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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최고의 고래 그림… 보호받지 못한 국보 ‘반구대 암각화’ [강구열의 문화재 썰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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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7-13 16:00:00 수정 : 2019-07-20 14: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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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구대암각화(1)

지난달 21일 문화재청은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국보 101호)을 원래 있던 곳인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의 법천사지로 이전을 결정했다고 밝혔습니다. 사연이 많은 문화재입니다. 일제강점기인 1911년 원래 자리를 벗어나 일본 오사카, 서울 등을 전전했습니다. 6·25전쟁 중에는 포탄을 맞아 심하게 훼손됐습니다. 어렵게 복원돼 경복궁 내에서 오랜시간을 버텼는데 2015년 정밀검사에서 구조적으로 불안정하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지난 3년 여간 보존처리를 했고, 이제 거의 마무리되어 무려 한 세기만에 귀향이 결정된 겁니다.

 

문화재청은 지광국사탑의 귀향을 두고 마지막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법천사지에 어떤 형태로 두느냐는 겁니다. 하나는 그 자리에 보호각을 세워 복원하는 겁니다. 다른 하나는 법천사지 내에 건립을 추진 중인 전시관 내부에 두는 겁니다. 어떤 결정이 나올 지 모르지만 지금 주목되는 것은 두 방안 모두 지광국사탑을 원래처럼 야외에 노출시키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온전하게 본모습을 되찾아주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보존처리에도 불구하고 외부 노출이 길어질 경우 훼손이 커질 수 있다는 판단에서입니다. 

 

문화재 보호의 원칙이 이렇습니다. 현재의 훼손을 바로잡고, 미래의 훼손 가능성을 최소화해야 합니다. 국보·보물 등 가치가 큰 문화재라면 더욱 치밀한 보호대책을 세우기 마련이죠. 물론 그걸 제대로 하지 못해 비난을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반구대암각화 3D 스캔 화면

지광국사탑의 사례를 접하며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국보 285호)를 떠올렸습니다. ‘최초의 바위그림’, ‘한국 문화예술의 원형’, ‘문화재의 맏형’ 등의 수식이 말해주듯 가치가 막대한 문화재입니다. 오래전부터 세계유산 등재도 추진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대로 된 보호조치를 못받은 시간이 꽤 길었습니다. 지광국사탑처럼 ‘훼손 가능성’마저 배제하는 조치는 커녕 해마다 반복되는 실제적인 훼손조차 차단하지 못했습니다. 1년에 길게는 8개월 정도 물 속에 잠기는데 따른 것인데 요즘같은 장마철이면 걱정이 더욱 커집니다. 해결 방법을 두고 시작된 논란은 2000년대 초반 본격화돼 20년 가까운 시간을 보냈지만 갑론을박만 거듭됐고, 그 사이 반구대암각화의 상태는 악화됐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반구대암각화의 가치와 보존대책을 둘러싼 지금까지의 논란을 보여주는 두 개의 장면을 들여다봅니다. 

 

#“동아시아 선사학에서 초유의 일”-‘크리스마스의 선물’ 

 

반구대암각화를 발견한 문명대 동국대 명예교수

1971년 12월 25일 울산시 울주군의 대곡천. 문명대는 동료 학자들과 배를 띄웠습니다. 앞서 마을 주민들이 여러 번 말해줬던 ‘호랑이 그림’을 확인하러 나선 길이었습니다. 대곡천 변의 바위에 새겨져 있다고 했습니다. 물길을 따라 하류로 내려가던 문명대 일행은 “다른 암면과는 판이한 사람들이 갈은 듯한 암면”을 보았습니다. 크리스마스인 이날, 문명대의 발견은 한반도에 내린 엄청난 선물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사실 그때까지만해도 별 예기치도 않던 선사암벽각화가 천만뜻밖에도 우리의 시야에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그것은 놀랍게도 발가벗고 손을 들고 춤을 추는 나체인(裸體人)과 거북 및 물고기 그림들이었다. 우리 일행은 말할 수 없는 흥분에 한동안 숙연해졌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반구대암각화가 세상에 알려진 순간입니다. 문명대의 흥분이 인용문에 완연합니다. 최초 발견 당시의 상황을 전한 1973년의 글에서 발췌한 겁니다. 같은 글에서 문명대는 반구대암각화와 1970년 그 인근에서 발견된 천전리암각화의 의미를 이렇게 밝혔습니다. 

 

“아마도 선사시대 바위 그림으로서는 우리나라 최초의 발견이고 더구나 시베리아를 제외한 한국, 중국, 일본 등의 극동지방에서는 초유의 일이어서-인도에서는 구석기 내지 신석기 시대의 암벽화가 상당히 조사되었음-적어도 극동의 선사학 내지 한국의 선사학 분야에서는 최대 초점이 될 만한 것이라고 믿는다.”

 

‘최초’, ‘초유’, ‘최대’ 등 최상급의 단어들이 호들갑스러워 보일 수도 있지만 그럴 만 한 일이었습니다. 반구대암각화의 발견은 국내의 암각화 연구를 이끌었고, 지금도 최대의 성과로 꼽힙니다. 호랑이, 사슴, 멧돼지 등 육지동물에다 거북이, 상어 등 바다동물이 암면 곳곳에 새겨져 있고 사람의 형상도 여러 개입니다. 

 

무엇보다 놀라운 건 고래 그림입니다. 가장 많이 새겨져 있고, 종을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 사실적입니다. 고래 그림에 관한 한 반구대암각화는 세계적 최고입니다. 

 

#“우리는 문화재 파괴주의자가 아니다”-울산시장의 분노

 

반구대암각화 전망대에 선 박맹우 전 울산시장

2013년 4월 11일, 반구대암각화 맞은편의 전망대로 가보겠습니다.   

 

문화재청은 이날 중앙 언론사의 문화재 담당기자들을 이곳으로 초청했습니다. 반구대암각화 보존대책을 설명하기 위한 자리였습니다. 담당국장이 반구대암각화의 현황, 보존대책을 설명했습니다. 박맹우 당시 울산시장이 이 자리를 찾았습니다. 마이크를 잡은 그의 표정은 격앙되었고, 말에는 가시가 가득했습니다.   

 

“시종 일관 울산시는 반구대암각화 보존에는 안중에도 없고, 우리는 문화재 파괴주의자인 것처럼, 문화재에는 무식한 사람인 것처럼 말을 하니 섭섭하다.…(사연댐을 대체할) 청정수원 확보없이, 울산 유일의 청정수원인 사연댐이 사실상 폐기된다면 과연 울산시가 이를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박맹우는 반구대암각화 보존대책에 대한 울산시를 입장을 설명하면서 그간 문화재청, 시민단체, 학계와 논쟁을 벌이며 쌓였던 울분(?)을 쏟아냈습니다.  

 

반구대암각화 전경. 그 앞으로 흐르는 대곡천의 수위가 높아지면 물에 잠긴다. 

반구대암각화를 이야기할 때 종종 언급되는 단어가 ‘물고문’입니다. 1년에 길게는 8개월 정도 물에 잠기면서 훼손을 입는 상황을 다소 과장해 설명하는 겁니다. 이는 반구대암각화가 발견되기 전인  1965년 사연댐이 건설되면서 비롯됐습니다. 사연댐에 물을 가두면 그보다 상류에 있는 반구대암각화가 물에 잠기는 겁니다. 물에 잠겼다 빠졌다를 반복하며 암면이 약화되었습니다. 물 속을 흐르는 돌이나 나무 등에 충격을 받기도 합니다.

 

해결책 찾기가 시작됐습니다. 크게 두 가지 대책이 제시됐습니다. 문화재청과 학계, 관련 시민단체 등은 ‘수위조절안’을 주장합니다. 사연댐의 수위를 낮춰 반구대암각화가 침수되는 걸 막자는 겁니다. 수위조절안은 반구대암각화 주변 경과의 보존에 적합한 방식이기도 합니다. 울산시는 사연댐의 수위를 낮출 경우 식수공급에 문제가 있다며, 제방안을 고집했습니다. 인공구조물로 반구대암각화와를 물과 격리하자는 생각입니다. 

 

여기에는 문화재 보존 방식에 대한 시각차, 울산 시민들의 식수 문제 등이 얽혀 접점을 찾기가 쉽지 않아 논쟁만 이어졌습니다. 앞서 말했듯 그사이 반구대암각화의 상태 나빠졌습니다. 

 

최근 문화재청과 울산시가 의견차를 좁히고 함께 보호대책을 모색하고 있다고 합니다. 반가운 소식임에 분명하지만 과거의 경험을 반추해보면 낙관하기만 힘든 게 사실입니다. 양측은 긴 논란에 종지부를 찍고 반구대암각화의 위상에 걸맞는 보호책을 내놓을 수 있을까요?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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