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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아이들 채팅앱으로 유혹… 친밀감 쌓은 뒤 성착취 [심층기획]

입력 : 2019-07-07 21:10:00 수정 : 2019-07-07 21: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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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팅앱 실명인증 안해 접근 쉬워 / 가해자들, 정서·심리적으로 지배 / 2018년 240명 피해… 5년 새 5.3배 ↑ / 상담요청 4명 중 1명이 16세 미만 / 처벌 우려·가해자 협박에 신고 꺼려 / 채팅앱 접촉 땐 피해 입증도 어려워 / ‘아동·청소년법’ 개정안 국회 계류 중 / 전문가들 “아이들, 피해자로만 봐야 / 해외에선 아동 자발성 관계없이 '성착취 명시 / 캐나다도 성매매 용어 없애고 강력 처벌
20대인 A씨는 고등학교 1학년 때 부모님의 잦은 불화와 알코올 중독인 아버지의 학대를 견디지 못해 집을 뛰쳐나왔다. 가출 후 돈이 없어 밥도 먹지 못하고 잘 곳도 없어 공중화장실에서 밤을 새우는 날도 많았다. 돈이 필요했다. 문득 ‘성매매를 하면 돈을 벌 수 있다’고 했던 얘기가 떠올랐고, 그것이 성매매의 첫 시작이었다. 성매수자를 찾는 일은 아주 간단했다. 스마트폰 채팅애플리케이션(채팅앱)에 조건과 금액만 입력하면 가능했다. 성매수자로부터 감금당하고 수차례 맞는 경험을 하며 몸과 마음이 지쳐갔지만 신고할 수 없었다. A씨는 “내가 한 일이 불법으로 처벌받는다고 하니 도저히 도움을 청할 수 없었다”고 했다.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산하 성매매방지중앙지원센터에 A씨가 털어놓은 자신의 경험담이다. A씨는 성매매 혐의로 경찰서에 잡혀간 후 지원센터 도움으로 새 삶을 찾았다.

채팅 앱 등을 통해 아동·청소년을 성매매 등 성범죄로 끌어들이는 ‘부적절한 유혹’이 활개를 치고 있다. 순간적인 판단 실수나 호기심, 의지할 곳이 없는 외로움에 성매매에 발을 들인 아이들은 처벌이나 주변의 시선이 두려워 알선업자나 성매수자의 협박에 반복적인 성매매의 늪에 빠지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매년 성매매로 적발된 아동·청소년 300여명

7일 경찰청에 따르면 성매매로 적발돼 여성가족부에 통보된 아동·청소년은 2013년 45명에서 2016년 241명, 2017년 475명, 지난해 240명으로 급증했다. 최근 3년간 연평균 319명에 달하는 아동이 성매매 범죄에 연루된 셈이다. 지난해 십대여성인권센터에 상담을 요청한 만 18세 이하 청소년 828명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전체 응답자의 약 11.7%(97명)가 성매매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성매매했다고 밝힌 4명 중 1명은 16세 미만이었고, 3명 중 2명은 2회 이상 성매매를 했다고 밝혔다. 최초 성매매 연령은 만15.3세에 불과했다. 십대여성인권센터 관계자는 “사이버 상담을 요청하지 못하거나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등 ‘관리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아이들의 존재를 감안하면 실제 아동·청소년 성매매 현황은 (공식 통계보다) 더욱 심각할 것”이라고 했다.

아동·청소년이 성폭력, 성매매 알선현장으로 유입되는 통로는 채팅앱이다. 채팅앱은 실명인증이 필요 없어 낯선 사람과의 은밀한 대화나 거래가 쉬운 편이다. 최소이용 가능 연령을 18∼20세 이상으로 제시해 두긴 했지만, 실명인증이 없기 때문에 실제로는 이보다 어린 아동·청소년들의 이용 여부를 확인할 길이 없다.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이 지난해 발간한 ‘성매매 피해 청소년 치료·재활사업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참가자 243명 가운데 55.4%(164명)가 성매매 유입 경로가 채팅앱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이라고 답했다.

◆아이들 ‘빈틈’ 노리는 알선업자·성매수자들

성매수자들이나 성매매 알선업자들은 아동·청소년의 한순간의 호기심을 악용하는 경우가 많다. 주로 보호받고 위로받을 곳이 없는 ‘벼랑 끝’에 몰린 아이들이 ‘사냥 대상’이다.

B양은 ‘그루밍 성범죄’ 수법을 쓴 가해자를 믿었다가 성매매에 연루됐다. 그루밍 성범죄란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호감을 얻는 등 정서적, 심리적으로 지배한 후 성폭력 등을 가하는 것을 뜻한다. 지적장애를 갖고 있던 B양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남자친구가 돈을 벌면서 함께 살자고 얘기해 17살 나이에 가출했다. B양은 “남자친구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된다고 해서 어떤 일인지도 모르고 (성매매를) 시작하게 됐다”고 했다.

지원센터에 상담을 요청한 또 다른 피해 청소년 C양은 ‘용돈 12만원을 주겠다’는 말에 성매수자와 만났던 것이 화근이었다. 이 남성은 차 안의 블랙박스 영상을 SNS계정으로 보내 “이거 너 맞지? 나랑 또 안 만나면 네 주변 사람들한테 공개한다”고 협박해 어쩔 수 없이 다시 ‘나쁜 제안’에 응하게 됐다. 남성의 요구 수위는 점차 높아졌고 성매매를 지시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이 같은 아이들이 자신이 본 피해를 신고하지 못하는 이유는 ‘자신도 처벌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현행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아·청법)은 성매매에 유입된 아이들을 ‘피해 아동·청소년’과 ‘대상 아동·청소년’을 구분하고 있다. 자발적으로 성매매한 ‘대상 아동·청소년’은 보호관찰이나 감호위탁, 소년부 송치 대상이 될 수 있다. 문제는 청소년이 채팅앱 등을 통해 성매수자와 1대 1로 접촉할 경우 자발적으로 성매매하지 않았다는 점을 입증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관련 법 개정은 지지부진…“가해자 아닌 피해자 차원에서 접근해야”

시민단체 등을 중심으로 아·청법에서 ‘대상 아동·청소년’ 규정을 삭제해야 한다는 요구가 이어지고 있지만 현재까지 답보상태다.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회가 2017년 6월 아·청법 개정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국회의장에게 제출했지만 법안은 여전히 국회에 계류 중이다.

법무부는 개정안의 취지에 공감한다면서도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법무부는 지난달 해당 조항을 완전히 삭제하는 대신 ‘16살 미만’을 ‘대상 아동·청소년’ 규정에서 제외한다는 방안에 찬성의견을 제시했다.

전문가들은 법 개정을 통한 인식 개선을 통해 성매매 피해 아동들이 굴레를 벗어날 수 있도록 도움을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위기청소년교육기관인 관악늘푸른교육센터의 전수진 센터장은 “(현장에서 보면) 성매매 피해 청소년들이 일차적으로 위험에 노출되는 이유는 단지 유흥비를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폭력, 소외 등에서 도망쳐 나온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하루를 버티기가 힘든 상황 속에서 도움 요청할 곳을 찾지 못하다 나쁜 의도를 가진 어른들에 의해 2차 피해에 노출된 것”이라고 했다. 전 센터장은 이어 “누구도 자신 스스로를 이용해 생계를 이어가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개념만 있다면 이들을 보는 시선이 달라질 수 있다”며 “어려운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위기에 빠졌던 아이들은 다시 자립할 수 없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조진경 십대여성인권센터 대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예방”이라며 “법 개정을 통해 아이들을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로 볼 경우 현재 아이들 뒤에 숨어 처벌받지 않는 가해자들이 처벌받을 두려움에 위축돼 예방효과가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해외선 어떻게 규제하나… 英, 만 13세 미만 성매수 땐 최고 무기징역

 

해외에서는 국내와 달리 아동·청소년이 성매매에 연루되는 것을 자발성 여부와 관계없이 아동·청소년을 학대하는 ‘성 착취’로 판단하고, 이에 대응하기 위한 법적 토대를 마련해 두고 있다.

 

대표적인 국가가 영국이다. 영국은 2000년대 초반부터 ‘아동 성매매’라는 단어를 법 조항에서 삭제하고 ‘아동 착취’라는 단어로 대체했다. 특히 만 18세 미만의 아동의 성을 구매하는 행위를 아동학대로 보고 ‘성범죄법’에 의해 엄중하게 처벌한다. 만 13세 미만 아동의 성적 서비스에 대해 대가를 지불한 행위를 한 성인은 무기징역 이하에 처하며, 16세 미만의 아동을 대상으로 할 경우 14년 이하의 유기징역에 처한다.

캐나다 역시 ‘아동·청소년 성매매’라는 용어를 ‘아동 성 착취’로 변경해 이러한 상황에 놓인 아동·청소년이 성범죄의 피해자라는 인식을 명확히 하고 있다. 캐나다 정부는 2014년 ‘지역사회와 착취 피해자 보호법’을 제정했다. 이 법은 성 구매자와 타인의 성매매를 통해 이득을 얻는 자를 범죄자로 규정하고 형법도 동시에 개정했다. 만 18세 미만인 아동의 성을 구매한 자를 가중처벌하고 성매매로 벌어들인 수익에 의존해 살거나 이를 지원 또는 협박하는 경우도 14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특히 아동이 성매매에 연루된 경우 부모나 보호자의 적절한 보호를 받지 못해 성 착취 및 학대 피해자가 된 것으로 보고 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주거지원 등 서비스를 하고 있다.

 

미국은 18세 미만 아동·청소년 성매매 행위를 국가적 문제로 인지하고 이를 근절하기 위해 2000년 ‘인신매매 및 폭력 피해자 보호법’을 만들었다. 미국 역시 18세 미만의 아동 성매매는 성인 성매매와 달리 종합적이고 특별한 지원을 받아야 하는 ‘온전한 범죄의 피해자’로 다루고 있다. 2010년 일리노이주는 성매매 아동을 보호하기 위한 ‘아동안전법’을 제정하고 ‘청소년 성매매’라는 용어를 형법에서 삭제했다.

 

남혜정 기자 hjna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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