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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약속·정의가 훼손될 때 분노는 정당 / 괜히 하찮은 일에 휘둘려 상처내는 일 없기를…

별일도 아닌 일에 불같이 화를 내다가 때로는 폭력적인 언행을 하는 이들이 있다. 아이라면 충동 조절을 관장하는 뇌의 앞부분 전두엽이 아직 발달되지 않았기 때문이고 알코올, 혈관, 알츠하이머 등의 원인으로 병변이 생겼기 때문일 수도 있다. 자기공명영상(MRI)도 정상이고 치매도 아닌데 충동 조절이 되지 않는 성격 문제도 있다.

 

충동조절장애라는 진단이 있지만 편집증적 피해의식이 있는 망상증, 조현병도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폭력성을 보일 수 있다. 반사회성 인격장애, 경계형 인격장애는 감정적으로는 분노하지 않아도 잔인한 행태를 보여주기도 한다.

 

이런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 정상인도 납득이 되지 않는 지점에서 분노감정에 사로잡혀 해를 끼치는 경우가 있다. 우선 자존심에 손상을 받기 때문일 수 있다. 평소에 불편한 감정을 감추고 있는 콤플렉스와 관련된 부분을 누군가 무심코, 혹은 일부러 건드렸을 때 걷잡을 수 없이 화가 날 수 있다. 흔하게 부모나 자식 욕을 누군가 한다면 상대가 누구이든, 그 내용이 무엇이든 평소 모습과 달리 더 화를 내게 되는 이유다. 가족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대상이기에 그만큼 여러 감정적인 반응이 농축돼 있어 콤플렉스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스스로 평소에 열등하다고 느끼는 자신의 특성에 대해 상대방이 건드린다면 당연히 화가 날 수 있다.

 

이런 개인적인 감정이 아니라 공동체로서 필요한 사회적 약속과 정의를 누군가 부술 때 역시 화가 나는 게 정상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만약 공동체가 무너질 경우, 자신의 안위와 생명도 위협받기 때문에, 직접적인 영향이 없다 하더라도 속한 집단에 위해가 된다면 분노하게 된다. 예컨대 죄 없는 노약자에게 폭력을 휘두를 때 자신이나 가족도 충분히 언젠가는 그런 위치에 있을 수 있고 약자를 괴롭히는 공동체는 결국 소멸하기 때문에 당연히 화가 나야 한다. 일터, 학교, 지역, 동창회, 향우회, 교회·사찰 신도 모임 등과 크게는 국가까지 공동체의 범위는 다양할 수 있다. 누군가 자신이 졸업한 학교를 비롯해 고향, 종교, 국가를 모욕하거나 위해를 끼치려 한다면 당장 눈에 보이는 이해관계가 없다 하더라도 분노하는 게 그 공동체를 끝까지 지키는 동력이 된다.

 

만약 분노 감정이 없다면 나를 해치려는 누군가로부터 생명을 보호할 수 없는 것이고, 아예 국가가 소멸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라가 통째로 타 국가에 넘어가도 냉소적으로 변해 ‘어차피 그게 그거지. 나만 잘살면 되는 거 아니야’ 하고 분노의 감정 대신 자기 보신에만 관심이 많은 국민만 남는다면 결국 그 국가는 소멸되고 말 것이다. 불교든 기독교든 믿음을 지키려 했던 모든 순교자 역시 자신의 종교를 억압하는 세력에 대해 분노했기에 이를 ‘거룩한 분노’라고 명명했을 것이다.

 

덥고 끈끈한 날씨, 답답한 교통체증, 불친절한 기관, 고압적인 상사, 거만한 이웃나라 등 우리같이 평범한 소시민의 분노를 유발하는 요인은 참으로 다양하다. 하지만 적어도 참으로 하찮은 일이나 가치 없는 이들에게 휘둘려 고귀한 분노의 마음까지 훼손시키지는 말자.

 

이나미 서울대병원 교수·정신건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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