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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독재 OUT"… 고교 동아리 폐쇄 논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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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6-16 13:00:00 수정 : 2019-06-16 13:5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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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세계] 학생들이 ‘학교 규탄’에 나선 이유

담당 교사가 그만두면서 해체 위기에 놓인 서울 한 고등학교의 ‘성(性)평화’ 자율동아리를 두고 교내·외에서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학생들은 “페미니즘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자율적인 동아리 활동을 강탈했다”고 주장하며 연일 집회와 관련 활동에 나서고 있다. 학교 측은 교장 명의로 가정통신문을 보내는 등 진화에 나섰으나 논란은 쉬 사그라들지 않는 모양새다.

 

한국성평화연대와 A고 학생들이 15일 서울 신촌에서 집회를 하고 있다. 한국성평화연대 제공 

◆풍선 퍼레이드·‘학생통신문’… 아이들의 저항

 

16일 서울 관악구 A고교 학생들과 시민단체 한국성평화연대에 따르면 이 학교 성평화 동아리 학생들은 토요일인 이달 8일과 15일 서울지하철 2호선 신촌역 인근에서 ‘성평화 풍선 퍼레이드’ 집회를 열었다. A고 학생들은 집회에서 풍선에 ‘성평화는 남녀의 화합’, ‘기계적인 성평등은 성왜곡’, ‘페미니즘 독재 OUT’ 등을 적어 행인들에게 보여주는 퍼포먼스를 펼쳤다.

 

집회에서는 동아리를 담당했다 그만 둔 B교사와 이 학교 교장과의 대화가 담긴 녹음파일도 재생했다. 학생들은 B교사가 페미니스트라고 주장했다. 녹음파일에는 B교사가 한 동아리 학생에게 “내가 잘못한게 아니야, 알았어?”, “내가 너희들한테 잘못한 게 뭐가 있어? 한 번 물어보자”라고 한 음성이 담겨 있었다. 교장은 “여성이기 때문에 억압당하고 구속당하는게 한 두가지인가?”, “네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페미니즘이 왜 필요한지 알게 될거야”, “그러니까 좀 더 생각을 해보고, 여성들을 좀 더 이해하게 되면 너도 페미니스트가 될 수 밖에 없어” 같은 말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A고 성평화 동아리 학생들이 제작해 뿌린 ‘학생통신문’ 앞면(좌)과 뒷면. 한국성평화연대 제공

동아리 학생들은 가정통신문을 본 딴 ‘6월 학생통신문’을 만들어 다른 학생들에게 뿌리기도 했다. 해당 통신문은 A고의 성평화 동아리 폐쇄 과정을 해학적으로 설명하며 뒷면에는 학생들을 ‘마루타’에 비유하는 포스터를 싣고 있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서명 운동도 했다고 한다. 동아리 회장 최모(18)군은 “다른 아이들에게 부당함을 알리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고교생들은 왜 학교를 상대로 ‘행동’에 나섰나

 

앞서 올해 3월 A고 남녀 학생 6명은 지난해 한국 사회의 ‘뜨거운 감자’였던 페미니즘 문제의 대안을 찾고 남녀의 성평화적 합의를 도출하고자 동아리를 만들었다. 학생들은 남성과 여성에 관련된 책을 읽고 토론을 한 뒤 그 내용을 글로 적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 4월 한 인터넷 여초카페(여성이 주로 이용하는 카페)에 이 동아리의 글 캡쳐 사진과 함께 ‘성평화 동아리 부X떨고 앉아있노 ㅋㅋ’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오고, 국민신문고에 민원이 접수되면서 논란이 시작됐다. B교사는 학생들이 추구하는 성평화가 자신이 생각하는 ‘성평등’과 다르다는 등의 이유로 담당 교사를 그만 뒀다.

 

지난 8일 A고 학생들이 서울 서대문구 신촌에서 집회를 하고 있는 모습. 한국성평화연대 제공

학교 측은 담당 교사 없이는 자율동아리를 운영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는 교육부 지침을 근거로 들며 동아리 폐쇄를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학생들은 “우리 동아리의 글 중에서 어떤 부분이 양성평등의 가치를 훼손했고, 성차별적인지 말해달라”고 했으나 이 학교 교장은 오히려 집회에서 공개된 발언과 함께 강경한 태도로 학생들을 돌려보낸 것으로 전해졌다.

 

◆학교 측 “담당 교사 배정했다”지만 반발 여전

 

학생들이 학교 안팎에서 규탄에 나선 것은 물론, 유튜브와 각종 커뮤니티, SNS 등 온라인 공간에서도 관련 내용이 화제가 되며 비난이 쏟아졌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와 14일 마감된 이 학교 관련 청원에는 3778명이 참여했다. 이 게시글들에 달린 댓글은 B교사와 학교, 페미니즘을 비판하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학생들을 응원한다는 의견도 상당수였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A고 성평화 동아리 해체’ 관련 청원. 국민청원 게시판 캡쳐

논란이 커지자 A고는 지난 11일 학교장 명의의 가정통신문을 통해 “학생 및 외부단체에서 주장하는 것과는 다르게 학교는 양성평등에 대한 학생들의 다양한 시각과 생각들을 존중하고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며 “자율동아리 운영과 관련해 발생된 이견은 학생과 교사가 대화를 통해 해결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해당 동아리를 담당할 새로운 교사를 배정했으며, 학생들의 자유로운 동아리 활동을 이전과 다름없이 지원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또 “학교 내에서 해결해야 할 사안이 외부단체의 개입으로 확산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전하기도 했다.

 

그러나 동아리 학생들은 “사과가 우선”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동아리 회장 최군은 “학교가 보낸 가정통신문 내용은 거짓”이라며 “학교 측이 담당 교사를 배정하려고 시도한 건 맞지만 우리가 제대로 된 사과를 요구하자 사과를 거절하고 담당 교사 배정도 보류한 상태”라고 했다. 그는 “페미니즘만이 정답이라는 생각은 독재정치를 연상케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주영 기자 buen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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