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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우정으로 지은 김홍신문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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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6-24 21:20:34 수정 : 2019-06-24 21: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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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신문학관 전경. 검은색 잉크와 붉은 피 한 방울을 상징하는 둥근 원 두 개가 겹쳐진 로고가 눈에 띈다. 김 작가는 “소설가는 남의 잉크병의 잉크를 찍어 쓰는 사람이 아니다. 내 몸속의 피를 찍어 내 목소리를 낭자하게 남겨두려는 몸부림으로 나 자신을 학대하며 살아왔다”고 했다.

지난 8일 충남 논산에 ‘김홍신문학관’이 정식으로 문을 연다는 소식에 아침 일찍 서울 용산역에서 KTX고속열차에 몸을 실었습니다. 열차는 광명역을 지나면서부터 부쩍 속도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논산역까지는 약 1시간반 정도 걸렸죠. 우선 허기부터 달래려고 시청 인근 사거리 콩나물국밥집에 들어갔습니다. 40년 전통을 자랑한다는 이 집 국물맛은 일품이더군요. 속을 든든하게 채운 뒤 내동초등학교 앞길을 반듯하게 따라가다 보니 왼편으로 아담하면서도 세련된 건축미를 자랑하는 건물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습니다.

김홍신문학관은 그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김홍신 작가의 43년 글쟁이 인생을 들여다볼 수 있는 역사관입니다. 1976년 등단한 이후 한 줄 한 줄 써내려간 육필 원고와 저서 136권을 이곳에서 모두 만나볼 수 있습니다. 문학관 여칠식 감사는 “김 작가 본인도 창고에 보관 중이던 책들을 문학관으로 옮기려고 정리하면서 그렇게 많은 줄 처음 알았다고 한다”면서 “기왕 이렇게 된 거 14권을 더 써서 150권 채우겠다더라”고 전하고는 활짝 웃었습니다.

김홍신 작가의 작품 136편이 문학관의 한쪽 벽면 전체를 장식한 모습.
김홍신 작가가 정계 은퇴 후 문단으로 복귀해 ‘김홍신의 대발해’를 저술하기 위해 참고한 서적들.

문학관은 1210㎡(약 366평) 규모로 상설전시실과 특별전시실 등은 물론 각종 강연을 열 수 있는 교육실까지 알차게 구성됐습니다. 1층 상설전시실이 김 작가를 국내 최초 밀리언셀러 작가로 이름을 날리게 한 ‘인간시장’에 초점을 맞춘다면, 2층 특별전시실은 김 작가의 ‘제2의 작가인생’ 데뷔작 ‘김홍신의 대발해’를 중점적으로 다룹니다. 왜 두 번째 작가인생인지 궁금하시다고요. 대발해는 김 작가가 정치인 생활을 때려치우고 8년 만에 문단으로 돌아와 쓴 첫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작가세계에서 정치인이 되는 건 ‘이단아’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죠. 국회의원 떨어지고 형수님까지 돌아가시면서 심경의 변화를 크게 느껴 정계 은퇴를 선언했던 겁니다. 작가인생을 다시 시작하려면 이 정도의 대작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거죠.” 김 작가와 가깝게 지낸다는 고향 후배의 말입니다. 김 작가가 왜 “내 몸속의 피를 찍어 내 목소리를 낭자하게 남겨두려는 몸부림으로 나 자신을 학대하며 살아왔다”고 했는지 이해가 가는 대목입니다.

문학관 1층 중앙에 자리 잡은 모루. 달궈진 쇠를 두드릴 때 쓰는 받침쇠인 모루는 김 작가의 호이기도 하다. 고 홍문택 신부는 “김홍신은 세상을 떠받치는 버팀목 같은 사람”이라며 이 이름을 지어줬다.
김홍신 작가가 ‘김홍신의 대발해’를 위해 쓴 육필 원고.

김 작가의 눈부신 이력에 비춰 보면 그는 자신만의 문학관을 가질 충분한 자격이 있습니다. 하지만 문학관이 그것만으로 탄생한 건 아닙니다. 김 작가를 늘 마음으로 응원하는 고향 선후배들이 있어서 가능했습니다. 사업가 남상원씨는 선배를 위한 문학관 건립 비용 60억원 전액을 쾌척했습니다. 송영무 전 국방장관도 선배를 위한 문학관 건립추진위원회 위원장직을 맡아 진두지휘했습니다. 또 다른 후배인 조경업자 권갑성씨는 김 작가의 호이기도 한 ‘모루’(대장간에서 쓰는 쇠받침)를 구하기 위해 인천 강화 교동의 골동품 수집상까지 찾아갔다고 하네요. 그는 “당신도 나와 같은 안동 권씨 아니냐”며 매달린 끝에 간신히 사들일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 모루는 지금 문학관 1층 중앙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배민영 사회부 기자

문학관을 뒤로하고 ‘논산 8경’의 하나라는 옥녀봉에 올랐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끝 모를 듯 펼쳐진 논산평야와 햇빛에 반짝이는 금강을 바라보며 문학관 건립을 위해 뜻을 함께한 이들의 한없이 넓고 빛나는 우정을 떠올려보았습니다.

 

배민영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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