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국력 팽창 中 견제 위해 인도·태평양사령부로 확대/ 위기감 느낀 中·러 연합전선 구축, 美에 무력시위 대응/ 볼턴 보좌관 방한 중 무단 진입… 효과 극대화 노림수/ 이번 사태 계기, 한·미·일 안보협 력 강화되면 긍정효과/ 韓, 고래싸움에 새우격… 제대로 대응 않으면 상황 악화/ 韓·日 갈등 속 中·러 변수도… 동북아 외교지형 복잡해져

러시아 군용기의 영공 침입과 중국·러시아 군용기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 무단진입이 또 한 번 동북아 정세를 흔들고 있다.
북한의 비핵화를 둘러싼 남북, 북·미 갈등과 더불어 최근 수출규제 조치 등으로 불거지고 있는 한·일, 미·중 갈등 등 각국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히면서 동북아를 둘러싼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특히 미국의 인도·태평양전략에 맞서 중국과 러시아가 연합전선을 강화하는 행보를 보이면서 한·미·일과 북한을 제외한 중·러 간의 경계선이 더욱 뚜렷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한·일 갈등 속에 부각된 한·미·일 vs 중·러 구도
중국과 러시아의 KADIZ 무단진입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중·러 모두 각국의 항공식별구역(ADIZ)를 인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양국의 반복된 침입은 의도성을 띈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최강 아산정책연구원 부원장은 “중·러의 전략 협력 강화가 최근 더 강화됐다”며 “미국 중심의 세력구도를 그냥 두지 않겠다는 의도가 강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우리 대법원 강제징용 관련 판결을 계기로 부쩍 심화된 한·일 갈등 속에 중·러 변수까지 끼어들면서 동북아 외교지형도는 그만큼 복잡해졌다. 여기에다가 일본은 자국의 국민 정서를 자극하기 쉬운 ‘독도 문제’를 건드렸다. 전문가들은 독도 문제는 꺼내면 꺼내 들수록 양국 집권 당국의 지지도에는 유리한 소재가 되지만, 양국 관계에는 치명타를 안긴다고 조언한다.
한·일 관계가 비교적 원만했던 이명박정부 당시 양국 관계가 크게 엇박자를 낸 계기는 2012년 8월 이명박 전 대통령의 독도 방문이 결정적이었다. 당시 정부는 한·일 정보보호협정(GSOMIA)을 몰래 추진하려다 세계일보의 보도로 협정 체결이 무산되자 이후 확산한 반일 여론을 무마하기 위해 대통령으로는 처음 독도를 방문하는 강수를 뒀다.
한·일 사이의 초계기 갈등에 과거사, 영토 문제 등이 복합적으로 얽히면서 한·미·일 관계에 복잡성이 더해지는 시점에 중·러의 KADIZ 진입은 동북아 외교지형을 안갯속으로 빠트리고 있다. 출구를 찾기가 그만큼 힘들 수 있다는 이야기다.

◆중·러, 미국 인도·태평양전략 견제했나
중·러의 의도적인 행보가 사실이라면 그 연유는 무엇일까. 두 나라가 궁극적으로 바라보는 곳은 미국이라는 분석이 많다. 김열수 한국군사문제연구소 안보전략실장은 “미국의 인도·태평양전략이 개념상으로 존재하다가 지난 6월 미 국방부가 보고서를 발간하면서 본격적인 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했다”며 “전략은 미국이 일본·호주·인도에 이어 한국·필리핀·싱가포르·태국과의 동맹관계 및 네트워크를 강화해 중국을 견제하겠다는 게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은 지난해 5월 하와이에 있는 태평양사령부의 명칭을 71년 만에 인도·태평양사령부로 바꿨다. 태평양 국가들뿐 아니라 인도양 동맹국까지 관계를 돈독히 하기 위한 조치다. 이는 국력이 날로 강해지고 있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포석으로도 분석된다. 이 전략으로 한국과 일본, 인도, 동남아시아 국가들과 군사·경제적 협력을 강화해 중국을 포위하고 해상에서의 중국 확장을 차단하기 위한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필립 데이비드슨 사령관은 당시 취임사에서 “중국은 인도·태평양 지역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안보 동반자로서 미국 대신 선택되려는 희망 속에 규모와 능력 양쪽 모두에서 군비를 계속 개선하고 있다”며 직접 중국을 언급하기도 했다.
이번 중국과 러시아가 연합전선을 구축한 모습을 한반도에 그대로 내보인 것은 인도·태평양 전략을 견제하는 것과 동시에 중·러 연합의 건재함을 과시하는 차원이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방한한 상황에서 이를 내보이면서 효과를 극대화했을 것이라는 추정도 가능하다.
김열수 실장은 이번 중·러의 침입과 관련해 “중국도 러시아와 함께 KADIZ 무단진입으로 미국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라고 밝혔다. 김 실장은 이어 “호르무즈 해협에 있어 연합함대를 구성하는 부분 역시 중·러가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는 부분”이라며 “함대가 구성되면 이란 압박은 물론 중동 전체의 미국의 영향권에 들어가기 때문에 이에 불만을 표시하는 일종의 무력시위 차원으로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합동참모본부 차장을 지낸 신원식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위원은 한국이라는 ‘약한 고리’를 겨냥한 것으로 분석했다. 신 연구위원은 “일단 한국이 무너지면 그만큼 인도·태평양전략이 영향을 받으니까, 중·러가 한국을 약한 고리로 삼은 것으로 보인다”면서 “제대로 대응하지 않는다면 향후에도 이런 일이 빈번해질 것”이라고 짚었다.
익명을 요구한 국책연구기관 한 관계자는 “러시아의 경우 유럽 접경 등에서는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를 상대로 빈번하게 군용기를 이용해 대응태세를 살펴보는 일이 자주 있다”며 “다만 중국과 같이했다는 점이 특이하기는 하지만 이는 중국과 러시아의 협력이 밀도 있게 진행돼 미국을 염두에 둔 비행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중·러 밀착으로 신냉전 현실화되나
이번 중국·러시아 군용기 KADIZ 무단진입을 포함해 동아시아를 둘러싼 강대국들의 갈등이 잇따르면서 한·미·일과 중·러의 경계선이 더욱 명확히 그려질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의견도 있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한·미·일과 중·러의 경계선이 확실히 살아나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과거에는 중·러가 훈련을 각자 했지만, 연합해서 함께 훈련하고 이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양국 간 군사협력이 강화되는 것이고, 대척점에는 한·미·일 안보협력이 있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김열수 실장은 “양 구도는 기존에 있어 온 구도긴 하지만, 갈등이 이어지고 합종연횡이 일어나게 된다면 기존 구조가 짙어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 말했다. 또 “여러 일을 계기로 한·미·일 안보협력이 강화되면 한·일 갈등의 해소 측면이나 중·러 견제 측면에서 상황이 현재보다 더 나을 수도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
신종우 한국국방안보포럼 사무국장은 “아직 한·미·일과 중·러의 대결구도라고 보긴 어렵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미국이 중국은 경제적으로, 러시아는 군사적으로 압박하고 있기 때문에 중·러가 뭉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며 “현재 한·미·일 관계가 매끄럽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좀 더 지켜봐야 할 부분이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은 현재 ‘고래’인 강대국의 싸움에 끼어있는 새우 격이다”며 “외교적인 해결책을 빨리 내놓지 않으면 점점 더 상황이 좋지 않게 될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아직 한·미·일과 중·러의 경계를 가르기에는 상황이 이르다는 전망도 있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는 ‘미국 우선주의’를 내건 트럼프 대통령의 등장이 국제정치의 질서를 바꾸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중국과 러시아가 KADIZ에 진입하는 모습들이나 일본이 보통국가를 추진하고 있는 모습, 북한도 마찬가지로 핵 보유를 정당화하려고 하고 있다는 점으로 충분히 설명된다”며 “오히려 냉전 때는 한·미·일과 북·중·러 등의 구도가 있었겠지만, 지금은 그런 것도 아니고 필요에 따라 단기간에 붙었다 떨어졌다 하고 있는데 한국만 그러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정부 등장 이후 세계 경찰국가인 미국의 역할이 축소되면서 발생한 힘의 공백을 역내 강국들이 파고들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앞으로 한·미·일 구도가 예전처럼 가지 않을 수 있다”며 “미국이 언제까지 우리를 지켜줄 수는 없기 때문에 이러한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외교의 대원칙이 있어야 하며 장기적으로는 우리 외교의 지평을 다변화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이정우·조병욱·홍주형 기자woo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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