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법은 있으나마나…‘기록이 없는’ 지자체들

관련이슈 디지털기획

입력 : 2019-06-13 06:00:00 수정 : 2019-06-13 00:39:01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지자체 기록원 의무화 10년 넘었지만…17개 시·도 중 2곳만 설치

‘광역시·도 지방자치단체의 장은 조례로 정하는 바에 따라 영구기록물관리기관을 설치·운영하여야 한다.’(공공기록물법 11조 1항)

 

참여정부 시절인 2006년 전국 광역 지방자치단체의 영구기록물관리기관 설치를 의무화한 공공기록물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지역에서 만들어지는 기록은 지역에서 관리해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모든 지역의 기록을 국가기록원에서 관리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지적을 받아들인 결과이기도 하다.

 

그로부터 10년도 더 지났지만 지역의 아카이브(기록원)는 여전히 찾아보기 힘들다. 지자체들이 예산 문제 등을 이유로 난색을 표하고 있어서인데 기록의 중요성을 감안하면 지방정부가 너무 무책임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꾸준하다. ‘후대에 물려줘야 할 지역의 소중한 기록유산들이 과연 제대로 남겨지고 있느냐’는 의구심도 작지 않다.

◆“아카이브가 정체성을 만든다”

 

12일 국가기록원 등에 따르면 17개 광역 지자체 중 기록원을 설치해 운영 중인 곳은 서울과 경남 단 두 곳뿐이다. 지난해 5월 경상남도기록원이 전국에서 처음으로 개원했고, 지난달 15일 서울기록원이 뒤를 이었다.

 

아카이브는 우리에겐 다소 낯선 개념이지만 선진국에서는 박물관, 도서관과 함께 ‘3대 문화유산기관’으로 꼽히며 대단히 중요하게 여겨진다. 영국의 런던과 프랑스의 파리, 미국의 뉴욕 등에선 이미 수십, 수백년 전부터 도시 차원의 아카이브가 구축돼 있고 가까운 일본도 1950년대 후반부터 지역 아카이브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아카이브는 왜 중요할까. 전문가들은 아카이브가 한 사회의 ‘정체성’을 만들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물론 기록이 모여 역사가 된다는 점에서도 그 중요성은 이루말할 수 없다. 기록관리를 민주주의와 연관지어 설명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국민들이 권력기관을 감시하기 위해선 일단 제대로 된 기록이 남아있어야 하는데, 민주주의 수준이 낮을 수록 기록관리가 부실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과거 군사정부 시절 수많은 국가기록이 권력자들에 의해 재단되거나 훼손되곤 했다. 1999년 공공기록물법 제정을 두고 ‘민주주의에 대한 국가의 선언’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이 점을 들어 지자체도 아카이브가 있어야 진정한 의미의 지방자치가 가능하다고 본다. 지방정부가 스스로의 기록(역사)도 관리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제대로 된 ‘자치’가 가능하겠느냐는 것이다. 기록이 지자체 행정의 정당성을 설명하는 ‘증거’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기록원 설립이 시급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현재 기록원을 운영 중인 서울과 경남을 제외하면 각 시·도에 배치된 기록관리요원은 많아야 2명이고 이마저 기록관리만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업무도 도맡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기록관리의 수준과 질적 측면에서 아무래도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는 구조인 셈이다.

 

곽건홍 한남대 교수(사학)는 “지역에서 생산된 기록은 지역에 보존돼야 하는 게 원칙”이라며 “자치분권시대의 지역 기록원은 지방자치의 투명성과 설명 책임성을 높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보존도 벅찬데…활용은 ‘언감생심’

 

‘어제를 통해 미래를 준비하고 오늘을 살아갈 지혜를 얻는다.’ 기록관리의 중요성을 설명하는 말이다. 같은 맥락에서 전문가들은 ‘기록은 활용하기 위해 하는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앞서 참여정부가 지자체의 기록원 설치를 의무화한 것도 결국은 활용에 방점이 찍혀 있다. 하지만 지역의 영구기록물들이 모두 국가기록원으로 이관되는 현행 구조에서는 지역사회를 위한 활용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이는 ‘기록’의 특성 탓이다. 기록이 온전히 남겨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록이 남겨진다고 해서 곧바로 활용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기록은 관리하는 주체가 의식적으로 끄집어내 가치를 부여할 때 비로소 빛을 발한다. 실시간으로 방대한 정보가 생산되는 현대사회에서는 수용자의 입장에서 의미있는 기록들을 선별, 재가공하는 작업이 더욱 중요해졌다. 지금처럼 중앙정부가 지역의 기록을 모두 관리하는 상황에선 쉽지 않은 일이다. 국가 전반의 기록을 취급하는 국가기록원에서 지역의 기록물들은 아무래도 활용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국가기록원 한 관계자는 “지역에 어떤 기록정보가 필요한지는 지역에서 가장 잘 안다”며 “현재는 관련 법이 없어 국가기록원이 보유한 지역의 기록들을 지역에 돌려주려 해도 돌려줄 수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최근 여러 지자체에서 기록원 설립 논의가 본격화한 점은 긍정적이다. 지난 4월 대구시는 대구기록원 건립을 촉구하는 토론회를 개최했다. 대구시는 2022년 완공을 목표로 보존기록물 60만권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의 기록원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대구시 관계자는 “기록이 없으면 역사도 없고 미래도 없다”며 “대구의 숙원사업이었던 기록원 건립을 통해 대구의 역사·문화적 정체성을 확립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국가기록원 관계자는 “대구 외에도 여러 지자체에서 관련한 논의가 시작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17개 시도 모두 스스로의 아카이브를 바탕으로 지역의 정체성을 구축해 갈 수 있도록 계속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이창수 기자 winterock@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리센느 메이 '반가운 손인사'
  • 리센느 메이 '반가운 손인사'
  • 아일릿 이로하 '매력적인 미소'
  • 아일릿 민주 '귀여운 토끼상'
  • 임수향 '시크한 매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