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인의 삶에서 스트레스는 떼려야 뗄 수가 없다. 그런데 ‘스트레스는 어디에서 오는 걸까’라는 질문에 항상 빠지지 않는 대답이 있다. 바로 ‘인간관계의 어려움’이다.
시장조사 전문기업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의 2018 설문조사에 의하면, 성인 남녀 1000명 중 ‘인간관계로 인한 스트레스가 없다’고 대답한 사람은 10명 중 2명(19.7%)에 불과했다.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의 유형도 다양하다. 영악하게 자기 이익만 챙기는 사람, 늘 약속을 어기는 무책임한 사람, 힘 있는 사람에겐 아첨하고 힘없는 사람은 대놓고 무시하는 속물, 늘 남 탓하는 사람 등이다. 특히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아는 사람들’과의 관계는 어렵다. ‘호구’처럼 계속 이용당한다는 생각에 화가 나기 쉬우니까 말이다. 다른 사람에게 친절하고 거절하는 데 익숙지 않은 사람이라면 더더욱 힘들 것이다.
내 편에서는 어느 정도 무리해서 도움을 주는 것인데 상대의 요구가 점점 많아지다 보면, 어느 순간 참을 수 있는 한계를 넘게 되고 나도 모르게 버럭 화를 낼 수 있다. 그러면 이제껏 참고 노력했던 것은 다 날아가고 인간관계에서 또 한 번 상처받는 상황을 맞게 될 수도 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나의 욕구를 잘 표현하면서도, 상대방과의 관계를 다치지 않게 할 수 있을까. 이를테면, 지난번에 빌려 간 돈도 약속한 기한까지 갚지 않은 상태에서 더 큰 돈을 빌려 달라고 한다. 이런 경우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한 친구는 “뭐 또 돈을 빌려 달라고. 야, 인간이 염치 좀 있어라. 지난번에 빌린 돈도 안 갚았으면서 지금 그런 말이 나오니. 빌린 돈이나 갚고 말해”라고 한다. 또 다른 친구는 “지금 나도 여유가 없어 힘들어”라고 실제로는 빌려줄 돈이 있지만 거짓말을 한다.
문제는 전자처럼 이야기를 하면 그 친구가 “야, 너 그까짓 돈 몇 푼 빌려줬다고 생색내는 거야”라고 화를 내고 둘 사이가 경색될 가능성이 크다. ‘공격적인 표현’이 담겼기 때문이다. 상대방을 염치없는 인간으로 평가·비난하게 되면, 상대도 화가 나기 때문에 돈을 빌려주고 말고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고 서로 상처 주는 말을 하기 쉽다. 후자는 어떨까. 곤란한 상황을 빨리 모면하고자 하는 시도이나 별 도움이 안 된다. 그 친구가 “야, 그래도 넌 나보다 월급 많이 받잖아. 그러지 말고 절반이라도 빌려줘”라고 하면서 ‘문간에 발 들여놓기’ 기술이라도 쓰면 결국 반이라도 빌려줘야 할지 모른다. 즉 ‘수동적인 표현’으로 자신의 욕구를 충분히 표현하지 못하고 상대방의 반응에 끌려 다니게 된다.
그렇다면 나의 욕구를 잘 표현하면서도 상대방과의 관계를 망치지 않는 합리적인 반응은 어떤 것일까. 물론 어떤 경우든 모든 상황에 적용되는 정답은 없다. 하지만 ‘사실 지난번에 너한테 돈 빌려주고 나도 꽤 힘들었어. 다시 너에게 돈을 빌려주면 우리 사이가 불편해질까봐 걱정이 돼. 너와의 관계가 나한텐 중요하니까. 어렵게 얘기했는데 들어주지 못해 정말 미안하지만 이번에는 돈을 빌려주기 어려울 것 같아’라고 하면 어떨까.
이렇듯 필자는 자신이 어떤 상황인지 솔직하게 말하고, 어떤 부분이 염려되는지를 전달하면서도 상대를 비난하거나 상황을 단지 모면하려는 수동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동귀 연세대 교수·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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