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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열음 “한국 문화계에 필요한 건 다양성" [일문일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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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6-09 20:14:31 수정 : 2019-06-17 20:0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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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오케스트라, 일단 내실이 먼저… 열심히 하려고 생각"
7월말 열리는 음악제 준비에 한창인 손열음 평창대관령음악제 예술감독. 손 감독은 “나이가 들어도 쉬워지는 것 같지는 않다. 음악이 재밌어지긴 한데 무대에 서는 건 더 어려워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제원 기자 

강원도의 여름은 이제 한동안 ‘손열음’과 떼놓을 수 없는 사이가 됐다. 피아니스트 손열음이 지난해부터 평창대관령음악제 예술감독을 맡은 덕분이다. 2004년부터 강효 줄리어드 음대 교수, 정명화·정경화 자매가 이끌어 온 평창음악제를 서른 남짓에 불과한 손 감독이 맡기로 했을 때 음악계는 ‘기대 반, 우려 반’이었다. 이에 손 감독은 지난해 음악제에서 다양한 프로그램 도입을 성공시키고 해외에서 활동하는 젊은 연주자들로 짜인 ‘평창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를 출범시키는 굵직한 성과로 우려를 씻고 평창음악제 앞날에 대한 기대를 키웠다.

 

7월 31일 개막 예정인 올해 평창음악제를 57일 앞둔 지난 4일 손 감독을 서울 광화문 평창음악제 사무실에서 만나 대화를 나눴다. 

 

-최근 평창음악제 사전 기자간담회에서 “올해는 두번째라 처음보다 수월하다”고 했는데 준비는 잘 되고 있는가.

 

“작년엔 정말 처음부터 시작하느라 너무 일이 많았다. 다른 분과 손발을 처음 맞추는 것이라 합을 맞추는 것도 단번에 되지 않고 시간이 걸렸는데 올해는 그런 게 전혀 없다. 서로 일하는 방식을 알고 겨울음악제를 거쳐서 괜찮다. 시간도 작년에는 3월에 일을 시작해서 4, 5, 6월 안에 준비해 7월에 개최해야 해서 힘들었는데 올해는 라인업이 작년 말 쯤에 나오고 프로그램도 올 초에 기본으로 절반은 나와서 시간상으로 여유로운 상태다.”

 

-이전에도 부감독이었는데 감독이 됐다. 역할이 얼마나 바뀌었나?

 

“전에는 사실 제가 딱히 한 일이 없다. 2017년 겨울음악제 프로그래밍을 도와드린 적은 있지만 그 전에는 딱히 한 일 없이 아티스트 케어만 도왔다. 지금은 총괄하니까 사실상 모든 분야에서 신경을 쓰게 된다.”

 

-음악제를 총괄하는 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살펴야하는가. 프로그램을 짜거나 큰 그림만 그리는 정도인 줄 알았는데 상당히 세세한 것까지 다 신경을 써야하는가.

 

“시작하는 단계라서 그런 것 같다. 끝까지 이렇게 할 건 아닌 것 같고…. 2011년부터 제가 아티스트로 왔는데, 2012년 빼고 매년 왔다. 2017년까지 그 기간 아티스트로 오면서, 또 제가 관객으로 보면서 ‘이런 점은 좋다’, ‘이런 점은 이렇게 바뀌면 좋겠다’고 생각한 게 있었으니까. 그런 건 사실 음악적인 내용보다 음악 외적인 것이 더 많았다. 저도 강원도 사람인데 여기가 찾아오기 엄청 수월한 곳은 아니니까 ‘찾아오는 방법’이나 ‘거기(대관령) 가면 음악회 말고 다른 할 게 뭐가 있을까’ 등. 또 제 주변에 강원도민들이 하는 얘기들을 많이 듣게 된다. 이러이러해서 불편한데 이런 점은 좋고 이런 것을 듣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신경 쓰게 됐다. 사실 관객들은 음악회를 들으러 오는 게 맞고, 그게 목적이지만 그분들이 받는 감흥이나 감동은 총체적 경험에서 오는 것이다. 그런 점을 소홀하게 하지 않으려 했다.”

 

-지난해 음악제 끝난 후 페이스북에 올린 소감을 보면 일반에 생소한 음악을 소개하는 데 대한 부담을 적었다. 그런데 올해 프로그램에도 일부러 한 번도 연주 안 됐을 법한 곡을 모아 소개하는 배려를 했다. 관객 반응을 걱정하면서도 생소한 음악을 소개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사실 한국 문화계에서 제일 결여되고 필요한 것 중 하나가 다양성이다. 뭔가 유행하면 다른 것은 신경 안 쓰고 너무 그쪽으로 몰리고 다원화가 잘 안 된다. 평창음악제는 국비사업이기도 해서 수익성에서 비교적 자유롭다. 그에 따른 사명과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다른 곳에서 차마 시도하기 힘든 것도 시도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클래식 음악의 장점이자 강점은 다양성이다. 레퍼토리가 몇백 년 동안 이어져 온 것이니까 그만큼 많이 쌓였고 방대한 레퍼토리 때문에 취향대로 골라 듣고 좋아하는 것을 찾는 재미가 있다. 항상 인기곡만 연주되고 인기 연주자만 되풀이되니까 그런 것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다.”

 

-그래도 다양성 추구에 한계선이 있지 않나. 대중이 받아들이기 힘든 전위적인 것도 있을 텐데 어느 기준에서 결정하는가.

 

“일단 저는 들었을 때 사람들이 힘들어하는 걸 하고 싶지는 않다. 공감대가 생길 수 있고 최소한 이게 왜 연주되고 왜 들어봄 직한지 수준의 당위성은 있는 게 좋다고 생각해서 그 정도가 내 기준점이다. 한편으로 이런 생각도 한다. 클래식 음악이 그렇게 레퍼토리가 많지만 모든 곡이 200년 지나서까지 다 연주돼야 할 가치가 있다고는 생각하지는 않는다. 어떤 곡은 그냥 그 시대의 유행가로 끝날 정도의 곡들도 많다. 그렇지 않고 그래도 지금까지 계속될 만한 시대를 초월할 가치가 있는 것들, 그리고 그 와중에 사람들이 들으면서 공감할 수 있는, 그 정도를 소개하는 걸 추구한다. 이번 음악제에서 열릴 현대음악 쇼케이스는 조금 다른 의미다.  조금 전위적인 음악이고 사람들이 단번에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사람들 피부로 한두 번은 느끼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있다.”

 

-음악제 프로그램은 전적으로 혼자 구상하는가. 아니면 주변의 의견을 구하는가.

 

“의견을 구하는 게 ‘영(0)’은 아니다. (프로그램 구상을)70% 정도 했을 때 정말 완전히 음악적으로 신뢰하는 사람들 2~3명, 한 명은 아예 음악을 모르거나 한 명은 완전 음악가 등 이렇게 서로 다른 사람 두세 명에게 전체적인 구성이 어떤지 물어본다. 이번에는 그 셋 중 한 명이 ‘모르는 곡에 비해 아는 곡 적은 게 아닌가’라고 해서 막판에 유명곡을 몇 개 넣었다.” 

 

-그렇게 마지막에 추가된 게 무엇인가.

 

“8일에 ‘더 클래식’이라는 공연을 하는데 완전 유명한 곡들이다. 그런 것도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음악제는 단순히 사람이 많이 와야 성공이라고 하기도 어렵다. 적은 사람이라도 큰 만족감을 얻고 가면 성공일 수 있다. 음악제 성패에 대한 기준이 있다면 무엇인가.

 

“(성패에 대해선)생각을 안 해봤다. 왜냐하면 진짜 작년에도 너무 좋게 반응해주셔서 좋긴 했는데, 저는 막상 어떻게 느껴야 할지 잘 모르겠더라. 사람들이 좋게 얘기한다고 해도 다 좋은 건 아니고 그렇다고 나쁘게 말한다고 해서 다 나쁜 것도 아니고. 저만의 그게 있을 텐데, 아직은 잘 모르겠다. 연주 같은 경우는 제가 어떻게 하고 나면 아무리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상관없이, ‘아니야, 난 이랬어’이렇게 할 수 있는데 이건 딱히 그런 게 없었던 것 같다. 평만 좋게 난다고 해서 딱히 그렇다고 할 수도 없고. 제가 생각했을 땐…. 작년에 제가 무척 좋았던 건 무대 뒤에서 나오면 관객석, 로비가 바로 있는데 관객분들 많이 만나면 그분들이 “몇 년 전부터 왔고, 초창기부터 왔었는데 올해 너무 좋다”고 말해줬다.” 

 

-무엇이 과거보다 좋아졌다고 하던가.

 

“많은 공연이 ‘우린 이런 거 하니까 와서 들으려면 듣고 말려면 말아라’라는 자세가 있다고 생각한다. 서양은 사실 그렇지만은 않다. 자기들 나라 음악이라 그런지 모르겠는데 게네는 항상 뭔가 다른 시도를 해서 사람들과 간극을 좁히려고 한다. 꼭 가벼운 음악을 하면서 그런 게 아니고 콘텐츠는 유지하되 포장을 친절하게 어떻게든 설명해주려고 하고 사람들이 이해 못하는 것을 그 사람들의 관점에서 생각하려 한다. 우리나라의 공연풍토는 약간 고자세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제가 사실 책(프로그램 북)을 그렇게 열심히 만든 것도 그것을 해소하고 싶었다. 그리고 작년에 프리콘서트 토크라고 해서 공연 전 설명도 하고 아티스트 인터뷰도 하고, 이런 점에서 좀 정성을 좋게 봐주신 게 아닌가 한다.”

 

-지난해 처음 결성된 평창음악제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에 대한 기대가 크다. 지난해 참여 아티스트가 거의 전부 올해도 참여하는 데다 추가 단원도 대폭 보강된다는데 지난해 참여자들끼리 미리 약속을 한건가.  

 

“사실 작년에 그 자리에서 대부분의 사람이 다시 오고 싶다는 뜻을 피력했다. 약속을 미리 받아냈고 일정도 대략 확인해놨다. 무슨 곡을 했으면 좋겠다는 얘기까지 서로 했다. 수석진은 대부분 저랑 친한 분들이어서 개인적으로도 가끔 연락할 정도의 연주자들이다. 다시 모이는 게 수월했다. 우리가 ‘튜티’라고 하는 일반 단원들은 플루트를 하시는 조성현씨(독일 쾰른 필하모닉 종신수석)가 많이 도와주셨다. 그쪽에서 맡아서 알아서 섭외한 경우도 이번에 있었다. 그래서 수월하게 됐다.”

 

-젊은 연주자들 개성이 강한데 지난해 처음 모였을 때 화합이 잘 될 것으로 예상했는가.

 

“저는 사실 벌벌 떨었다. 왜냐하면 안 맞으면 안 되는데 싸울 수도 있고…. 오케스트라는 사실 거의 유치원 같은 집단이다. 음악하는 사람들이 서로 자존심도 강하고 스타일도 다 다르고 공부한 것도 다르고, 환경도 다르니까 무척 유치해질 수 있는 집단이다. 안 맞아서 중간에 ’파투(破鬪)’ 날까봐 겁도 났다. 그런데 곰곰이 보니까 서로 연결돼 있었다. 처음에 그걸 염두에 두고 짜긴 했다. 그냥 잘하는 사람 한 명씩 뽑은 게 아니고 (오케스트라의)기본 틀인 목관 5명을 일단 뽑고 90% 이상 다른 연주자들은 이분들이 불러온 것이다. 금관 쪽도 수석이 나머지 사람을 뽑아왔다. 자기와 잘 맞을 수 있는 사람들로. 그렇게 안 했으면 덜 익숙했을 수 있는데, 본인이 불러온 사람들이니까 무척 호흡이 잘 맞는 사람들이고 딱히 불만을 가질 만한 사람들이 아니어서 잘 맞았던 것 같다.”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스스로도 포부가 큰 듯한데 어떤 목표를 갖고 있는가.

 

“사실 아시아에서는 페스티벌 오케스트라가 원래 삿포로(퍼시픽 뮤직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도 컸고 일본 음악가 오자와 세이지의 ‘사이토 키넨’도 컸다. 그렇게 일본에 페스티벌이 많았는데 지금은 조금씩 문을 닫고 있다. 그 정도로 유럽에까지 유명해질 수 있으면 좋겠다. 대부분 단원이 유럽에서 왔기에 그쪽에서 공연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러나 일단 내실을 다지는 게 먼저라고 생각해서 허황한 꿈을 꾸지는 않는다. 일단 레퍼토리도 많이 해보고 지휘자도 많이 거쳐보고 연주실력이 우리 스스로 증명되고 납득될 수 있을 때까지 열심히 하려고 생각 중이다.”

 

-“계속 잘해서 악단을 키워보자”는 일종의 공감대가 있는건가.

 

“그렇다. 근데 일본 쪽은 먼저 한번 가고 싶어하는 것 같다. 워낙 오케스트라 강국이기도 하니….”

 

-일본에 가서 먼저 한번 우리 실력을 보여주자는건가.

 

“그렇다. 많이 하고 싶어 한다.”

 

-이전 인터뷰에서 “음악제 많은 유럽에선 연주자들이 자신의 고향 음악제에 감독을 맡는 게 보통”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고향인 원주와 강원도에 대한 애정이 있다고 하더라도 여름, 겨울 음악제에 ‘강원도의 사계’라는 연중 프로그램까지 예술감독을 도맡아하는게 연주자로서 너무 큰 헌신인데 왜 그렇게까지 정성을 들이는가. 

 

“사실 저도 여름에 하나만 (음악제가)있으면 훨씬 좋을 것 같다. 여름, 겨울 연속으로 음악제 감독을 맡는 건 연주자가 ‘사이드잡’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금 현재로는 그렇긴 하다. 좀 체계가 잡힌 후 제가 프로그램 정도만 할 수 있을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사실 이렇게 할 수밖에 없는 건 구조상 원인이 제일 크다. 왜냐면 음악제가 2018년 이전까지 여름에만 해왔는데 연중 상설화에 대한 강원도 지역사회 반발이 컸다. 그래선 음악제 발전을 기대하기 힘들다. 지난해부터 겨울음악제가 생기면서 음악제가 좀 나아지는 상황에 있다. 연중 프로그램은 운영하는 재단입장에선 사실 피로하다. 그러나 지역민을 위해서는 꼭 필요한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강원도 음악 인프라를 키우는 데 꼭 필요한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평창음악제가 원래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한시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보니 올림픽 이후에도 지속가능한 생명력을 지닌 음악제로 만들어놔야 한다는 사명감에 을 가지고 있는 것인가.

 

“그렇다. 이게 완벽히 체계 잡히기 전까지는 누구라도 딴지 걸 수 있기 때문에….” 

 

-지난해 예술감독직을 수락할 때부터 이런 임무를 부여받았던건가.

 

“그렇진 않았던 것 같다. 처음엔 그냥 음악제를, 일회성 축제를 한번 잘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와서 지내다 보니까…. 여름 음악제는 사실 탄탄하다. 강원문화재단에서 여러 사업을 하는데 그중 10% 이상의 비중을 차지한다. 강원도 입장에서도 효자상품이기도 하다. 저희가 그렇게 내세울 수 있지만, 그렇다고 그게 모든 걸 다 설명해주지는 않는다. 명분을 정말 200~300%씩 만들어놔야….”

 

-독주자는 외로운 직업인데 예술감독은 여러 다양한 사람과 같이 일해야 한다. 서로 다른 성격의 일을 하는 데서 생기는 장단점이나 재미가 있나.

 

“그렇다. 이거(예술감독)하다 보면 피아노도 재밌기도 하고. 연주를 다니는 것은 사실 진짜 혼자 하는 일이다. 완전 자연인으로 돌아가는 과정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스스로와 마주하는 작업이다. 오케스트라와 함께 할 때도 있지만 솔로를 하면 진짜 홀로 된 작업이다. 그게 너무 재밌기도 한데 고독한 감정이 당연히 든다. 이건 다 같이 손발 맞추는 작업이니까 그런 게 전혀 없고 같이 하니까 보람도 크다. 피아노 혼자 연주하는 일은 보람있는 건 아니다. 희열은 있을 수 있어도 성취감이 있다거나 하지는 않다.”

 

-연주를 끝내면 당연히 성취감이 생기지 않나.

 

“잘 못 했을 수도 있으니까. 하하. 마음에 안 드는 경우가 사실 더 많고 연주는 ‘이만큼 했다’고 꼭 그렇게 나오는 것 아니다. 이만큼 했는데 더 안 될 수도 있다. 결과와 과정이 딱 맞는 행위는 아니라고 본다. 이거(같이 하는 것)는 이만큼을 하면 이만큼의 티가 나고, 그런 게 보완이 되니까 지금까지는 잘되지 않았나 싶다.” 

 

-연주자로서의 생활과 예술감독으로서의 조직생활과 서로 보완이 된다는건가.

 

“네. 저는 사실 원래 무척 외톨이 스타일이다. 사람 자체로 봤을 때는…. 전혀 사람도 안 만나고 사회활동도 전혀 안 하고….” 

 

-공식행사 등에서 보면 외향적인 성격으로 보인다.

 

“전혀 아니다. 만약 한 달 정도 혼자 시간 있으면 저는 2~3명도 안 만난다. 어쨌든 그런 사람이니까 또 예술감독 일을 오히려 활달하게 할 수 있는 것 같다.”

 

-내향적인 사람이 외향적인 일을 하면 에너지가 많이 필요할 텐데 그러한가.

 

“많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만큼 재미도 있긴 하다.”

 

-일과는 어떻게 되나.

 

“이틀, 삼일 연속으로 똑같이 사는 날이 없다. 너무 다 다르다. 예를 들어 어제는 제가 강원도 갔다 왔다. 아침에 출발해서 강릉에 가서 강원예고에서 마스터클래스를 했고 끝나고는 ‘찾아가는 음악회’ 장소 확인을 위해서 삼척, 태백, 정선을 갔다가 원주 집에 가서 잤다. 그런 날도 있고 그 전날 일요일은 아무것도 안 했다. 하하.”

 

-연습 시간은 어떻게 확보하나?

 

“연습은 규칙적으로 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어렸을 때는 그랬지만, 초등학교 때부터 중학교까지는 하루도 안 빠지고 규칙적으로 했다. 대학교부터는 하고 싶을 때 했다. 연습에 집착해서 매일 2~3시간씩 꼭 해야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피아노는 연습하고 싶어도 못할 때 많다. 피아노는 악기가 없으면 못 하니까. 그렇게 집착해서 연습하기 싫어서 규칙적으로 해오진 않았는데, 요즘에는 그렇게 하는 게 더 편하다는 걸 느껴서 하루에 한 시간 정도는 하려고 한다.”

 

-영국 런던에서 열리는 클래식 페스티벌 BBC프롬스에 올해 연주자로 초청받아 가는데 음악제 예술감독으로서도 어떤 걸 보고 올 것인가.

 

“진행방식이 궁금하기도 하고 프롬스는 콘서트홀이 특이하다. 지구상 클래식 홀 중 가장 크다. 7000여석이니까 체육관을 빼면 제일 크다. 프롬스는 음악을 모르는 사람도 아무 생각 없이 와서 볼 수 있는 페스티벌인데 그런 곳은 저도 많이 안 가봤다. 보통은 음악에 관심 있는 이들이 오는 페스티벌에 많이 간다. 분위기가 무척 궁금하다.”

 

-10대는 영재 연주자였고  20대는 수상 실적을 쌓은 음악가로 성장했고 30대는 다양한 활동으로 영역을 넓혔다. 30대가 되면서 이전과 음악 생활이 달라진 점이 있나.

 

“계획하며 살아오지는 않았다. 운이 좋아서 하나씩 잘 펼쳐진 것이었다. 의도한 것도 아니었고 예술감독을 하게 된 것도 운이 좋게도 저에게 맡겨주셔서 하게 된 것이다. 20대 때는 좀 힘들었다. 20대 때는 유럽에 있으면서 유럽에서 계속 활동하고 싶은데 그 시장은 제가 없어도 너무 상관없는 시장이다 보니까, 저는 동양인이고 여자고 어리다 보니까…. 특히 피아노는 아주 어린 신동, 아니면 나이 많은 대가, 둘로 확 (선호 연주자가)갈려서 중간인 20~30대가 고비라고 생각했다. 그때 그 시장을 뚫기가 힘들어서 ‘하지 말아야 하나’ 고민도 한창 했다. ‘뭘 해야 하지’ 이런 생각도 하고 어떻게 하면 될지도 생각했다. (30대 까지)계속 하다 보니까 그래도 시간이 해결해주는 것이 있다. 그런 게 많이 생겨서, 행운이 많았고. 그래서 많이 해결됐다. 좋은 매니저도 찾고 하나씩 길도 열렸다. 그다음부터는 주어진 대로 감사하면서 특별한 고민 없이 하고 있다.”

 

-연주는 나이가 들수록 더 원숙해지면서 쉬워지는 건가.

 

“쉬워지는 것 같지는 않다. 음악은 재밌어지긴 한데 무대에 서는 건 더 어려워지는 것 같다.”

 

-이전 인터뷰에선 무대에 서는 걸 즐긴다고 말했던데 그런데도 어려운가.

 

“다른 사람들은 너무(무대에 서는 게 힘들어) 죽으려 하는 이도 있는데 저는 그 수준은 아니다. ‘저렇게 떨 거면 안 하고 만다. 나는 인생 저렇게 안 살고 싶다’고 생각할 만큼 공연 전에 떠는 분도 있다. 전 그렇지는 않다. 스스로 생각해보면 스트레스 많이 받는 편도 아니고 낙천적인 스타일인데 그래도 무대 올라갈 때는 스트레스를  확 받는다. 그리고 나이 들수록 점점, 어릴 땐 ‘(연주가)잘 되면 땡큐고 아니면 말지’라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점점 더 애착도 생기고 그러니까 거기서 점점 스트레스 쌓인다. 갈수록 남들이 뭐라고 하는 것보다는 내 맘에 들게 (연주)하고 싶은데…. 귀는 사실 (수준이) 계속 높아진다. 그러니까 점점 더 이렇게 되는(기준 높아지는) 느낌도 있다.”

 

-수년 전에 예스엠아트(YES M & ART)라는 기획사를 차린걸로 보도됐는데 계속 운영 중인가.

 

“제가 운영하는 것은 아니다. 차린 것도 아니다. 지인이 차려보자고 하셨다. 제 이름을 따서 '예스'로 만들긴 했다. 저는 그냥 소속 아티스트다.”

 

-초등학생시절부터 혼자 비행기타고 콩쿠르에 참여하는 등 스스로 길을 개척해왔는데 힘들지 않았나.

 

“그냥 그래야 되는 줄 알았다. 원래 징징대는 것 안 좋아하고 일단 잘 몰라서 개념이 없었다. 만약 제가 서울에서 살았고 자랐으면 달랐을 수도 있다. 서울 애들은 다 엄마가 따라다니고 그러지 않나. 그걸 보면서 ‘우리 엄마는 왜 안 따라다니지’ 했으면 나도 달랐을 수 있는데 그렇지 않았다. 전 그게 당연한 줄 알았다.”

 

-서울 애들한테 기죽지는 않았는가.

 

“하하. 기 많이 죽어 있었다. 어렸을 때는 제가 되게 못하는 줄 알았고 그때 국내에서 하는 대회도 많이 떨어졌다. 사실 제가 재능이 있는지도 몰랐고 서울 애들이 부럽기도 했다. 그런데 처음에 나갔던 국제콩쿠르가 차이콥스키 어린이 콩쿠르이다. 거기서 상을 초등학교 5학년 때 탔는데 제가 볼 때는 뜬금없이 탄 거였다. 그 전에는 국내에서 유명한 애도 아니었다. 그 상을 갑자기 타고 서울에서 연주도 하게 됐다. 그래도 무대에 서는 것 좋아했고 음악도 좋고 결정적으로 다른 거 할 자신도 없고. 그래서 (음악을)계속했다.  공부는 하기 싫었다. 제가 잘하는 과목도 있었다. 국어, 사회, 외국어는 잘했다. 산수는 초등학교 1학년부터 못했다. 너무 하기 싫었다.”

 

-롤 모델이나 멘토는 누구인가. 

 

“ ‘마르크 앙드레 아믈랭’이란 피아니스트가 있다. 그 사람 행보가 존경스럽다. ‘이 사람 말고는 아무도 못하겠다’ 그런 자기만의 길을 개척한다. 대체될 수 없는 존재로서 자기 예술을 성장시켰다. 그런 점이 존경스럽고 따라하고 싶은데 음악적으로 좋아하지는 않는다. 하노버의 피아노 은사인 아리에 발든 선생님하고는 1년에 네다섯 번 이상은 본다. 친구로서 잘 지낸다. 친구로 대화하고 새로 읽은 책 얘기, 새로 본 영화 얘기, 새로 만난 사람 얘기, 장소 얘기 등을 한다.”

 

-책 많이 읽기로도 유명한데 요즘은 무슨 책 읽나.

 

“많이 읽진 않는데 현재 읽고 있는 책은 ‘1913년 세기의 여름’이다. 독일 기자가 쓴 책이다. 세미픽션이다. 1913년에 엄청난 사람들이 많잖아요. 그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 정치가, 사상가, 예술가 다 나오는 책. 그 사람들이 얽히고설킨 얘기다.”

 

-휴식할 때나 여가는 어떻게 보내는가.

 

“진짜 별거 안 한다. 그냥…. 여행은 종종 간다. 제가 특히 일하면서 여행 피로가 많다. 일이 여행이라 그 피로를 풀러 또 놀러 간다. 주로 바다나 산이 있는 곳에 쉬러간다. 그냥 풍경 있는 곳에서 가만히 있는다.”

 

-다른 음악가 연주를 들으러 가는 편인가.

 

“엄청 좋아한다. 다른 장르도 좋아한다. 원래는 많이 보러 다녔는데 요 몇 년은 공연장에 잘 못 갔다, 시간이 없어서. 원래는 공연이라면 전부 다 좋아한다. 어렸을 때는 오페라도 좋아하고 뮤지컬도 한창 많이 봤었다. 록음악도 좋아했다.”

 

-어떤 록음악을 좋아했나.

 

“한창 70~80년대 미국 록이다. 이글스, 도어스. 그레이트풀데드를 특히 좋아했다.” 

 

-다른 피아니스트 공연 관람도 좋아하는가.

 

“그렇다. 엄청 좋아한다.  사실 피아니스트 입장에서 듣지는 않는 것 같다. 그냥 음악 애호가로서 듣는다. 나의 피아니스트로서의 그거(실력)에 도움이 되게 들으려 하지 않고 그냥 음악을 좋아하니까 듣는다.”

 

박성준 기자 alex@segye.com. 정리 박유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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