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1월, 홍콩에서 열린 칼스버그컵 파라과이와의 3·4위전.
전 축구 국가대표 골키퍼이자 유튜브 채널 ‘꽁병지 TV’의 대표인 김병지(49)는 20년 가까이 세월이 흘렀어도 이 경기를 잊지 못했다. 이듬해 열릴 2002 한일월드컵을 앞두고 거스 히딩크 감독의 눈도장을 받으려 국가대표 동료들이 고군분투하는 상황 속에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러서다.
경기에 선발로 나선 김병지는 전반전 추가 시간, 페널티박스로 공이 들어오자 재빨리 잡고는 골킥이나 동료에게 패스가 아닌 드리블을 선택했다. 하지만 그가 공을 갖고 있던 시간은 3초 정도에 불과했다. 파라과이 선수에게 공을 뺏기자 급히 달려들어 겨우 되찾고는, 가까스로 동료에게 공을 건넨 후 골대로 복귀했다.
승부차기 끝에 파라과이를 누르면서 히딩크 감독 부임 후 첫 승이라는 결과를 거둔 가운데, 김병지가 최종엔트리에는 들었어도 월드컵 무대에는 나서지 못하면서 이날의 드리블이 무리수가 아니었냐는 이야기가 두고두고 되풀이됐다.
지난달 31일, 경기도 남양주시의 ‘꽁병지 TV’ 사무실에서 세계일보와 만난 김병지는 “(월드컵에 뛰지 못할) 결과를 알았다면 2002 월드컵이 끝날 때까지 드리블을 참았을 것 같다”고 웃었다. 그는 ‘과한 자만감’이 있었다고 했다. 축구 기술이 아니라 ‘인간 김병지’를 과신했다는 거다. 히딩크 1기 멤버에는 뽑혔으나 2기에서 제외되는 등 대표팀 붙박이 주전이 되지 못했고, 월드컵에서는 한 경기도 나설 수 없었다. 이러한 문제 속에 그는 감독과의 앙금도 재빨리 털지 못했다. 사람 대 사람으로서 다가가는 법이 익숙하지 않아서다.
김병지는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감독님께 나의) 문제를 인정한 뒤 죄송하다고 말씀드릴 것”이라고 말했다.
한 가지 다행이라면 당시를 계기로 팀 내 선참으로서의 역할, 동료와 호흡을 맞추는 법, 감독과 팬 그리고 구단과의 관계 등을 어떻게 유지해나가는지 몸소 깨달았다는 사실이다. 김병지는 “2001~2002년은 배운 게 많은 시기였다”며 “선수생활을 14년이나 더 할 수 있었던 계기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잃은 만큼 얻는다는 것. 김병지가 기억하는 2002 한일월드컵이다.
김병지는 1992년 울산현대에서 프로선수로 데뷔해 2016년 은퇴할 때까지 프로통산 706경기(754실점·3득점) 출전이라는 대기록을 남겼다. 체육훈장 맹호장(2002년)과 더불어 K리그 특별상 6회, K리그 베스트11(4회) 등의 굵직한 수상 경력이 있다. 울산에서 뛰던 1998년 포항과의 K리그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는 천금같은 헤딩골로 팀의 챔피언결정전 진출을 이끌기도 했다.
* 김병지와의 인터뷰 3편. 1996년 유벤투스전 출장의 기억 그리고 '호날두 노쇼'에 대한 솔직한 속내. 내일(6일) 기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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