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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일방적 추진·주민 무조건 반대… ‘공공재의 비극’ 반복

입력 : 2019-07-29 19:39:58 수정 : 2019-07-29 21:3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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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시설 건립 갈등, 5건 중 1건은 ‘님비’ / 서울 강서 수소생산기지 등 비선호시설 건립 반대 속출 / 지자체·사업자 ‘딜레마’ 빠져 / 갈등지수 OECD 7위… 年최대 246조 손실 / 은평 자원순환센터·괴산 의료폐기 소각장 / 환경오염 등 이유 주민들 건설 퇴짜 ‘홍역’ / 상명하달식 소통, 비용·편익 불일치 원인 / 공론화 초기부터 주민과 정보 공유해야 / 지역민도 거부만 말고 실익따져 결정을

“열병합발전소, 수소생산기지 결사반대!”

 

서울 강서구 주민들은 지난 8일과 15일 두 차례에 걸쳐 강서구청과 방화사거리에서 열병합발전소 및 수소생산(충전)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대규모 항의 집회를 개최하고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 8일 서울 강서구에 건립 예정인 수소생산기지 및 열병합발전시설을 반대하는 주민들이 모인 ‘수소생산기지 및 열병합발전 반대 비상대책위원회’가 강서구청 앞에서 항의 집회를 개최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서울에너지공사에 따르면 열병합발전소(서남집단에너지시설)는 강서·마곡지역에 원활한 난방 공급을 위해 2023년까지 서남물재생센터 인근에 건립할 예정이다. 수소생산기지는 수소버스 활성화를 위한 수소 생산 및 충전시설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공모를 통해 지난 5월 말 서울 강서구의 공영차고지를 강원 삼척, 경남 창원과 함께 최종 대상으로 선정했다.

 

주민들은 “해당 사업 추진 과정에서 주민들에게 사전 설명이 없었고, 강서구에만 소위 ‘혐오시설’이 집중되고 있다”며 계획을 즉각 철회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주민들로 구성된 ‘수소생산기지 및 열병합발전 반대 비상대책위원회’는 “언론 보도와 학계 주장 등에 따르면 열병합발전소 가동 시 초미세먼지와 발암물질이 배출된다”며 “천연가스(LNG)를 친환경 에너지라고 주민들을 기만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비대위는 제3차 항의 집회를 준비하는 등 계획이 철회될 때까지 행동에 나선다는 입장이다.

 

공사 및 서울시 관계자는 “열병합발전소의 유해물질 배출 수준은 개별난방의 20% 수준에 그치고 수소충전소도 이미 해외에서 안정성이 입증됐는데, 주민들이 사업에 대해 오해하시는 부분이 많다”며 “주민설명회 등을 통해 주민들과 소통하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했다.

 

최근 폐기물처리장과 에너지설비시설, 정신병원 등 비선호시설 입지선정이나 정부가 추진 중인 국책사업을 두고 지자체 또는 지역주민이 반대하는 ‘님비(NIMBY)’ 현상이 속출하고 있다. 님비는 ‘내 뒷마당에는 안 된다’(Not In My Back Yard)의 줄임말로, 지역 이미지 훼손과 자산가치 하락 등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혐오시설 등 비선호시설이 특정지역에 들어오는 것을 반대하는 현상을 가리킨다.

 

한국의 사회갈등지수는 2016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7개 회원국 가운데 7위로 매우 높은 수준이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사회갈등으로 인한 경제적 비용을 추산했는데, 한국은 연간 83조원에서 최대 246조원이 드는 것으로 분석했다.

 

이처럼 공공갈등이 몇십년째 반복되면서 우리 사회 경쟁력을 갉아먹는 만큼 원만한 갈등 해결을 위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비선호 시설 건립 주민 반대 잇따라

 

29일 한국행정연구원이 1980년부터 2018년까지 집계한 공공갈등 459건 가운데 비선호시설로 인한 갈등이 119건으로 26.0%에 달한다. 선문대 정부간관계(IRG)연구소에서 2014년까지 분석한 2030건의 데이터베이스에서도 우리 사회 님비로 인한 갈등은 435건으로 국내에서 발생한 공공갈등 5건 중 1건을 차지한 셈이다.

 

서울 은평구 역시 ‘광역자원순환센터’ 설립을 반대하는 님비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광역자원순환센터는 2023년 9월 완공을 목표로 하는 재활용쓰레기 선별시설이다.

 

은평구는 현재 생활폐기물 자체처리 비율이 37%에 불과하다. 은평구는 광역자원순환센터 건립을 통해 재활용 쓰레기를 처리하고 서대문구에서 음식물쓰레기, 마포에서 생활쓰레기를 처리하는 폐기물처리 협력체계를 구축할 계획이다. 그러나 은평구 주민들과 인근지역인 경기도 고양시 주민들은 ‘센터 건립 전면 백지화’를 요구한다. 지난 1일에는 은평뉴타운 아파트 단지 주민들이 ‘은평광역자원순환센터 건립 반대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리고 일부 주민들은 지난해부터 1인 시위를 이어오고 있다. 이들은 “건립이 결정되기 전까지 이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며 “악취·소음, 도로 혼잡, 환경오염 등이 예상된다”며 반발하고 있다.

 

은평구 광역자원순환센터 건립 태스크포스(TF) ‘시설관리추진단’ 관계자는 “지난해 9월 국무조정실 주최로 환경부, 서울시, 고양시와 함께 갈등조정회의를 개최한 결과 백지화가 사실상 불가능한 대신 시설을 완전 지하화하고 지상에 주민을 위한 체육시설을 건립하기로 했다”며 “몇 차례 주민설명회와 공청회를 열어 필요성과 주민들이 우려하는 환경오염 부분에 대한 의견을 들었지만 여전히 거부감이 큰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밖에 충북 괴산군 신기리 일대 의료폐기물 소각시설과 인천 동구 송림동의 수소연료전지발전소, 충남 천안시 광덕면 폐기물소각장, 경기 여주시 북내면 지내리 태양광 발전시설 등 공공시설 설립 추진이 각 지역 주민들의 반발에 홍역을 치르고 있다.

 

반면 네이버가 추진하는 ‘제2데이터센터’는 비선호시설에서 서로 인센티브를 주고서라도 유치하고 싶어 하는 ‘선호시설’로 바뀐 이례적 사례다. 앞서 경기도 용인시에 건립을 계획했으나 인근 주민들이 전자파 문제, 환경오염 등을 이유로 반발하면서 무산됐다. 그러나 이후 전국 60여개 지자체를 포함해 총 118곳이 데이터센터 유치를 원한다며 의향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5400억원 상당의 투자금과 직접고용, 세수 확보, 로봇·빅데이터·인공지능(AI) 등 첨단산업단지 조성 등 지역경제에 가져올 긍정적 영향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강원도 춘천에 위치한 네이버 비즈니스 플랫폼(NBP)의 데이터센터 ‘각’ 전경. 세계일보 자료사진

◆“주민 참여 유도와 적극적인 소통 노력 필요”

 

이 같은 비선호시설을 둘러싼 갈등의 이면에는 ‘상명하달식 소통방식’과 ‘비용과 편익의 불일치’가 자리 잡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단국대분쟁해결연구센터 임재형 교수는 ‘비선호시설 공공갈등에 있어 이해관계자의 행태 및 역할’이라는 제목의 연구보고서에서 “비선호시설 입지 갈등의 원인은 공공시설 설치로 혜택(편익)은 전지역이 골고루 누리는 반면 이로 인해 지불하는 비용은 인접 지역 주민들에게 집중되므로 주민들이 느끼는 비용과 편익의 격차가 갈등의 핵심”이라고 분석했다.

 

또 입지선정 과정에서 사업주체가 주민을 배제하고 우선 결정한 뒤 환경영향평가나 갈등영향평가는 행정절차를 위한 요식행위에 그치는 ‘밀어붙이기식 결정·통보·방어’(DAD·Decide-Announce-Defend)’ 형태로 사업을 추진함으로써 주민들의 반발을 불러일으킨다고 평가했다.

 

전문가들은 지역주민과 정부 및 공공기관이 상생하기 위해서는 소통방식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단국대분쟁해결센터 전형준 교수는 “막상 입지를 결정하고 의견을 수렴하려면 주민들이 ‘요식행위’로 오해하고 듣지 않으려고 하는 경우가 많아 사업주체나 지자체가 딜레마에 빠진다”며 “주민 가운데 여론주도층을 모아서 입지선정위원회를 만들어 시민들을 공론화 과정 초기부터 참여시키거나, 일시적 공청회보다 수원시의 ‘소통박스’처럼 현장사무소를 만들어 지속적으로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등 소통방식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전 교수는 “비선호시설의 경우 주민들이 내용도 듣지 않고 ‘우리 지역만 손해’라며 반대하면서 정작 다른 지역에 어떤 비선호시설이 있는지는 무관심한 현실이 ‘공공재의 비극’을 만드는 것”이라며 “합리적인 논의가 가능하도록 성숙한 시민의식을 키워나가는 것도 장기적인 과제”라고 조언했다.

 

한양대갈등문제연구소 강영진 소장도 “공론화 절차의 부재가 갈등을 키운다”며 “어느 정도 규모로, 어느 곳에 설치하는 게 바람직한지 입지선정 절차와 기준을 주민들이 납득할 수 있도록 충분히 설명하고 사후 관리·운영 과정에서도 시민이 직접 참여하는 협의기구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남혜정 기자 hjna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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