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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 인정받은 ‘게임의 규칙’… 갈 곳 잃은 ‘카피캣’ [이슈 속으로]

입력 : 2019-08-10 16:00:00 수정 : 2019-08-10 15:3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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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첫 판결에 업계 ‘들썩’ / “모바일게임 ‘포레스트 매니아’가 / 팜히어로사가의 게임방식 모방” / 원심 파기 환송… 표절 관행 ‘제동’ / 게임의 창작성 판단기준 첫 제시 / 응원가·방송프로도 저작권 분쟁 / “원대상물과 유사하면 침해 인정”

“유기적인 조합에 따른 창작적인 표현형식을 그대로 포함하고 있는 만큼 저작권 침해에 해당한다.” 대법원이 최근 게임 규칙과 방식 등을 저작권으로 인정하는 판결을 내리면서 업계가 들썩이고 있다. 게임물의 저작권을 인정하지 않았던 기존 판례에서 탈피해 게임 속 구성요소들이 선택과 배열, 유기적인 조합을 통해 개성을 가진다면 저작권 보호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선고했기 때문이다. 당장 ‘카피캣’(모방) 게임이 범람했던 게임 시장에서 큰 변화가 예상된다는 관측이 나온다.

◆대법원 “게임 규칙·시나리오 비슷하면 저작권 침해”

지난 6월 대법원은 게임사 ‘킹닷컴’이 ‘아보카도엔터테인먼트’를 상대로 낸 저작권 침해금지 등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킹닷컴은 아보카도엔터테인먼트가 배급한 모바일 게임 ‘포레스트 매니아’가 자사 게임 ‘팜히어로사가’의 저작권을 침해했다며 2014년 9월 소송을 제기했다. 팜히어로사가는 특정한 타일들을 3개 이상 직선으로 연결하면 타일들이 사라지고, 점수를 획득하는 방식의 게임이다.

대법원은 과거에도 팜히어로사가와 유사한 방식의 게임(매치-3-게임)은 있었다고 인정했지만, 특유의 창의성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팜히어로사가는 농작물을 기본적인 캐릭터로 해 특정한 타일이 3개 이상의 직선으로 연결되면 함께 사라지면서 그 수만큼 점수를 획득하는 ‘매치-3-게임’(match-3-game)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면서 “기존에도 매치-3-게임이 있었지만, 원고 게임물은 과일과 야채 등을 형상화한 캐릭터를 중심으로, 방해 캐릭터로는 토끼, 전투 레벨의 악당 캐릭터로는 너구리를 형상화한 캐릭터를 사용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피고 게임물인 포레스트 매니아는 매치-3-게임의 형식으로, 기본 캐릭터로는 농작물 대신 여우와 하마 등을, 방해 캐릭터로는 토끼 대신 늑대를, 악당 캐릭터로는 너구리 대신 원시인을 사용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피고 게임물은 원고 게임물과 동일한 순서로 히어로 모드, 전투 레벨 등을 도입했고 원고 게임물의 제작 의도와 시나리오에 따라 기술적으로 구현된 주요한 구성요소들의 선택과 배열 및 조합을 그대로 사용했다”고 판시했다. 앞서 1·2심은 “게임규칙은 저작권 보호 대상에 해당하지 않아 저작권 침해가 아니다”며 킹닷컴의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저작권 인정 못 받던 기존 판결 뒤집혀… 게임 업계 들썩

대법원이 사실상 최초로 게임물에 대한 저작권을 인정하자 업계는 들썩이고 있다. 국내에서 게임 저작권 분쟁이 법정까지 간 경우도 별로 없었고, 법정에서도 저작권이 인정되지 못했다. 저작권법상 저작물이란 ‘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로 규정되는데 그동안 법원은 게임 규칙 등은 표현이 아닌 아이디어로 봐야 한다고 인식했기 때문이다.

9일 산업계 등에 따르면, 국내에서 최초로 게임 저작권과 관련해 법원 판단이 내려진 것은 2002년 9월 ‘포트리스2블루’와 ‘건바운드’ 분쟁이다. 게임사 ‘CCR’에서 포트리스를 만든 한 개발자가 다른 게임사 ‘소프트닉스’로 옮겨 유사한 방식의 건바운드란 게임을 개발·출시한 것이다. 이에 CCR는 건바운드 서비스 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지만 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이후에도 몇 차례 게임 저작권 분쟁이 있었지만 대부분 저작권 침해가 인정되지 않았다. 2007년 1월 선고가 이뤄진 게임사 ‘허드슨’의 ‘봄버맨’과 ‘넥슨’의 ‘크레이지 아케이드’가 대표적이다. 당시 허드슨 측은 크레이지 아케이드의 게임 방식이 봄버맨의 폭탄을 물방울로 대체했을 뿐이라며 저작권 침해를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봄버맨과 크레이지 아케이드의 맵, 캐릭터가 전체적인 미감과 색이 전혀 달라 실질적인 유사성이 없다”며 “따라서 크레이지 아케이드가 봄버맨의 저작권을 침해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2016년 보드게임 ‘부루마불’ 제작사로부터 독점적인 사용권을 부여받은 게임사 ‘아이피플스’가 ‘모두의 마블’을 개발·출시한 ‘넷마블’을 상대로 저작권 위반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해 8월 대법원은 저작권 침해를 인정하지 않았다. 법무법인 민후 김경환 변호사는 “소설 등에 비해 그동안 게임은 저작권이 잘 인정되지 않았다”며 “게임의 경우 과거부터 비슷한 형태들의 게임들이 많았고 왜 보호해야 하냐는 명분도 약했다”고 설명했다.

게임 업계는 이번 판결을 반기고 있다. 한 모바일 게임 업계 관계자는 “그동안은 인기 게임이 등장하면 다른 업체가 유사한 방식의 게임을 곧바로 출시하는 관행이 있었다”며 “상당한 수의 카피캣 게임들이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게임뿐 아니라 응원가·방송 프로그램도 저작권 분쟁

저작권 논쟁은 운동 경기 응원가에서도 불거지고 있다. 지난해 5월부터 두산베어스 등 야구팀에서는 선수들이 등장할 때 나오던 20초 안팎의 응원가 송출을 중단했다. 2016년부터 일부 원작자가 노래 일부분만 사용하거나 가사를 고치면서 원곡 느낌이 훼손됐다며 ‘저작인격권’ 침해 논란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당시 두산베어스 양의지 선수(현 NC다이노스)의 등장송은 박재범의 ‘좋아’, 삼성라이온즈 강민호 선수의 등장송은 노브레인의 ‘넌 내게 반했어’가 원곡이었다. 지난해 3월 작곡가 윤일상 등 21명은 삼성라이온즈가 2012∼2016년 사용한 음원의 저작인격권 침해를 지적하며 서울중앙지법에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대부분 1심 판결에서 법원은 구단의 손을 들어줬다. 지난 2월 서울중앙지법은 윤일상씨 등 원작자 21명이 삼성라이온즈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지난 3월에도 작곡가 김창환씨와 주영훈씨가 키움히어로즈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도 원고 패소 판결이 나왔다. LG 트윈스를 상대로 한 판결에서도 구단이 이겼다. 그러자 작곡가들이 곧바로 항소, 현재까지 야구장에서 등장송을 틀지 못하고 있다. 수도권을 연고로 한 야구단 응원단장은 “아직 확정된 결과가 나오지 않은 만큼 별도 등장송을 틀지 않기로 했다”며 “일부 구단에서는 자체적인 노래를 작곡해서 타자가 등장할 때 튼다고 알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엔 방송 프로그램에서도 저작권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2017년 11월 대법원은 CJ E&M이 제작한 ‘새러데이 나잇 라이브 코리아 시즌2’가 SBS 리얼리티 프로그램 ‘짝’을 무단 도용한 것은 저작권 침해라고 판결했다. 저작권 침해가 아니라고 판단한 1·2심 판결을 뒤집은 것이다. 당시 대법원은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개별요소들이 일정한 제작의도나 편집 방침에 따라 선택되고 배열되므로 다른 프로그램과 구별되는 창작적 개성을 가지고 있어 저작권법의 보호대상”이라고 지적했다.

법무법인 율촌 김기정 변호사는 “저작권 침해 여부는 대상물을 저작물로 볼 수 있느냐, 저작권 침해를 인정할 정도로 실질적 유사성이 있느냐로 판단된다”며 “해당 대상물이 독창적이고 창작성이 높다면 저작권이 인정되고, 다른 대상물이 원대상물과 조금이라도 비슷하면 저작권 침해가 인정된다”고 설명했다.

 

염유섭 기자 yuseob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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