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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년 만의 귀향’ 지광국사탑, 어디에 다시 세워질까

입력 : 2019-07-30 06:00:00 수정 : 2019-07-29 21:3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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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작업 마무리 단계… 복원 위치 관심 / 고려시대 ‘국사’ 지낸 해린 공덕 기려 건립 / 1911년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해체 ‘수난’ / 제자리인 원주 법천사지 경관 해칠 우려 / 전시관으로 이전도 고민… 2019년말 최종 결정

“해린 스님 오신다.”

강원도 원주의 법천사지(사적 466호)는 기다림의 공간이다. 일본인들이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국보 101호)을 뽑아간 건 1911년. 서울, 오사카를 정처 없이 유랑하고, 6·25전쟁 중 포탄까지 맞는 ‘고려의 가장 우수한 탑’이 돌아오길 기다린 지 무려 108년이다. 원주 시민들이 절터에 내건 현수막 속 해린(984∼1067)이 고려 문종대 왕사, 국사를 지낸 지광국사로 석탑과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비’(〃 59호)는 그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다.

법천사지의 긴 기다림을 끝내는 결정이 나온 건 지난달 20일이다. 문화재위원회는 석탑의 보존처리가 끝나면 법천사지에 다시 세우기로 결정했다.

국보 101호로 지정되어 있는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

귀향을 앞둔 지금, 하나의 선택이 남았다. 석탑의 자리를 법천사지 내의 어디로 할 것이냐다. 하나는 지광국사탑이 서 있었던 법천사지 내 승탑원지의 그 자리에 탑비와 마주 보며 세우는 것, 다른 하나는 법천사지에 건립을 추진 중인 전시관 내에 두는 것이다. 법천사지로 돌아오니 된 것 아니냐, 할 수 있으나 두 가지 안 모두 문화재 보존·관리의 원칙과 그것을 고수하기 힘든 현실 등이 얽혀 있어 어떤 결정이 내려질지가 사뭇 관심거리다.

◆보호각, 법천사지 경관 망치지는 않을까

2016년 석탑 보존처리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6·25 당시 포탄을 맞아 부서진 것을 시멘트로 붙여 복원시켰는데 2015년 정밀진단에서 안정성에 문제가 있다는 결론이 나왔기 때문이다. 3년간 진행된 보존처리작업이 이제 마무리 단계다. 많은 애를 썼으나 완전히 건강한 상태로 되돌리지는 못했다. 석재에 스며든 시멘트 성분을 완전히 제거할 수 없었고, 이것이 수분과 반응하면 박리박락의 원인이 될 수 있다. 가장 화려한 석탑이라는 평가의 근거인 표면의 장식 새김이 사라질 수 있는 치명적 위협이다. 옥개석 등 부재의 균열에 대한 보존방안도 필요하다. 외부환경에 그대로 노출시킬 수 없는 상태인 셈이다. 고민은 여기서 비롯된다.

첫번째 아이디어가 보호각 설치다. 석탑 혹은 석탑과 함께 역시 균열, 박리박락 등의 문제가 있는 탑비를 보호각 안에 두는 것이다. 원래의 위치로 되돌린다는 점에서 문화재 관리의 대원칙인 ‘진정성’의 회복이 큰 장점이다.

그런데 몇 가지 문제가 있다. 일단 보호각을 세울 만한 여유공간이 충분치 않다. 석탑, 탑비의 삼면으로 둘러싸고 있는 건물의 유구가 다칠 위험도 있다. 무엇보다 법천사지의 전체 경관을 망칠 우려가 크다. 계획하고 있는 권역 정비의 결과에 따라 달라질 수는 있겠으나 약 15만㎡의 법천사지는 먼 옛날 법천사를 구성했던 금당, 강당 등의 유구와 주변환경의 어우러짐이 경관의 핵심이다. 오래된 절터가 만들어내는 이런 풍경의 아름다움을 흔히 ‘폐허의 미학’이라 부른다. 이런 풍경 속에 ‘신축 건물’인 보호각이 선다면 그것이 어떻게 지어진다 한들 생뚱맞음을 면하기가 힘든 게 사실이다. 석탑, 탑비가 법천사지에서 가장 주목도가 높다는 점에서 보호각이 더욱 도드라질 것은 자명한 일이다.

원주시역사박물관 박종수 관장은 “보호각을 세운다면 벽체까지 있어야 하는데 시각적으로 볼썽사나워질 수 있다”며 “승탑원지의 공간이 협소한 것은 보호각 설치를 망설이게 하는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고려 문종대 왕사, 국사를 지낸 지광국사를 기린 석탑, 탑비가 나란히 세워졌다. 석탑은 일제강점기인 1910년대 옮겨져 지금은 탑비만 서 있다. 탑비 맞은편 네모나게 정비된 빈자리가 석탑이 서 있던 곳이다. 문화재청 제공

◆전시관으로 이전, ‘본래의 자리가 아니라서…’

다른 하나의 아이디어는 법천사지에 건립을 추진 중인 전시관으로 옮기는 것이다. 탑비도 석탑과 함께 전시관으로 이전하자는 생각이다. 외부환경 접촉에 따른 부작용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보호각 설치에 수반되는 단점들을 배제할 수 있다.

그러나 석탑과 탑비를 원래의 자리에서 이탈시키는 조치이기 때문에 진정성 훼손이 불가피하다는 점이 이전 결정을 망설이게 한다. 이전을 할 경우 그 빈자리를 어떻게 할 것인지도 고민이다. 석탑이야 일제강점기 이후 계속 자리를 비우고 있었다는 점에서 그렇다 치더라도, 탑비는 고려시대에 건립된 이후로 지금의 자리에서 벗어난 적이 없이 법천사지의 상징물로서 기능해 왔기 때문에 빈자리가 더욱 크게 보일 수밖에 없다.

일각에서는 보존이 어렵다고 문화재를 옮겨 실내에 두는 것이 타당한 것인가 하는 시각도 있다. 문화재 역시 시간에 따른 자연스러운 노화, 소멸의 과정에서 예외일 수 없는 만큼 각별한 관심을 갖되 원래의 자리에 처음의 모습대로 두는 것도 고려해볼 만하다는 의견도 있다.

문화재청 박희웅 유형문화재과장은 “석탑을 법천사지에 어떻게 둘지를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건 올해 연말쯤에 가능할 것으로 본다”며 “법천사지의 기후가 석탑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등을 좀 더 검토한 뒤 토론회 등을 통한 여론 수렴 과정을 거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원주=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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