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시진핑 “북한의 안보 우려 해소 위해 노력”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20일 평양에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갖고 “한반도 긴장완화를 위한 조치를 취했지만 적극적인 반응을 얻지 못했다”고 밝혔다.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두 차례 만났지만 대북 제재가 해제되지 않은 것에 대한 불만을 시 주석에게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자 시 주석은 김 위원장에게 “한반도 비핵화 실현에 (중국이) 적극적인 역할을 하겠다”고 말했다.
중국 중앙방송(CCTV) 등에 따르면 김 위원장과 시 주석은 이날 오후 단독·확대 정상회담을 잇달아 갖고 한반도 긴장완화를 위해 전략적인 소통을 강화하기로 합의했다. 양 정상은 회담에서 양국 현안은 물론 한반도 비핵화 문제 등을 집중 논의했다.
김 위원장은 “중국과의 소통을 통해 한반도 문제 해결에 나서겠다”고 강조했고 시 주석은 “북한의 안보 우려 해소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화답했다. 김 위원장은 특히 “과거 1년간 한반도 형세 긴장을 피하고 형세를 통제하기 위해 적극적인 조치를 취했지만 관련 당사국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지 못했다. 보고 싶지 않은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인내심을 유지하며 (계속 노력한다면) 한반도 문제 해결에 성과를 낼 것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제3차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기대감을 표한 것이다. 시 주석은 “한반도 문제의 정치적인 해결 프로세스를 지지한다”며 “중국이 한반도 비핵화 실현에 적극적인 역할을 하겠다”고 다짐했다.

앞서 시 주석은 이날 오전 항공편으로 평양에 도착해 1박2일의 국빈 방문 일정을 시작했다. 중국 최고지도자의 방북은 2005년 10월 당시 후진타오(胡錦濤) 주석 이후 14년 만이다.
이날 북·중 정상의 만남은 오는 28·29일 일본 오사카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 기간과 직후 각각 개최될 미·중 정상회담과 한·미 정상회담 등을 앞두고 이뤄져 관심을 끌었다. 시 주석이 김 위원장에게 비핵화 관련 ‘양보안’을 받아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달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날 중국 인민일보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부인 리설주와 함께 평양공항에서 시 주석 부부를 직접 영접했다. 숙청설이 나왔지만 최근 다시 공개활동을 시작한 김영철 노동당 대남담당 부위원장도 시 주석을 영접하는 자리에 등장했다. 딩쉐샹 공산당 중앙판공청 주임, 양제츠 외교담당 정치국원, 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 허리펑 국가발전개혁위원회 주임 등이 시 주석을 수행했다. 시 주석은 김 위원장과 오찬 후 정상회담을 진행했고 만찬에도 참석했다.

▲ “習, 金 메시지 트럼프에 전달 가능성”… 北·美 돌파구 여나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방북 승부수’가 통할지 주목된다. 시 주석은 일본 오사카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를 일주일여 앞두고 방북했다. 북·중 정상회담을 계기로 미·중 무역협상과 북·미 대화 돌파구를 찾는다면 대미 관계의 수세적인 입장을 벗어날 전기가 마련될 수 있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人民日報)는 20일 북·중 관계의 전통적인 우호 관계를 부각하면서 “시 주석 방북이 한반도 문제의 정치적 해결 프로세스와 동북아 평화 안정에 강한 믿음과 긍정적 에너지를 주입했다”고 주장했다.
시 주석 방북이 교착 상태인 북핵 대화에 진전된 내용을 가져올 것을 기대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현재의 복잡한 대외 여건을 감안한다면 시 주석이 방북 성과에 대한 자신감이 없이는 결단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따라서 시 주석이 전격적 방북을 선택한 것은 향후 북·미 대화나 비핵화 프로세스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새로운 메시지를 사전에 언급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이는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북유럽 순방 기간에 김 위원장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에게 보낸 친서를 거론하며 “트럼프 대통령이 발표하지 않은 ‘흥미로운 대목’이 있다는 언급과 맥이 닿아 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의) 아름다운 친서를 받았다”고 언급해 새로운 가능성을 시사했다.

한 베이징 현지 소식통은 이날 세계일보와의 통화에서 “시 주석이 김 위원장의 메시지를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달할 것으로 본다”며 “북 비핵화 문제에서 중국의 협력 의지를 재확인하면서 엉킨 미·중 관계의 실타래를 풀어가려는 의도가 있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중국은 시 주석이 비핵화 문제에서 중요한 진전을 이끌어낸다면 악화일로의 미·중 관계도 어느 정도 안정을 찾을 수 있다고 기대하고 있다. 북핵 문제는 양국 간 거의 유일하게 이해가 일치하는 사안인 데다, 트럼프 대통령 재선 가도에서 긍정적인 요소가 될 수 있어서다.
류용욱 싱가포르 국립대 교수는 AF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시 주석이 북한에 비핵화를 압박하고 트럼프 대통령에게 당근을 제시할 수 있다면 그는 트럼프 대통령의 양보를 얻거나 무역 협상에서 더 잘 합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중국 관영매체가 ‘북한 카드’가 대미 영향력 확대용이라는 분석을 경계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미국을 자극해 상황을 악화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관영 환구시보는 이날 사설에서 “북·중 간 전통적 우호가 장기적 전략 이익과 관련된 것이지 어떤 구체적인 문제를 해결하려고 설계된 것이 아니다”며 “중·조 우호 관계는 실용주의와 기회주의의 산물이 아니라 양국의 ‘선의’와 ‘이성’에 따른 전략적 선택”이라고 주장했다.

▲ “北은 체제 정통성 확보, 中은 대미카드 활용 효과”
‘6월 외교전’의 시작점에서 이뤄지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20일 방북을 놓고 여러 전망이 오가고 있다. 1박 2일의 단기간이지만, 양국 정상회담의 결과가 미칠 파장은 지대할 수 있다. 오는 28∼29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리는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에서 시 주석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만나기 전 포석을 놓기 위한 기획성 방북이라는 측면에서 북한 측과 이해관계가 들어맞지 않는다는 분석도 나왔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큰 틀에서 양국 정상의 회동은 ‘윈윈(win-win)’이라는 평가를 했다.
박원곤 한동대 국제어문학부 교수는 “(북·중) 서로 간 이해가 맞으니 정상회담을 하는 것”이라며 “중국의 입장에서는 미국을 바라보며 북한을 ‘카드’로 이용하는 것이고, 북한은 시 주석이 방북하는 것만 해도 ‘김정은 체제’의 정통성을 확보하는 것이 된다”고 풀이했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도 ‘동상동몽’에 가깝다며 “협력의 방향성은 조금 다를 수 있지만, 북·중 협력 강화 필요성에 공감하는 부분에서는 마음이 맞을 것”이라고 봤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시 주석이 공개적인 장소에서 연설할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다. 그는 “공개적인 장소의 연설은 김 위원장의 권위를 살려줄 수 있다”고 말했다.
북·중 정상회담의 결과가 한반도 비핵화 논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서는 전망이 엇갈린다. 신 센터장은 “북한이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노리고 있지만, 중국은 한반도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희석시키려 할 것”이라며 양국의 시각 차이를 지적했다. 미국을 바라보는 태도의 차이에서 향후 북·미 간 실무회담 성사 가능성이 판가름날 것이라는 분석이다. 홍 실장은 비핵화 논의에 있어 북·중 정상의 만남은 “상징적 의미를 갖는 쪽에 무게가 실릴 것”이라고 봤다. 실질적인 진전까지 이뤄내기에는 역부족이지만, 지난 2월 말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이후 진전이 없는 상황인 북·미 대화의 모멘텀으로는 작용할 것이라는 평가다. 박 교수는 북·미 간 실무회담은 북·중 정상회담보다는 G20에서 이뤄질 미·중 협상의 결과에 따라 달라질 것으로 내다봤다.

북·중 정상의 회동과 관련,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대사관 공사는 지난 19일 일본 마이니치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김 위원장이 시 주석을 통해 새로운 비핵화 협상안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태 전 공사는 이번 북·중 정상회담에 대해 “미·북 협상을 대비하고, 중국의 뒷받침을 얻겠다는 의도”라며 시 주석을 미국과의 중개역할로 세우려는 것이 김 위원장의 생각이라고 봤다. 새로운 비핵화 협상안에는 지금까지와 다른 핵시설 폐기 등이 포함된 양보안이 담길 수 있다고 태 전 공사는 예상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 가도에 뛰어든 이상 외교적 성과를 내야 하기 때문에 김 위원장의 새 제안을 받아들여 3차 북·미 정상회담이 열릴 가능성이 있다고도 말했다.
홍주형 기자, 정선형 기자, 베이징=이우승 특파원 jhh@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