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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실무협상 북한의 새로운 대표 나선 김명길은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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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9-22 15:29:26 수정 : 2019-09-22 15:2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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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외무성 핵 상무조 창립 멤버 / 유엔대표부 차석 대사 등 20년간 대미 외교 담당
김명길 외무성 순회대사. 연합뉴스

이달말 재개될 것으로 보이는 북미 비핵화 실무협상에 북한 측 수석대표로 나서게 된 김명길(60) 외무성 순회대사에 대해 관심이 쏠리고 있다. 1차 북핵위기 당시부터 등판해 북한의 비공식 주미대사격인 유엔 대표부 차석 대사까지 지내는 등 그의 화려한 이력이 이번 협상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북한이 지난 20일 발표한 담화에서 김명길은 자신을 ‘조미(북미) 실무협상 수석대표’라고 밝히면서 “이제는 보다 실용적인 관점에서 조미 관계에 접근해야 한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현명한 정치적 결단을 환영한다”고 했다.

 

김명길은 30대 초반이던 1990년대 초 1차 북핵 위기 때 미국과 핵 협상에 대비해 극비리에 조직됐던 외무성 핵 상무조(태스크포스·TF) 창립 멤버로 알려졌다. 강석주 당시 외무성 제1부상이 김정일의 지시에 따라 핵TF를 조직했다. 미국 담당인 14국(미주국, 현 북아메리카국)의 김명길과 국제기구국에서 일하던 리용호 현 외무상 등이 TF에 선발됐다. 이들은 평양 교외의 고방산초대소에서 합숙하며 1994년 북미 제네바 기본합의가 채택되기까지 북한의 핵 외교 전략의 수립과 집행을 전담했한 것으로 전해진다.

 

최근 북한 외교가에서 급부상한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이 1990년대 중반 통역 출신으로 뒤늦게 핵TF에 합류해 김명길과 일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김명길은 2009년 ‘뉴욕 채널’로 불리는 유엔대표부 차석 대사를 마치고 귀한 후 아태 국장과 베트남 대사를 하기 전까지 20년간 대미 외교를 주로 담당했다. 1982년 외무성에 입성한 뒤 자메이카 주재 서기관(1985∼1989년)을 거쳐 1990∼1996년 미주국, 1996∼2001년 유엔대표부 참사관, 2001∼2006년 미주국 및 군축평화연구소, 2006∼2009년 유엔 대표부 공사 차석 대사(공사)로 근무했다.

 

김명길은 1995년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의 경수로공급 협상 북측 설명회와 1997년 남북미중 4자회담 설명회에 참석하면서 대미 외교가에 이름을 알렸다. 1994년 4자회담 6차 본회담부터는 대표단원으로, 대표단의 입 역할을 맡았다. 그는 2000년 쿠알라룸푸르 미사일 회담에도 참여했다. 2000년 10월 조명록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특사 자격으로 미국을 방문했을 때도 대표단원에 공식 포함됐다. 특히 2007년 북미 핵 협상의 최대 걸림돌이었던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BDA) 은행의 북한자금 2500만달러 송금 문제 해결에 참여해 성과를 냈고 이 때 북한 정권의 큰 신임을 얻은 것으로 보인다. 이후 북핵 6자회담 경제·에너지 실무그룹 회의에 북측 수석대표를 맡았다.

 

그를 대면한 적이 있는 전직 외교관들은 “북한 외교관 특유의 터프함이 있지만 거칠기보다는 자신의 정확한 입장을 설명하는 편”이라거나 “미국에 대한 이해가 높고 열정적인 인물”, “항상 깔끔하게 차려입고 말끔해 겉모습만 봐선 북한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고 김명길을 기억했다. 다만 외교 전문가들은 “북한의 협상은 재량권이 많지 않기 때문에 결국 ‘협상의 키’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쥐고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조병욱 기자 brightw@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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