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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시선] 자사고 폐지가 고교정상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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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7-11 21:23:41 수정 : 2019-07-11 21: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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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병폐 ‘덧셈의 접근방법’ 찾아야 / 교육자치 단위학교 수준으로 확대를

전주 상산고, 부산 해운대고, 경기 안산동산고, 그리고 서울 경희고 등 전국적으로 올해 24개 평가대상 중 11개 자율형사립고(자사고)가 지정취소 판정을 받아 교육부의 동의를 얻으면 내년부터 일반고로 전환될 운명이다. 자사고 학부모들은 평가위원의 주관적 판단이 결과를 좌우하는 깜깜이 평가라고 하기도 하고 자사고 죽이기라며 평가는 포장일 뿐이라고도 한다. 다른 시각에서는 자사고가 시대적 소명을 다했다고도 하고 자사고에 더해 외고와 국제고 역시 고교 서열화를 부추기고 사교육, 선행학습과 경쟁을 강조하므로 36개에 달하는 이들 귀족형 고교도 지정을 취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고, 어떤 결정을 해야 할까.

고교 정상화라는 가치는 사실 평준화를 강조하는 좌파나 수월성에 집중하는 우파 양극단의 이념(ideology)과는 관계가 없는 중립적인 지향점이다. 일반고, 자사고, 외고, 국제고, 특성화고 모두 각자에게 기대하는 교육의 질을 담보할 수 있도록 이해관계자 모두가 최선을 다해 진력해 추구해야 할 가치라고 하겠다. 문제는 정상화라는 개념은 현재의 상태가 비정상이라는 전제를 깔고 있으며, 이는 공교육 붕괴·사교육 창궐·과도한 입시경쟁으로 대표되는 우리 고교 교육현장의 병폐를 치유하는 방법론에 대한 생각을 한 방향으로 모으는 것이 무척이나 어렵다는 데 있다.

박정수 이화여대 사회과학대학장 행정학

기본으로 돌아가서 대학이 풀어야 하고, 사회가 풀어야 할 거시적인 차원의 문제를 고등학교 수준에서 해결하려는 발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뺄셈의 방정식이 아니라 덧셈의 접근방법을 찾아야 한다. 2002년 김대중정부에서 획일적인 평준화 교육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다양성에 방점을 두고 자율적 교과과정 운영이 가능한 자립형 사립고교를 허가한 초심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자사고의 뿌리는 지난 30년간 지속된 고교 평준화 정책의 보완책으로 수월성 교육을 할 수 있는 학교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만든 ‘사립고교’다. 당시 정부는 상산고, 민족사관고, 포항제철고, 해운대고, 광양제철고 등 6개교를 자립형사립고로 지정했다. 정부 재정 지원 없이 전국에서 학생을 모집하고 교육과정도 자율적으로 운영하게 했다. 이후 이명박정부는 ‘고교 다양화 정책’을 내세워 자립형사립고를 대폭 늘리면서 자율형사립고로 이름을 바꿨다. 이에 따라 자사고는 2010년 26개교, 이듬해 51개교로 늘어났다. 이후 재정난 등으로 몇 군데가 일반고로 돌아가고, 현재는 42개교가 남아 있다. 현 정부는 이들 모두를 폐지하는 공약을 내세웠다.

그러면 우리는 이제 어떠한 정책 방향을 설정해야 할 것인가. 고등학교 관련 교육부의 권한을 과감히 시도교육청으로 위임해 교육자치를 실시하고 있는 바와 같이 이를 단위학교 수준으로 확대해야 한다. 전국적으로 획일적인 교육과정으로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필요한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인재를 길러내는 것이 쉽지 않다. 다양성과 자율성의 확보가 가능한 자사고를 폐지하기보다 적극적 지도를 통해 본래의 지정 취지를 잘 살릴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입시위주 교육, 서열화의 병폐가 자사고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에서 단순히 대안 없이 자사고를 폐지하는 것은 고교 정상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시도교육청 수준의 실험을 통해 혁신적인 고교학점제를 도입하고, 프로젝트형 수업을 진행하는 등 학령인구가 줄어드는 환경 변화를 교육혁신의 모멘텀으로 활용하는 자세도 필요하다.

사학의 자율성을 강조하는 자사고의 존재는 학생과 학부모의 선택권을 확대하는 정책이다. 모든 사람의 본성이 비교당하거나 평가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혁신과 발전, 경쟁력은 매력을 유지하고 선택받기 위해 노력하는 가운데 창출될 수 있으며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이러한 경쟁력이 더욱 강조돼야 한다. 일반고는 일반고대로, 자사고는 자사고대로 서로의 장점을 살려 학생과 학부모의 선택권을 확대하는 대안이 유지될 수 있도록 교육부의 현명한 판단을 촉구한다.

 

박정수 이화여대 사회과학대학장 행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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