 결론이지 뭐. 뭐? 애를 낳아? 무슨 돈으로 애 낳고 키울 건데? 첫째 낳았더니, ‘애미야 둘째는 언제 낳니?’ 둘째 낳았더니, ‘애미야 셋째부터는 돈 준단다.’ 자판기야? 애 많이 낳으면 돈 준다하지 말고!! 나 같은 흙수저도 당당하게 사랑하고 결혼하고 애 낳고 행복하게 살게 해달란 말이야. 우리 그냥 사랑하게 해주세요.”

 

그럼에도 스카팽이 풍자 끝에 전하는 메시지는 ‘화해’다. 평소 갑질에 울분이 쌓일 대로 쌓인 스카팽은 주인을 속여 매타작을 실컷 한다. 물론 주인 아들을 위해서라지만 거액을 사기 친 데다 매질을 한 것까지 들통나 교수형에 처해질 위기인데 스카팽은 또 꾀를 낸다. 속이 훤히 보이는 꾀이나 주인은 모른 척 넘어간다. ‘당의정’같은 결말이지만 충분히 만족스럽다.

 

몰리에르는 이렇게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은 우리의 눈을 멀게 하는 묘약이지. 그리고 그 묘약은 평생 같이 있고 싶다는 생각을 자꾸만 자꾸만 떠오르게 하여 또 다른 감옥에 자기를 스스로 가두게 한단 말이야. 만약 내가 연애를 한다면 부드럽고, 화끈하고, 열정적이고, 적극적이고, 뻐근하고, 근사하고, 황홀하고, 섬세하고, 낭만적인 사랑을 할 거야. 그래야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 것 같아. 연애에서 손해 보는 것은 소심한 사람뿐이다.”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29일까지. 

 

박성준 기자 alex@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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