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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티멘털’ 서산 숨겨진 비경 황금산 몽돌해변 가보셨나요 [최현태 기자의 여행홀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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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9-08 10:00:00 수정 : 2019-09-06 14:5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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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가을이 피었습니다/개심사 경허당 마당 한켠 배롱나모/붉은꽃 주렁주렁···마음은 싱숭생숭/마애삼존불의 미소 보며 입꼬리 씰룩씰룩/물빠지면 드러나는 웅도 은빛 반짝이는 갯벌···추억을 캐다/백제때 스님 1000명 거느린 보원사/지금은 폐허만 덩그마니 ‘인생무상’/물위에 떠있는 ‘연꽃’ 간월암/볼것많고 먹을것 많은 ‘어리굴젓 고장’ 서산여행

 

 

서난 개심사 경허당 마당을 수놓은 배롱나무 꽃

늙나보다. 나이들면 꽃이 예쁘게 보인다더니. 배롱나무의 흐드러진 가지에서 떨어진 꽃들이 스님이 수행하는 경허당 마당에 홍자색으로 수를 놓았다. 그러고도 아직 나뭇가지 주렁주렁 달린 붉은 꽃이 푸른 하늘과 어찌나 잘 어울리는지. 아… 아무 말 못 하겠다. 일행이 “그만 가자” 재촉해도 떠나기 싫어 넋을 잃고 한참을 눈에 담아 본다. 내 죽기 전에 조그만 한옥 지어 마당에 배롱나무를 꼭 심으리. 서산에 이렇게 아름다운 절이 있었던가. 가을 문턱에 선 개심사(開心寺)는 그렇게 이름처럼 사내의 마음을 열고 들어와 마구 헤집어 놓는다.

개심사 입구 수련과 배롱나무

 

#가을, 배롱나무 꽃으로 오다

 

무더위가 꺾였지만 아직 8월 말 충청남도 서산의 한낮은 뜨거웠다. 더구나 개심사로 오르는 도로는 배관공사가 한창이라 각종 중장비로 꽉 막혀 걸어가야 했다. 잘못 왔나보다. 투덜대며 한참을 오르니 고생을 보상하는 아름다운 풍경이 기다린다. 작은 개울에 동동 떠있는 초록 수련잎과 배롱나무 꽃잎이 한쌍의 연인처럼 어우러지는데, 고색창연한 종각까지 배경으로 서 있으니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비밀 정원에 온 듯하다. 나도 몰래 ‘아름답다, 아름답다’ 몇번이고 되뇐다.

 

 

개심사 대웅전을 바라보고 오른쪽 명부전으로 가면 경허당 사이 커다란 배롱나무가 또 화려하게 마중 나온다. 스님들이 꽃에 취해 수행이나 제대로 할 수 있을까. 괜한 걱정을 해본다. 홍자색꽃은 늦가을까지 달려 있으니 올가을은 배롱나무에 흠뻑 취해 보련다.

 

휘어진 나무를 그대로 사용한 개심사 입구 종각

 

서산시 운산면 신창리에 있는 개심사는 역사가 아주 깊은 충청남도의 4대 사찰 중 하나다. 백제 의자왕 14년인 654년에 혜감국사가 창건하고 고려 충정왕 2년인 1350년에 처능대사에 의해 중수됐다니 무려 1300년이 넘은 고찰이다. 석가모니 영산회상 장면을 담은 괘불이 유명한데, 길이 10.1m, 폭 5.87m에 달하는 거대한 그림이다. 조선 후기 영·정조 문화의 절정기에 그려진 것으로 전해진다.

 

휘어진 나무를 그대로 사용한 개심사 심검당

 

심검당(尋劍堂)의 멋대로 휘어진 기둥에서도 천년고찰의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일부러 기둥을 직선으로 다듬지 않고 휘어진 나무를 그대로 사용했는데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지 않은 옛사람들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달된다. 사찰의 대웅전 옆에 있는 스님들의 숙소를 심검당이라 부르는데 지혜의 검을 찾는다는 뜻이다. 비단 스님들에게만 해당할까. 누구에게나 지혜의 검은 필요하다. 

 

개심사는 봄에도 꽃놀이에 취하게 만든다. 명부전 뜰에서 자라는 청벚꽃 때문이다. 보통 벚꽃은 분홍색인데 청벚꽃은 푸른빛이 도는 연두색이다. 해가 질 때면 석양 따라 분홍빛으로 물들며 앞마당을 꽃이불로 수놓는다니 내년 봄에 다시 오리라.

 

폐허로 변한 보원사지
보원사지 당간지주
보원사지 5층석탑

 

#스러진 절터에서 돌아보는 인생무상

 

개심사를 떠나 운산면 용현리 보원사지로 가는 647번 해운로 양쪽에는 이국적인 구릉지가 펼쳐진다. 마치 프랑스 상파뉴나 이탈리아 토스카나의 길을 달리는 것 같아 잠시 멈춰 한 컷을 담아본다. 

 

20분을 이동하면 광활한 보원사지가 눈에 들어온다. 백제시대에  창건된 보원사는 3만평에 달하는 절터가 말해주듯 주변에 암자 100개를 거느리고 승려가 1000명을 넘었을 정도로 위세가 대단했다고 한다. 통일신라∼고려초에 융성했지만 조선시대 억불숭유 정책으로 폐사돼 지금은 절터만 남았다. 항간에는 100번째 암자를 세우며 위세를 너무 과시하여 하늘의 노여움을 사 폐허로 변했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입구에 불기를 다는 당간을 세우는 당간지주와 5층 석탑만 덩그러니 있을 뿐 그냥 허허벌판이다. 사람의 인생도 그렇다. 아무리 화려한 인생인들 뭣 하랴. 늙기 싫어도 언젠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겠지. 갑자기 쓸쓸함이 밀려온다.

 

마애여래삼존상
‘백제의 미소’ 석가여래입상

 

서산 고찰 여행에서 반드시 가봐야 할 곳이 보원사지 인근 마애여래삼존상이다. 국보 제84호인 이 불상은 자연 암벽을 깎아 만든 백제시대의 불상으로, 얼굴 가득 아름다운 미소를 머금고 있어 ‘백제의 얼굴’로 불린다. 하지만 요즘은 이보다 수험생 자녀를 둔 부모들의 ‘성지’다. 수능 100일이나 한 달을 앞두면 어머니 부대가 밀려와 108배를 올리는 곳으로 유명하다. 기도 효과가 크다는 입소문이 났기 때문이다. 3명의 불상 중 가운데 본존 석가여래입상은 볼이 터질 듯 푸근한 미소를 짓고 있는데 왼손을 내리고 오른손을 올리고 있다. 이는 중생들의 모든 두려움을 물리치고 소원을 들어준다는 뜻이다. 삼존불상의 인자한 미소를 가만히 보고 있으니 자식의 대학 합격보다 더 큰 소원도 이뤄질 것 같다. 나도 가만히 눈을 감고 소원 하나를 빌어본다.

 

석가불을 중심으로 왼쪽 제화갈라보살, 오른쪽 미륵보살을 배치했으며, 옆에서 보면 15도 정도 앞으로 기울어진 돋을새김 기법으로 조성했는데 비가 들이치지 않도록 고안했단다.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마애불 중 가장 뛰어난 백제 후기 작품으로 평가받는데, 오랜 세월 수풀에 파묻혀 있다가 1958년에 발견됐다. 햇살이 들고 나는 빛의 각도에 따라 미소가 오묘하게 변하는데 아침 햇살 비칠 때가 가장 아름답다고 한다.

 

서산 황금산 몽돌해변 코끼리 바위

 

#숨겨진 비경 황금산 몽돌해변

 

그저 ‘어리굴젓’의 고장으로 알져진 서산. 하지만 직접 둘러보니 볼 것 많고 먹을 것도 풍부해 깜짝 놀라게 된다. 이번 서산 여행에서 찾은 또 하나의 보석은 황금산 몽돌해변과 코끼리바위다. 서산에 잘 알려지지 않은 비경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갔는데 쉽게 접근을 허락하지 않았다. 걸어서 왕복 1시간이 걸리고 더구나 가파른 돌산으로 이뤄졌다. SNS에서 사진만 보고 준비 없이 찾아갔다가는 낭패다. 반드시 튼튼한 등산화나 트레킹화를 준비하자.

 

 

절경을 보겠다는 일념으로 발목의 고통을 참고 헉헉대며 30분을 걷자 수풀 사이로 드러나는 몽돌해변은 ‘와∼’하는 탄성을 자아낸다. 오랜 세월 파도가 모서리를 둥글둥글하게 다듬은 몽돌로 온통 뒤덮인 해변이 푸른 바다, 푸른 하늘과 어우러지니 눈이 부시다. 여기가 과연 한국인가. 파도가 몽돌을 때릴 때마다 돌들은 서로 부대끼며 신비로운 하모니를 만들어낸다. 

 

서산 황금산 몽돌해변 주상절리

 

더구나 커다란 ‘코끼리’ 한 마리가 바다에 코를 박고 있는데 여태까지 본 코끼리 바위 중 가장 코끼리 답다. 오른쪽 계단을 타고 신비한 주상절리가 펼쳐진 해변으로 넘어가면 코끼리바위의 오른쪽 얼굴이 보이는데 이곳에서 찍는 사진이 가장 잘 나온다. 과거 황금산의 동굴에서 황금을 캤고 해질 무렵 주상절리가 황금빛으로 물든다고 해서 황금산으로 불린다. 몽돌 채취는 금지다. 그런데도 항아리에 된장이나 간장을 담글 때 누름돌로 쓰면 딱 좋겠다며 무거운 몽돌을 들고 가는 이들도 있다고 한다. 돌길을 오르다 지쳐서 대부분 버린다니 그냥 눈으로만 즐기자. 

 

 

 

서산 웅도 바지락 채취 체험

 

가족나들이라면 바닷물이 빠질 때만 길을 내어주는 웅도와 간월암도 들러보자. 한국관광공사 대전충남지사에서 주관하는 ‘2019 강소형 잠재관광지 발굴·육성사업’으로 선정된 웅도는 세계 5대 갯벌 중 하나인 가로림만을 끼고 있다. 마침 물이 빠져 드러난 도로를 건너니 ‘굴 낙지 바지락의 고장’이란 표지판이 반긴다. 갯벌 바닥이 비교적 단단해 장화를 신고 쉽게 바지락을 캘 수 있는데 호미로 살짝만 캐도 바지락이 무더기로 나온다.

바지락을 채취하는 어민들

 

바지락은 진달래, 아카시아 피는 봄에 살이 많이 올라 가장 맛있다. 그때 캐서 냉동해놓으면 1년 내내 즐길 수 있다. 이곳은 주민들의 생계 터전. 반드시 허락을 받아야만 들어갈 수 있다. 바로 인근에서 아낙네들이 바지락을 캐느라 분주하다. 한 아주머니는 “오늘 5시간 일해서 40kg를 캤는데 10만원을 받았다”며 만족스런 미소를 짓는다.

 

간월암

 

간월암은 태조 이성계의 왕사 무학대사가 창건한 작은 암자로 만조 때는 물 위에 떠 있는 연꽃처럼 보여 연화대(蓮花臺)로도 불린다. 무학대사가 이성계에게 보낸 어리굴젓이 궁중의 진상품이 된 것을 기념해 매년 정월 보름날 만조 때 간월도리 어리굴젓 기념탑 앞에서 굴의 풍년을 기원하는 ‘굴부르기 군왕제’가 열린다. 

 

서산=글·사진 최현태 선임기자 htcho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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