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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시기만 반짝 관리… 치료 골든타임 놓칠 수도 [탐사기획 - 이른둥이 성장 추적 리포트]

입력 : 2019-06-13 09:00:00 수정 : 2019-06-12 22: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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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신생아네트워크’ 추적이 유일 / 서울 등 대도시 대형병원에 국한 데이터도 / 생후 36개월까지로 제한 의료계, 추적·관찰 필요성 입 모아 / 이른둥이들 혈관·대사질환 등 취약 / 생애주기별 꾸준한 관리 이뤄져야 / 구축된 자료들 치료에 활용도 가능 / 의료시스템 구축 ‘청사진’ 제시해야

‘10명 중 1명.’

전문가들은 2025년이면 국내 출생아의 약 10%가 이른둥이(조산아)로 태어날 것으로 본다. 아이를 가급적 적게 낳는 저출산 풍조는 뚜렷한데 이른둥이 숫자는 되레 매년 늘고 있어서다. 당장 6년 뒤면 초등학교 교실 한 곳당 두세 명가량이 질병이나 각종 질환에 취약한 ‘고위험군’에 속하게 되는 셈이다.

12일 세계보건기구(WHO) 권고에 따르면 이른둥이는 어릴 때 생긴 장애가 평생 남을 확률이 만삭아보다 높은 만큼 성장 과정 내내 지속적 관리가 필요하다. 그러나 국내에서 태어난 이른둥이들이 어떻게 자라고 있는지 현재로서 명확히 알기 힘들다. 관련 법률 등이 ‘출생 시’에만 집중돼 있고 ‘출생 후’에 관한 규정은 전무한 탓이다. 자연히 이른둥이들의 생애주기를 감안한 ‘맞춤형’ 지원은 할 수도, 받을 수도 없다. 시기별 발달과 질병에 대한 정보도 제대로 얻기 힘들다.

◆이른둥이 생애주기별 통계 없어… 관련법은 미비

현재 국내 이른둥이에 대한 장기 추적 자료는 전국 70여개 병원이 참여 중인 ‘한국신생아네트워크(KNN)’의 데이터가 거의 유일하다. 극소 저체중아의 현황과 특성, 이들이 주로 앓는 질환과 성장·발달 정보 등이 담겨 있다.

하지만 여기에는 ‘사각지대’가 있다. 소아 전문인력이 상근하는 서울 등 대도시 대형병원이 네트워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데다 데이터 역시 생후 36개월까지의 정보로 제한되기 때문이다. 이른둥이가 병원 진료를 중도에 그만두거나, 월령별로 각종 검사를 받으러 가지 않으면 통계에 ‘구멍’이 나는 구조다.

이와 관련해 의료계와 학계 등에서는 ‘더 장기적인 관점의 추적·관찰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른둥이 증가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면 훗날 국민건강을 증진, 관리하기 위한 필수 자료의 축적을 지금부터 서둘러야 한다는 뜻이다. 적어도 ‘학령기 이전(7∼8세)’까지는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는 데 전문가들 의견이 대체로 일치한다.

김이경 서울대병원 교수(신생아학)는 “이른둥이 중 ‘잘 컸다’ 싶은 애들조차 주의력결핍과다행동장애(ADHD) 같은 증상으로 학교생활에 적응을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고혈압, 관상동맥질환 등 대사질환에도 취약해 생애주기별 검사가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이른둥이들이 만삭아 또래에 비해 지능지수(IQ)가 떨어지거나 사회성 발달이 부족하다는 국내외 연구도 있다.

무엇보다 이른둥이들이 치료의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게 하는 게 중요하다. 이른둥이에게 뇌 손상은 빈번하게 발생하지만 자기공명영상(MRI) 판독만으로는 예측이 어려운 경우가 있다. 아기의 뇌가 생후 24∼36개월에 폭발적으로 성장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정기적·지속적 관찰을 통한 적시 치료는 자칫 평생 남을 수도 있는 장애를 조기에 제거하는 효과가 있다.

김 교수는 “장기 추적 자료는 새로 태어나는 이른둥이의 생명을 구하는 데에도 긍정적 작용을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과거에는 이른둥이 폐질환에 스테로이드제를 많이 썼는데 그로 인해 뇌성마비가 늘었다는 외국 사례가 있다”며 “우리도 국가가 이런 사례를 관리하고 장기적으로 모니터링한다면 어떤 약이 안전한지 알게 되고, 점점 이른둥이의 성장과 발달에 나쁜 영향을 주지 않는 쪽으로 치료 경향이 변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른둥이 인생 ‘청사진’ 그릴 수 있어야”

“다른 이른둥이 언니, 오빠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하죠. 그래야 내년 우리 아이 초등학교 입학에도 대비할 수 있고요.” 1.35㎏으로 태어난 이른둥이이자 뇌병변을 앓는 딸 서혜(6)의 엄마 석현희씨는 “참고할 만한 사례가 없다”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그는 “서혜가 몸이 불편해 치료를 받아야 하는 현실은 변하지 않지만 아이의 성장 단계마다 부모가 어떤 지원을 해줘야 하고, 개입해야 하는지 등을 알고 싶다”고 말한다.

하지만 국내에는 당장 이른둥이 영아의 발달 상태를 예상해볼 수 있는 ‘이른둥이용 표준 발달 곡선’조차 없다. 이른둥이와 만삭아는 체격 조건에 차이가 있으니 운동 발달의 ‘시작점’도 다르다. 대부분 만삭아가 기준인 현행 영유아 발달 검사로는 이른둥이의 정확한 발달 상태를 진단하기 힘들다. 아이의 상태를 파악하기 힘드니 부모로선 당장 치료 계획도 세우지 못하고 막막함만 느끼기 십상이다.

실제로 이른둥이 아이가 충분히 발달하지 않은 근육을 써 잘못된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을 제때 바로잡지 못했다가 성인이 된 이후까지 나쁜 영향을 미친 사례도 있다.

아동운동발달연구회 고주연 교수(대구보건대)는 “근육이 미발달한 상태에서 태어난 이른둥이들은 월령에 맞는 적합한 자세와 움직임을 할 수 있도록 외부의 개입이 필요하다”며 “이른둥이가 의외로 잘 앉고 걷는다며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여기는 부모도 있는데, 직접 살펴보면 엉뚱한 근육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사실상 방치 상태나 다름없는 이른둥이들의 건강과 발달 상황을 주기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의료 시스템 구축을 강조한다. 무엇보다 이른둥이 관련 데이터 확보를 통해 이들이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청사진’을 제시해줘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김기수 대한신생아학회장(서울아산병원 교수)은 “국내 의료 수준이나 정책이 이른둥이의 생명을 살리는 데까지는 왔지만, 퇴원 이후 삶의 질 보장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특별시·광역시 기준으로) 적어도 1개 자치구에 1개 소아재활기관을 설치해 이른둥이와 그 가족의 윤택한 삶을 지원할 수 있도록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출생·치료과정 등 자료 수집 의무화돼야"

 

“이른둥이에 대한 적절한 지원을 위해 꼭 필요한 선행작업이죠.”

 

최근 모자보건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른미래당 신용현(사진) 의원은 12일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른둥이에 대한 장기적 관찰과 분석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이렇게 말했다.

 

신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은 ‘보건복지부 장관이 이른둥이 출생 현황과 장애 및 치료 과정 등에 대한 통계 자료를 지속적으로 수집하고 분석·관리하도록 법적 의무를 부여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른둥이 출산율이 점차 높아지는 만큼 국가가 관련 통계를 체계적으로 관리, 이른둥이의 건강한 성장을 주도하도록 하는 데 방점을 찍었다.

신 의원은 “이른둥이로 태어나 발달이 늦은 아이에 대한 정책이 전혀 없는 것에 놀라 ‘어떻게 지원할까’ 논의하던 중 정책의 ‘뼈대’가 되는 통계나 수치조차 없어 더욱 놀랐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이어 “이른둥이로 태어났어도 인큐베이터만 졸업하면 아무 걱정이 없다고 여기는 이가 많다”며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데도 관련 통계조차 없는 건 국가가 이른둥이의 퇴원 이후에 대해선 관리 대상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뜻”이라고 지적했다.

 

신 의원은 “일단 이른둥이 출산 현황과 시기별 발달 상황 등 통계가 있어야 언제 보조기구를 제공하는 게 적절한지, 어떤 치료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하는지 등 ‘액션 플랜’을 짤 수 있다”며 “이른둥이 증가가 전 세계적 추세인 만큼 우리도 장기적 추적 시스템을 제대로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 의원은 또 “이른둥이 아기가 건강을 잃으면 가족 전체의 삶의 질이 떨어진다”며 “이른둥이에 대해 ‘이 정책만은 꼭 필요하다’는 점을 확실히 하기 위해서라도 이른둥이 관리 통계가 꼭 필요하다고 봤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대부분의 행정제도가 이른둥이의 실제 출생일을 기준으로 삼을 뿐 그들을 배려해주는 제도나 프로그램이 전혀 없다는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무서운 속도로 출산율이 떨어지고 있는 국내 상황에서 이른둥이에 대한 정부 차원의 관리가 필수적이라고 본다.

 

신 의원은 “이른둥이의 건강이 나빠지고, 삶의 질이 떨어지면 그 가족의 만족도도 매우 낮아진다”며 “아기를 많이 낳으라고 장려하는 것도 좋지만 아기 한 명 한 명이 소중한 시대에 이미 태어난 아기들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돌보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 이른둥이 관련 정책을 보다 적극적으로 만들고 관련 예산도 확보하기 위해 당 차원에서 적극 나설 것”이라고 덧붙였다.

 

특별기획취재팀=김태훈·김민순·이창수 기자soo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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