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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분벽화, 고구려만의 흔적?… 남한에도 10여개 있다

입력 : 2019-08-13 06:00:00 수정 : 2019-08-13 07:4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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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문화재硏 ‘남한의 고분벽화’ 발간 / 고려, 왕실·귀족층 무덤은 벽화로 장식 / 거창 둔마리 고분, 천인 연주 모습 그려져 / 조선 것으로는 밀양 박익 벽화묘 유명 / 공양 하러 가는 인물 행렬도 등 나타나 / 백제·가야 고분벽화에는 문물 교류 흔적

벽화로 유명한 우리나라 고구려 고분은 독창적인 토목기술, 독특한 매장관습이 일본을 비롯한 다른 지역에 준 영향 등이 인정돼 2004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한반도 고대문화를 화려한 그림으로 증언하는 고구려 고분벽화는 비록 그것이 북한 지역에 산재해 직접 감상하기는 힘들지만 역사 교과서에 실리는 것은 물론이고 지난해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식 공연 모티브가 될 정도로 우리에게도 친숙하다. 고구려 고분벽화의 높은 명성은 그 수가 열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적다는 사실과 함께 남한 고분벽화가 관심을 덜 받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반도 이남에는 어떤 고분벽화가 남아 있으며, 어떤 상태로 전해지고 있을까.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가 최근에 발간한 ‘남한의 고분벽화’는 이런 질문의 답을 구할 수 있는 자료다. 남한에는 “그림이 뚜렷이 남아 있는 고분이 10여기 정도”이고, “대부분 사적으로 지정되어 관리 중인데, 외부 환경 노출에 따른 훼손 문제로 대부분 출입이 통제된 상태”라고 한다.

◆매화·대나무를 그린 조선의 고분벽화

‘영주 순흥 벽화 고분’(사적 313호)은 고구려 땅이었던 소백산맥 남쪽에 위치해 있다. 천장을 제외한 모든 벽면에 회칠을 하고 채색화를 그렸는데 새, 인물, 글씨, 버드나무, 가옥 등이 확인된다. 평양의 안악2호분과 약수리고분 등에서 보이는 역사상(力士像)도 보이는데 눈을 부릅뜬 서역인 모습을 하고 있다.

신라 고분에서는 벽화가 발견되는 사례가 매우 드물다. “나무 덧널 위에 돌을 쌓고 흙을 덮어 만든 돌무지덧널무덤을 썼기 때문에 벽화가 존재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석실분이 등장하면서 그림을 그린 것으로 보이는데, 경주 배동 삼릉(〃 219호)에는 붉은색, 황색, 백색 등으로 벽면을 채색한 흔적이 남아 있다. “본격적인 벽화는 아니지만 벽화가 잘 그려지지 않은 경주의 신라 무덤에서는 주목되는 사례”라는 평가를 받는다.

 

고려시대인 13∼14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거창 둔마리 고분에 그려져 있는 벽화. 고려의 왕실, 귀족은 벽화로 무덤 내부를 꾸미기도 했다.

고분벽화 하면 시기상으로 고대를 떠올리지만 고려, 조선에서도 귀족층의 무덤에 그림을 그렸다. 불교의 장례문화를 적극 수용한 고려는 주로 화장을 해 큰 묘를 만들 필요가 없었지만 왕실, 귀족의 무덤은 큰 석실묘를 조성하고 벽화로 장식했다. 안동 서삼리 벽화고분은 네 벽에 사신도와 별자리그림 등이 나타나고, 십이지신상과 같은 소재들이 새롭게 등장했다. 거창 둔마리 벽화고분(〃 239호)에는 천인(天人) 6명이 춤을 추며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국립문화재연구소 박윤희 연구사는 “고구려 벽화에서는 죽음 이후의 세계를 묘사할 때 별자리와 네 방위를 관장하는 사신도를 그렸다면, 고려 벽화에는 방위와 동시에 시간을 나타내는 십이지신상이 별자리 그림과 함께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조선 세종대에 조성된 박익의 묘에는 매화, 대나무가 벽화로 그려져 있다.

조선 것으로는 세종 2년(1420) 조성된 밀양 박익 벽화묘(〃 459호)가 유명하다. 공양을 하러 가는 인물 행렬도, 말과 마부의 출행도, 매화·대나무 그림 등이 나타난다. 세조가 묻힌 광릉에 회곽묘가 적용되고, 이후 일반화되면서 고분벽화는 사라지게 된다. 회곽묘는 석곽, 석실을 만드는 대신 모래, 석회, 황토를 섞어 관을 놓을 자리를 만들어 그림을 그릴 벽이 사라진 형태다.

◆고구려 영향 토대로 독창성 살린 백제 고분벽화

백제, 가야의 고분벽화에서는 문물 교류의 흔적이 나타난다. 백제의 것으로는 공주 송산리 고분군(〃 13호)과 부여 능산리 고분군(〃 14호) 중 일부에서 발견된다. 송산리6호분 그림 중에는 서벽 백호가 주목된다. 자세나 형태가 고구려 진파리1호분 벽화의 그것과 유사하다. 울산대 전호태 교수는 “송산리6호분과 진파리1호분 벽화는 도상의 구성뿐 아니라 세부묘사까지 닮은 부분이 많다”며 “특히 청룡과 백호는 영향 관계를 고려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닮은꼴”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암수 한 쌍을 그리는 게 일반적인 고구려 고분벽화의 주작과 달리 백제의 주작은 좌우에 해와 달을 거느린 단독상이라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전 교수는 “백제의 첫 고분벽화로 보이는 송산리6호분의 사신이 세련된 형태와 자세의 단독상이라는 사실은 고구려 미술의 영향을 바탕으로 백제식 변형과 재창안을 거쳤다고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공주 송산리6호분 내부의 백호 그림을 보여주는 전시관 모습.

고령 고아리 벽화고분(〃 165호)은 중국 남조, 백제를 거쳐 수입된 불교문화의 흔적을 읽을 수 있다. 남아 있는 흔적으로 보아 무덤 천장에는 연꽃무늬와 구름무늬, 무덤칸 벽은 사신으로 장식된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무덤을 사신이 수호하는 불교의 정토와 같은 곳으로 상정했다고 보아야 한다는 분석이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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