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밤 늦게까지 모여 이야기 꽃 피워… 맘 나누고 위안 받는 아늑한 쉼터 [김동환의 김기자와 만납시다]

입력 : 2019-08-24 12:00:00 수정 : 2019-08-24 11:51:39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시각장애인경로당 가보니 / 7월 서울 성북구 동선동에 개소 / 이동로 점자블록 등 사고 예방 심혈 / 함께 모여 윷놀이 등 하며 시간 보내 / 입소문 타고 주변동네서 찾아오기도

“평소에는 많이 오는데 오늘 기자님께서 온다니 오히려 더 안 오네! 허허.”

지난 19일, 서울 성북구 동선동(성북구 동소문로25길 6-10) ‘성북시각장애인경로당(시각장애인경로당)’에서 기자를 만난 홍수성 회장이 웃으며 말했다. 거실에 모여 앉아 밝은 표정으로 맞이한 다른 시각장애인들은 비록 기자의 얼굴을 볼 수는 없지만, 내민 손과 목소리로 저마다 하나씩 상상 속의 기자 얼굴을 그려내는 듯했다.

 

지난 19일, 서울 성북구 동선동 ‘성북시각장애인경로당’에서 만난 홍수성 회장(왼쪽에서 세번째) 등 시각장애노인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성북구청 제공

 

◆지난달 개소한 시각장애인 경로당… 성북구가 직접 장소 계약

성북구가 지난달 23일 문을 연 이곳은 서울시에서 단 하나뿐인 시각장애노인용 경로당이다. 성북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 불과 100m도 떨어져 있지 않아 걸어서 1분이면 닿는다.

성북구(구민 43만5868명)에 등록된 장애인은 총 1만7415명이며, 이 중 시각장애인은 1897명이다. 65세 이상 시각장애인은 360명이 살고 있다. 특히 경로당이 있는 동선동에는 시각장애인 101명이 살며, 이 중 65세 이상이 절반가량(48명) 된다.

성북구는 이러한 지역 수요에 맞춰 시각장애인경로당을 열었으며, 입구에서 쉼터에 이르는 계단과 이동로에 점자블록을 깔고 밤에도 쉽게 오가도록 조명등을 달아 안전사고 예방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토지 161㎡(48.7평)에 건물면적은 36.7㎡(11평)로 방과 화장실, 부엌 겸 거실과 다용도실을 갖췄다. 원래 개인 소유 주택이었지만, 구가 1억5000만원을 주고 오는 2021년 3월31일까지 빌리기로 소유주와 지난 1월 계약을 체결했다.

◆반신반의에서 두 손 들고 반겨… 흥미진진한 윷놀이도 합니다

경로당에서 만난 노인들은 당초 시각장애인 경로당이 생긴다고 했을 때 반신반의했다고 한다. A씨는 “(이야기를 듣고는) 경로당을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들뜨면서도 정말 해주겠냐는 이야기를 서로 주고받았다”며 “약간은 의심했지만 결국 꿈이 이뤄졌다”고 밝은 표정을 지었다.

경로당이 생기기 전에는 길어야 1∼2시간 이웃집에 몇 명만 모여 이야기하다 헤어지는 게 끝이었는데, 이제는 마음 편히 쉴 곳이 생겼다고 한결같이 반겼다. B씨도 “앉아서 대화 하고 옛날부터 살아온 이야기도 한다”며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윷놀이’도 즐겨 한다”고 웃었다.

이들이 말하는 윷놀이란 통상적인 윷놀이와는 많이 다르다. 나무막대기 4개를 던져 말을 놓는 것과 달리, 젓가락 굵기의 쇠막대 끄트머리에 파인 홈을 손으로 짚어 ‘도∼모’를 따지는 식이다. 홈이 1개 파인 막대를 집으면 ‘도’를 놓고, 2개는 ‘개’라고 생각해 말을 전진시킨다. 하나의 홈이 넓게 파이면 윷, 중간에 홈 하나가 있으면 모다. 다만, 앞을 볼 수 없어 이들은 윷판을 바닥에 두지 않는 대신 머릿속으로 판세를 그려낸다.

윷놀이를 어떻게 끝내는지 묻자 “일반 윷놀이처럼 말 4개가 윷판을 돌아 도착점으로 들어오면 끝난다”는 답이 돌아왔다.

◆빠른 입소문에 다른 구에서 오기도…“노인 장애인들이 마음 편히 쉬기를”

문을 연 지 한 달 정도인데 입소문이 제법 빠르다. 중랑구 신내동, 구로구 개봉동에서도 이곳까지 오는 이들이 있다고 한다.

오전에는 대부분 저마다 생활이 있어서 경로당에 사람이 뜸하지만, 오후 4시쯤부터 발길이 이어져 저녁 8시 무렵이면 10∼20명 정도가 경로당에 모여 시끌벅적하다고 한다.

시각장애인 경로당은 외지로 나가는 장애인들이 타는 전용콜택시가 닿아 일종의 정거장 역할까지도 소화해 말 그대로 동선동에서 없어서 안 되는 곳이 됐다. 홍 회장 곁에 있던 아내 조명자(70)씨가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려고 해도 장애인 경로당이 없어서 못 갈 정도다”라고 말해 한바탕 웃음을 자아냈다.

이들은 노인들이 와서 걱정 없이 편히 놀다 갈 수 있는 게 ‘시각장애인경로당 발전’의 길이라면서 “운영 체계가 안정적으로 정착되기를 바란다”고 입을 모았다. 홍 회장은 “구에서도 시각장애인의 편의를 위해 무엇이든 돕겠다는 말씀을 해주셔서 정말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거듭 고마운 뜻을 표현했다.

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웬디 '상큼 발랄'
  • 웬디 '상큼 발랄'
  • 비비 '아름다운 미소'
  • 강나언 '청순 미모'
  • 문가영 '부드러운 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