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겁먹은 개' 막말로 돌아온 '北바라기'… 韓 외교 돌파구 없나 [뉴스분석]

입력 : 2019-08-13 06:00:00 수정 : 2019-08-13 10:21:47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외교자원 7할 대북정책에 쏠려 / 주변 4강 틈바구니서 ‘우왕좌왕’ / 韓·美동맹에도 이상 기류 감지 / 美·日관계 복원… 北엔 경고 필요 / “文, 8·15 메시지서 해법 내놔야” / 北, 靑·정부 등 거론 막말성 발언 / 협상 과정 南 철저히 무시 의도 / 靑 “한·미훈련 뒤 협상 의지 표현 / 北 담화문 진의 파악하는게 중요” / 전문가 “北, 美와 협상 집중 피력 / 정부, 北에 침묵하는 것은 잘못”

‘사면초가와 고립무원.’

 

작금의 한국 외교가 처한 위기적 상황이다. 북한은 최근 대남 무력도발을 밥먹듯 하면서 안보 불안을 고조시키고 있다. 지난달 25일 이후 다섯 차례나 미사일과 방사포를 쏘아올렸다. 문재인정부가 출범한 후 2년 넘게 ‘북한 바라기’로 일관하며 공들였으나 허사였다. 그동안 기껏해야 “미사일 실험이 한반도 평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최소한의 유감만 표한 현 정부를 향해 북한은 ‘겁먹은 개’라는 막말까지 쏟아냈다. 사실상 등을 돌린 모양새다. 정부가 북한에 올인하는 사이 주변국·우방국과의 관계도 틀어지고 나빠졌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갈등 이후 데면데면했던 중국은 러시아와 손을 잡고 우리 항공식별구역(KADIZ)을 수시로 넘나들며 한반도에 대한 군사적 위협 수위를 높이고 있다. 한·일은 1965년 국교정상화 이후 최악의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굳건한 줄 알았던 한·미 동맹에도 이상 기류가 감지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북의 도발 때마다 “아주 작은 미사일 시험”이라며 ‘면죄부’를 줬다. 한·미연합훈련에 대한 북한의 비난에도 되레 “(연합훈련이) 터무니없고 돈이 많이 든다”며 동조했다. 안보 공조 파트너인 한·일이 무섭게 싸우는데도 말리려 하지 않는다.

 

현재 우리의 외교 위기는 ‘자국 우선주의’를 내건 트럼프의 미국이 더 이상 세계의 경찰을 자처하지 않으면서 그 공백을 중·러·일 등 다른 강대국이 파고들어 일어난 파장이라는 것이 외교가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그러나 문재인정부는 과도한 대북정책 쏠림 탓에 정세 변화를 제대로 읽지 못해 위기를 자초했다는 평가가 많다. 편협·독선적 시각과 무능력한 청와대·정부 외보안보라인의 책임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돌파구를 찾으려면 미·일과의 관계를 복원하고 재발 방지를 위한 엄중한 대북 경고를 보내야 한다고 조언한다.

 

외교통상부 2차관을 지낸 김성한 고려대 국제대학원장은 12일 통화에서 “현 정부의 외교적 자원 중 7할 정도가 대북정책에 집중되고 있고 4강 외교를 비롯한 나머지는 3할 정도에 그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편중성을 문제 삼았다. 김 원장은 “북한 문제를 다루는 데 미국이 한국과 상의하지 않거나 북한이 한국 존재감을 부정할 경우는 절대 성공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미국과 한목소리를 내고 필요하다면 북한에도 경고를 보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는 북한의 미사일 도발에 대해 “90%가 북한의 잘못이라면 아무런 경고를 하지 않았던 한국 정부가 10% 정도는 빌미를 준 것”이라면서 “한·미 동맹이 삐걱거리는 상황에서 메시지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점차 북한과의 협상 자체가 힘들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일본에도 우리 정부의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할 필요가 있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소 안보통일센터장은 “일본과의 문제는 대외적인 요인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며 “특히 문 대통령의 8·15 광복절 메시지를 잘 활용하는 것이 해법의 첫 출발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박 교수는 “일본의 부당함을 지적하는 메시지가 나와야 한다”면서도 “그러나 전체의 3분의 1 정도는 일본에 외교적 타협을 할 수 있다는 메시지도 분명히 들어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通美排南’ 전략 노골화하는 北… 파장 축소에만 급급한 南

 

북한이 미국과 직접 대화하고 한국과 대치상황을 조성하는 ‘통미배남’(通美排南)전략을 들고 나왔다. 1994년 ‘제네바 합의’ 체결 후 북한이 한국을 배제한 ‘통미봉남’(通美封南)전략을 넘어서는 강경기조라는 평가다.

 

1993년 북한은 핵무기비확산조약(NPT) 탈퇴를 선언한 뒤 핵 개발을 빌미로 미국과 협상을 벌여 1994년 미국으로부터 중유 및 경수로를 받기로 한 제네바합의를 체결했다. 이 과정에서 정부는 협상판에 제대로 참여하지 못한 채 북한의 경수로 건설 비용만 부담했다.

 

지난 11일 권정근 북한 외무성 미국 담당국장의 담화문은 전통적인 통미봉남을 넘어 통미배남의 의미까지 담았다는 분석이다. 단순히 미국과 협상하며 남한의 입지를 축소하는 데 그친 게 아니라 청와대와 국방부를 직접 거론하고 심지어 조롱하는 듯한 발언까지 내뱉으며 남한을 핵 협상 과정에서 철저히 무시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셈이다.

북한은 지난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된 이후 중국, 러시아와 잇달아 정상회담을 열며 미국이 아닌 ‘새로운 길’에 대한 가능성을 내비쳤다. 북한은 이 전략으로 협상장을 떠난 미국을 다시 협상판으로 불러들이는 데 성공했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의 평양정상회담에 이은 4차 남북정상회담 제의와 김연철 통일부 장관의 고위급회담 제의 등에 대해 일체 반응을 보이지 않은 채 미국과 ‘직거래’에 나서며 한국을 협상에서 배제해 왔다.

 

북한이 협상가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직접 담판을 하는 게 유리하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한국을 압박하며 군부의 불만을 다독이고, 한·미관계의 틈을 벌리는 효과를 노리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남북 경협의 추진이 지지부진한 데 대한 불만도 드러낸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남북 화해 무드 조성을 위해 전력을 기울여 온 정부는 북한의 강경발언에 대해 의미를 축소하기 급급한 상황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12일 북한 외무성 담화문에 대해 “결국 (한·미연합) 훈련이 끝나면 (비핵화를 위한 북·미 간) 실무협상을 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북한의 담화로 모욕감을 느낀 국민이 적지 않다’는 지적에 대해 “북쪽에서 내는 담화문들은 통상 정부가 내는 담화문과는 결이 다르고, 쓰는 언어가 다름은 대부분의 사람이 다 인지하고 있는 부분”이라며 “담화문의 진의가 무엇인지, 무엇을 말하고자 함인지를 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북한이 담화문에 언급했던 국방부도 별다른 입장을 내지 않고 대북 업무의 주무부서인 통일부도 간략한 입장만을 내는 데 그쳤다.

 

전문가들은 당분간 북한이 미국과의 대화에 집중하겠다는 의사를 피력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지만 정부를 향해 조롱하는 듯한 발언을 듣고도 아무런 입장을 내지 않는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한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북한의 배남(排南)이 부정적이지만은 않다. 북·미 협상에 먼저 집중하겠다는 의사를 미국을 향해서도 피력한 것”이라면서도 “청와대나 국방부 장관을 직접 겨냥한 발언이 있는데, 여기에 대해서는 예의나 외교관례를 벗어난 부분이기 때문에 따끔하게 지적하고 넘어가야 하는데 정부가 너무 침묵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북한이 미국과의 대화를 재개한 뒤 다시 한국에 화해의 제스처를 취할 가능성은 남아 있다. 북한은 대내적으로는 남한에 대한 원색적 비난 보도를 하지 않고 있다.

 

홍 실장은 “북한의 배남이 국면적일지 굳어지는 것인지를 잘 따져야 하는데 현재로서는 한·미 연합지휘소훈련 이후 북·미 대화가 이뤄지면 9월 중순 유엔총회를 계기로 북·미 고위급회담이 이뤄지고 그 이후 다시 북한도 남한과 대화를 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이정우·홍주형·조병욱·박현준 기자 woolee@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한지민 '우아하게'
  • 한지민 '우아하게'
  • 아일릿 원희 '시크한 볼하트'
  • 뉴진스 민지 '반가운 손인사'
  • 최지우 '여신 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