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글로벌 브랜드들 줄줄이 DDP 이벤트… K스타일 허브로 우뚝 [서울의 디자인 이야기]

입력 : 2019-09-17 06:00:00 수정 : 2019-09-16 23:09:27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⑫ K스타일 상징 ‘서울패션위크’ / 2014년 DDP 문 열어 컬렉션 갈증 해소 / 국내는 물론 글로벌 마켓까지도 주목 / 이젠 파리 그랑 팔레 부럽지 않은 곳 돼 / 밀레니얼 세대들 국내 브랜드에 관심 / 패션 또 하나의 라이프 스타일로 여겨 / K뷰티처럼 글로벌 영향력도 생겨나 / 경계 뛰어넘는 다이내믹한 공간 증명 / 뉴욕처럼 패션위크, 도시 축제로 조성 / 사랑받는 콘텐츠로 시너지 창출 기대
글로벌 브랜드가 찾는 서울, 나아가 K스타일의 랜드마크가 된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서울디자인재단 제공, ⓒKyungsub Shin

◆글로벌 브랜드가 찾는 서울의 랜드마크 DDP

건축가 자하 하디드(1950∼2016)를 처음 본 것은 2011년 홍콩에서였다. 샤넬의 핸드백 전시를 위해 페리 선착장에 모바일 아트 파빌리온(움직이는 전시장)을 만든 하디드는 럭셔리 브랜드와 세계적 건축가의 협업이 얼마나 혁신적인 비주얼과 비전을 만들어 낼 수 있는지 전 세계에 증명해 보이면서 스타 건축가로서의 입지를 패션계에서도 견고히 했다. 하디드의 모바일 아트 파빌리온은 이후 샤넬의 핸드백을 아티스트별로 재해석한 전시를 전 세계 주요 도시로 실어 나르는 멋진 플랫폼이 됐고, 루이비통과 피터 마리노, 프라다와 렘 콜하스를 잇는 멋진 협업의 사례가 됐다.

2014년 그런 하디드가 진두지휘한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의 개관을 지켜보면서 드디어 서울에도 세계가 주목하는 랜드마크가 생긴다는 설렘에 내 일처럼 들떴던 기억이 있다. 한 도시를 상징하는 랜드마크는 건축적인 의미를 떠나 패션 비즈니스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패션지 편집장으로 일하는 동안 가장 인상적이었던 또 하나의 이벤트가 2008년 중국 만리장성에서 열린 펜디 컬렉션이었다.

모름지기 소수만 초대받는 중요하고 은밀한 컬렉션일수록 ‘See Invitation’이란 문구와 함께 장소가 비밀에 부쳐지기 마련인데 펜디의 이 컬렉션은 처음부터 ‘Great Wall’이라는 부제를 붙이고 만리장성에서 열리는 최초의 컬렉션임을 강조했다. LVMH(루이뷔통모에에네시)그룹이란 막강한 스폰서와 카를 라거펠트(1933∼2019)란 전설적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있었기에 가능한 프로젝트였지만 당시 중국 정부의 협조 또한 가히 역대급이었다. 만리장성과 자금성을 비롯해 베이징이란 도시가 품고 있는 역사적 콘텐츠를 기꺼이 꺼내 놓으며 중국이 ‘패션’이라는 비즈니스에 얼마나 호의적인 태도를 가졌는지 강조하고 또 강조했기 때문이다. 이 컬렉션은 ‘만리장성에서 열리는 최초의 컬렉션’이란 이슈로 전 세계 미디어의 주목을 받으면서 엄청난 마케팅 효과도 얻었다. 도시와 역사, 건축, 디자인, 패션이 결합돼 얼마나 아름다운 조화와 시너지를 이끌어 낼 수 있는지 보여 주는 최고의 컬렉션이었고, 이후 베이징은 럭셔리 패션 하우스들 사이에서 글로벌 이벤트를 위한 장소로 가장 먼저 손꼽히는 중요한 도시로 한 뼘 더 성장했다.

한 브랜드의 컬렉션을 위해 만리장성을 내어 주는 식의 통 큰 마케팅 현장들을 지켜보며 우리나라에서 혹은 서울에서 저런 컬렉션을 연다면 어느 곳이 그 후보가 돼야 할까 떠올려 보곤 했는데, 2014년 마침내 하디드의 손끝에서 탄생한 DDP가 문을 열며 그 기대와 갈증을 풀어 주기 시작했다. DDP 덕분에 처음으로 샤넬의 리조트 컬렉션이 한국에서 열렸는가 하면, 전 세계 유명한 곳에서만 열리던 루이뷔통과 크리티앙 디오르의 전시 또한 서울에서 그 트렁크를 펼쳤다. 막스마라와 반클리프 아펠, 티파니, 폴 스미스 등 글로벌 브랜드들이 줄줄이 DDP를 이벤트 개최지로 선택하면서 DDP는 전 세계 패션 피플 사이에서 서울을 상징하는 중요한 랜드마크가 됐고, 이제는 프랑스 파리의 그랑 팔레 부럽지 않은 자랑스러운 곳이 되어 우리의 어깨를 들썩이게 하고 있다.

◆패션 콘텐츠에 대한 인식의 변화

언젠가 한 글로벌 브랜드와의 미팅에서 왜 중국과 일본에서만 이벤트를 하고 서울에서는 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한국 소비자들이 너희 브랜드의 제품을 그렇게나 많이 팔아 주는데 한국에서 돈만 벌어갈 뿐 한국의 소비자를 위한 이벤트나 콘텐츠가 너무 부족한 것 아니냐는 지적에 돌아온 답은 놀라웠다. 한국은 문화나 디자인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고, 특히 패션이나 아트에 대한 이해도가 너무 낮다는 것이 그들의 지적이었다. 패션쇼나 전시를 하고 싶어도 할 만한 곳이 마땅치 않은 데다 정부나 기업의 협조도 턱없이 부족하고, 전시의 경우 전 세계 관광객들이 많지 않아 흥행에 성공할 확률이 낮다는 것이 구체적인 이유였다. 홍콩이나 도쿄는 도시 자체가 늘 코즈모폴리턴들로 북적이는가 하면 현지 관광객들도 많아 전시 관람객들이 늘 줄을 설 정도로 화제가 되곤 하는데, 서울은 인구도 적은 데다 관광객들이 많지 않으니 글로벌 이벤트를 개최해도 흥행에 성공할 확률이 낮다는 것이다.

◆라이프 스타일의 변화

패션과 스타일이 콘텐츠로서 존중받고 세대를 뛰어넘는 자산이 될 수 있는 가치가 있음을 깨달을 때 비로소 한국의 디자이너들과 패션 브랜드들도 글로벌화될 수 있을 것이라 했던 당시 그들의 이야기가 얼마나 맞는 말인지 요즘 부쩍 실감하고 있다.

먹고살기 바빠 패션이나 유행은 부르주아들이나 즐기는 취미라고 생각했던 이전 세대와 달리 지금의 밀레니얼 세대는 패션을 또 하나의 라이프 스타일 장르로 받아들이고 있다. 의식주를 추구하기에도 바빴던 기성세대들은 미처 드러낼 겨를조차 없었던 개인의 취향이란 것이 존중받는 시대를 살고 있는 덕분에 패션을 삶에 필요한 자연스럽고 당연한 콘텐츠로 받아들이고 즐긴다. 내가 드는 핸드백이 얼마짜리인지가 나를 증명하는 수단이 됐던 시절을 지나 사람들이 그 핸드백을 왜 드는지 그 명분과 이유를 전시나 이벤트를 통해 들여다보는 행위가 나의 스타일과 가치관을 증명하는 수단이 된 것이다.

그렇게 달라진 세대 덕분에 우리나라 브랜드들 또한 적지 않은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다. 고급스러운 명품 로고와 패턴에 집착하던 세대들과 달리 비슷한 취향을 가진 이들이 즐겨 입는 우리나라 브랜드를 선호하고 즐긴다. 그 브랜드의 옷과 액세서리를 숭배하지도 않지만 부끄러워하지도 않는다. 럭셔리 패션 하우스의 불모지에서 세계적인 직구(직접 구매) 강국이 되기까지 엄청난 수업료를 치른 대가가 결국엔 밀레니얼 세대로 하여금 스마트한 쇼핑을 지향하면서 우리나라 브랜드들을 다시 보게 만든 건지도 모르겠다. 그런 긍정적인 변화 덕분에 요즘 부쩍 K스타일을 궁금해하는 발길이 늘고 있다.

한국의 브랜드들이 궁금해 서울패션위크를 찾는 언론과 바이어들은 물론이고 한국 브랜드들을 입점시키기 위해 쇼룸을 찾는 전자상거래 플랫폼 관계자들도 늘고 있다. K뷰티가 그랬던 것처럼 메이드 인 코리아의 글로벌 영향력이 패션계에서도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K팝과 K컬처의 앞선 공략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기도 하지만 드라마든 영화든 아이돌 그룹이든 간에 그들의 숨은 조력자로서 K패션이 늘 함께해온 결과이기도 하다.

올해 3월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19F/W 서울패션위크 뮌(MUNN)의 런웨이. 6일간 진행된 19F/W 서울패션위크에는 패션쇼 관람객 2만2710명과 바이어 485명을 비롯한 29만3438명이 DDP를 다녀갔다. 20S/S 서울패션위크는 다음 달 14∼19일 열린다. 서울디자인재단 제공

◆K스타일의 상징적인 랜드마크가 된 서울패션위크

이렇게 중요한 시기이기에 DDP에서 열리는 서울패션위크의 행보 또한 더 중요해졌다. 장르와 경계를 넘나드는 다이내믹한 공간으로서의 가치를 증명함과 동시에 K스타일의 상징적인 랜드마크가 된 DDP가 한국 패션과 디자인, 아트의 옹달샘으로 도약할 수 있는 시기이기에 하는 말이다. 파리, 뉴욕, 런던이 패션위크를 도시 전체의 축제로 만들고 밀라노가 디자인위크를 도시 최고의 관광 상품으로 진화시켰는가 하면, 마이애미나 베니스가 아트 페어와 비엔날레를 도시 생태계를 책임지는 비즈니스 플랫폼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행보를 보며 언젠가 서울이라는 도시 또한 아시아는 물론이고 글로벌 마켓이 주목하는 스타일 허브가 될 날을 꿈꿔 본다.

상업성이 중요할수록 디자인이 중요하다는 것은 불변의 진리다. 수많은 패션 하우스들이 창립자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만든 오리지널 DNA에 동시대적인 해석을 덧붙여 비즈니스를 발전시켜 나가고 있는 것처럼, 훌륭한 디자인은 시대와 인종을 초월해 오래오래 사랑받을 수 있는 힘을 지녔다. 하디드의 수많은 건축물, 루이뷔통의 모노그램과 샤넬의 더블C 로고가 그러하듯, DDP가 태동시킨 서울과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다양한 영역에서 사랑받을 수 있는 콘텐츠로 진화하며 흥미로운 시너지를 창출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전미경 서울패션위크 총감독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리센느 메이 '반가운 손인사'
  • 리센느 메이 '반가운 손인사'
  • 아일릿 이로하 '매력적인 미소'
  • 아일릿 민주 '귀여운 토끼상'
  • 임수향 '시크한 매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