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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딴 토마토, 아이들 점심 급식으로… 도시농업의 ‘마법’ [농어촌이 미래다-그린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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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7-26 06:00:00 수정 : 2019-07-25 19:3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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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재배 성공모델’ 日 도쿄 네리마구를 가다 / 시내서 30∼40분… 도내 농지 41% 몰려 / 300년 이상 가업 이어 온 농부들 대다수 / 주택가 곳곳 푸른 밭… 도시 삭막함 없애 / 신선작물 직거래로 농가·소비자 ‘윈윈’ / 지자체는 농업 활성화 위해 세제 혜택 / “키우는 즐거움, 가업 잇는 책임감 느껴”
10년 전부터 처가의 가업을 이어받아 도시농업을 하는 41세의 청년농부 니시가이 노부오씨가 정성스레 재배하는 작물들을 어루만지고 있다.

“식물에는 말을 건네도 답이 없습니다. 매년 같은 일을 반복해서 힘이 들기도 합니다. 그래도 무엇을 만드는 것이 즐겁고 내가 만든 야채를 맛있게 먹어주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도쿄 네리마(練馬)구에서 도시농업을 하는 41세의 청년 농부 니시가이 노부오(西貝伸生)씨가 말했다. 건축업에 종사하던 니시가이씨는 10년 전 장인이 몸을 다치면서 처가의 가업을 물려받았다. 처가는 에도(江戶)시대 이래 대대로 농사를 지어온 농업 장인 가문이다. 니시가이도 처가의 성(姓). 니시가이씨의 ‘다른 사람은 만들지 않은 야채’를 모토로 다품종 소량 재배에 주력하고 있다. 자택 주위의 밭 3곳에서 오이, 토마토, 옥수수, 콩, 배추 등 계절에 따라 연 50∼60종의 작물을 가꾸고 있다. 잘 모르는 것은 주변 베테랑의 조언을 듣거나 유튜브로 공부한다. 갓 딴 싱싱한 야채는 본크라지(Boncourage)와 같은 현지 레스토랑에 공급된다. 재배 농가와 요식(料食) 업자의 윈윈 모델을 만들어가고 있다. 니시가이씨는 도시농업의 장점에 대해 “역시 소비자가 가까이 있어 신선한 작물을 보다 저렴한 가격에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에코팜요시다(Eco Farm Yoshida)를 운영하는 요시다 시게오(吉田 茂雄)씨는 마분(馬糞)을 비료로 이용해 재배한 꿀맛 같은 방울토마토 등을 인근 8개 초등학교의 급식 테이블에 올리고 있다. 요시다씨는 “초등학교 어린이들이 오전 8시30분에 농원에 와 1시간 동안 수확한 과일, 야채를 바로 그날 급식에 올리곤 한다”며 “아이들이 싱싱한 야채를 먹는 모습을 보면 즐겁다”고 말했다. 도시농업이 아니면 이루기 힘든 일이다.

도쿄도(都)는 우리의 서울특별시에 해당하는 광역지방자치단체다. 23구(區)·39시(市)로 구성된다. 23구를 도시 지역, 39시는 교외 지역으로 생각하면 된다. 인구 75만명이 사는 네리마구는 도쿄 도심에서 지하철을 타고 서북쪽으로 30∼40분 정도 떨어진 거리에 있다.

지난 8일 네리마구를 찾았을 때 신선한 경험을 했다. 여고생 몇몇이 등교를 위해 총총 길을 걷는 한적한 주택가. 길을 걷다 모퉁이를 돌면 푸른 밭이 펼쳐진다. 주택가 안의 밭들은 시멘트 위에 세워진 울타리로 구획돼 깔끔한 인상을 준다. 서울에도 강서구 지역에 논이 있지만 농업 지역과 주택지가 완전히 분리돼 있다. 이곳의 특징은 주택가 곳곳에 농작지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이는 다른 나라의 도시농업과도 구별되는 특징이다. 회색 도시의 맨션과 맨션, 마을회관과 초등학교 사이사이의 녹색 풍경은 싱그러운 생명력을 발산한다.

 

도쿄 23구 지역의 농지 526.9㏊(5.269㎢)의 거의 절반에 육박하는 40.9%(215.6㏊)가 네리마구에 있다. 여의도 면적(2.9㎢)보다 약간 작다. 도쿄도 전체 147개 관광농원의 4분의 1 정도인 38곳이 네리마구에 위치해 있다. 도심에서 가까워 시민, 어린이가 가벼운 마음으로 찾을 수 있다.

경작지 주변 주민이 손쉽게 신선한 야채·과일을 살 수 있는 자동판매기. 로커 형식으로 투명창을 통해 눈으로 보고 고른 뒤 동전을 넣으면 원하는 작물을 빼낼 수 있다.

도심 농업의 애로도 있다. 주택가와 밀착해 있어 해충을 죽이는 농약 살포 작업에 신경이 쓰일 수 있다. 니시가이씨는 “농약 작업은 인근 초등학교에 학생들이 있는 시간은 피하고 평소 이웃에게 야채를 나눠 준다”면서 웃었다.

 

땅은 부(富)에 대한 인간의 욕망을 자극하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주택가 사이의 밭을 보면서 택지로 개발할 때의 기회비용이 떠오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밭을 갈아엎어 주택을 세워 당장의 현금을 손에 넣고 싶은 욕구를 억제할 수 있는 법·제도적 장치가 궁금했다. 게즈카 히사시(毛塚久) 네리마구 도시농업과장은 “생산녹지제도로 세금을 크게 절약할 수 있으며 도(都)·구(區) 차원에서도 금융지원 등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생산녹지제도는 23구와 같은 도시 지역에서 최저 30년간 농업을 계속하면 고정자산세·상속세 등 세제상의 혜택을 주는 제도다. 예를 들어 시가(市街) 구역에 있는 택지 1000㎡(평가액 1억엔 가정)에 부과되는 고정자산세는 연 140만엔(약 1400만원)이다. 생산녹지로 농업활동을 하면 고정자산세는 연 7000엔(7만원)에 불과하다. 생산녹지를 상속받아 농사를 계속 지으면 상속세도 유예받을 수 있다.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도 농기계 구매비용 보조금, 하우스 시설 보조금 등 각종 지원책으로 도시농업 활성화를 유도하고 있다.

도시농업이 가능한 배경에는 지원제도와 함께 일본인 특유의 장인정신이 있는 듯하다. 네리마구의 도시농부 대부분이 300년 이상의 가업을 잇고 있었다. “몇 대째 농업을 하고 있느냐”고 물으면 “13대째”, “14대째”라는 등 대부분 십수대째라는 답이 돌아왔다.

 

에도시대 이래로 대대로 농업에 종사하고 있는 아사미 기요시(78)·마키코(46) 부녀가 블루베리 사이에 서 있다.

블루베리를 재배하는 아사미(淺見)농원도 그런 경우다. 농장주 아사미 기요시(淺見喜代司·78)씨의 맏딸 아사미 마키코(淺見眞喜子·46)씨가 에도시대 이래의 가업을 이을 준비를 하고 있다. 마키코씨는 “장녀이어서 아버지를 도와 농사를 짓고 있으며 나중엔 내 세 아들 중 한명이 대를 이을 것”이라며 “농업을 계속하는 것은 가업에 대한 책임감”이라고 말했다.

 

도쿄 네리마=글·사진 김청중 특파원 c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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