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아세안의 ‘대화 상대국’으로 1994년 제1회 회의부터 매년 ARF 회의에 참석했다. ARF의 관심사는 한반도의 가장 큰 과제인 북핵문제를 비롯해 미·중 전략경쟁의 집약체인 남중국해 분쟁 등 전통적 안보 영역에서부터 테러·환경 등 비전통 안보 영역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아세안 전문가인 이재현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30일 “ARF를 통해 북핵 문제 등 우리 관심사만 관철시키려는 태도보다는 아세안 안보 문제나 ARF에서 다루는 지역 전반의 안보 문제에도 적극적인 관심을 보일 때 그들도 우리 문제에 관심을 보인다”고 강조했다.

◆ARF 단골 소재, 남중국해 분쟁과 미·중 전략경쟁
개별 국가로는 미약하지만 아세안 울타리 안에서 한목소리를 내면서 미·중 등 주변 강대국 사이에서 목소리를 내 온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냉전 질서가 무너진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자국 안보를 위해 새로운 질서를 찾을 필요성을 느낀다. 1994년 7월 아세안이 한·미·중·일·인도 등 주변 주요국들과 의기투합해 처음으로 안보 다자회의를 개최하게 된 배경이다.
아세안 국가들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인도·태평양 전략과 일대일로 정책으로 전략경쟁을 벌이고 있는 미·중 사이 균형을 유지하려는 성향을 보인다. 남중국해 분쟁은 이들이 미국을 이용해 중국을 견제하는 대표적 이슈다. 매년 미·일은 ARF 회의에서 남중국해에서의 중국의 행위를 비판하고, 중국은 거세게 이에 항의하며 “양자 간 해결할 문제”라고 대응하는 일이 반복된다. 남중국해 분쟁도서의 인공섬 건설 문제, 동중국해 가스전 개발 문제 등은 ARF에 단골로 등장하는 의제다.
올해 역시 남중국해 분쟁이 의장성명에 포함될 가장 큰 의제 중 하나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아세안 관계 한 당국자는 “미·중이 인도·태평양 전략과 일대일로를 통해 본격적으로 맞붙기 시작하면서 이 문제는 올해도, 앞으로도 ARF의 가장 큰 이슈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우리 정부로서는 대(對)아세안 외교 확대를 의미하는 신남방정책의 기치를 본격적으로 내건 만큼 특히 아세안 지역 안보 문제에도 과거보다 더 관심을 쏟아야 할 필요가 생겼다는 게 관계 당국의 평가다. 외교 당국자는 “강대국인 미·중보다 관련 문제를 다루는 데 아세안국가들에 더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11월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가 부산에서 열리는 만큼 이를 홍보할 필요도 있다.

◆북한 외무상이 참석하지 않은 ARF는 단 세 번뿐
우리가 ARF 회의에 25년간 특히 공을 들인 이유 중 하나는 북한이 참여하는 몇 안 되는 다자협의체이기 때문이다. 북핵 문제는 남중국해 문제와 함께 ARF의 단골 소재다. ARF 의장성명에 북한 비핵화 관련 내용을 넣으려는 우리와 이를 빼거나 축소하려는 북한의 외교전은 매년 반복됐다. 올해도 ARF 의장성명에 북한 비핵화와 관련된 내용이 포함될 가능성이 높지만 미국이 주장하는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가 들어갈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한다.
2000년 제7차 ARF 외교장관회의부터 북한 외무상이 ARF에 참석하지 않은 것은 2001년과 2003년, 2009년 단 세 차례다. 외무상이 참석하지 않을 땐 본부 대사가 참석했다. 올해는 북한 외무상이 참석하지 않는 네 번째 ARF가 될 것으로 보인다. 외교소식통에 따르면 리용호 외무상은 당초 ARF 참석을 계기로 주변 2개국 방문 일정까지 잡아뒀으나 최근 갑작스럽게 주최국에 불참을 통보했다. 한·미는 ARF 회의에서 자연스럽게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과 리 외무상의 고위급 회담 계기가 만들어지면서 북핵 실무협상이 시작될 것으로 생각했던 만큼 곤혹스러운 눈치다.
북핵 이슈가 있는 한 ARF에서 북한 대표는 매년 가장 큰 관심을 받는 인물 중 하나일 것으로 보인다. 2017년 ARF는 북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 추가 제재안 발표 등과 맞물리면서 긴장이 최고조에 달했다.

◆다변화하는 ARF
9·19 테러 이후 ARF에서 다루는 의제도 다양해졌다. 대테러, 사이버 안보 등 ‘비전통 안보’ 분야의 협력이 늘어난 것이다. 현재 ARF에서 다루는 다섯 개 분야는 대테러·초국가범죄, 재난구호, 해양안보, 비확산·군축, ICT 안보로 나눠져 있다.
비전통 안보 분야 회기에도 이와 관련된 회원국들의 관심사와 주요 현안이 반영되는 사례가 있다. 2017년 김정남 암살 사건이 일어나면서 ARF 대테러·초국가범죄 회기간 회의에서 북한의 테러 행위에 대한 비판이 제기된 것이 한 예다.
아세안 회원국인 미얀마 정부와 소수민족 간 분쟁도 ARF의 단골 의제다. 미얀마에서 탄압받는 로힝야 난민들을 수용하는 방글라데시 역시 ARF에 회원국으로 참석한다.
홍주형 기자 jh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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