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커피찌꺼기, 잘 쓰면 금쪽같은 자원 [연중기획 - 지구의 미래]

관련이슈 지구의 미래

입력 : 2019-06-07 06:00:00 수정 : 2019-06-06 21:36:42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친환경퇴비 등 재활용법 무궁무진 / 사용된 원두 99.8% 그냥 버려져 / 작년 커피 수입 15만t… 5년새 38%↑ / 찌꺼기는 생활폐기물… 매립·소각해야 / 지자체 처리비용 t당 8만∼10만원 달해 / 서울 7개구, 찌꺼기 수거·재활용 참여 / 축산농가에 보내 수분조절제·퇴비로 / 등산로 바닥재·나무 심는 상자 제작도 / 자원화할 수 있는 좋은 성분 많지만 / 수거체계 없어 대부분 그냥 버려져 / “일회용컵 수거와 묶어 관리 나서야”

오늘도 습관처럼 식후에는 커피입니다. 달려드는 식곤증에 속절없이 감기는 눈을 들어올리려면 커피의 힘을 빌려야죠. 환경을 생각하는 의식 있는 사람답게 텀블러를 내밉니다. 어쩐지 으쓱하는 기분이 듭니다. 지난해 폐기물 대란 이후 플라스틱컵 사용의 심각성을 모르는 사람은 이제 없을 테니까요.

 

그런데 커피, 과연 플라스틱컵만 문제일까요?

 

지난해 우리나라 커피 수입량은 15만t을 웃돌았습니다. 5년 전에 비해 38.5%나 늘어난 양입니다.

 

1g의 원두에서 우리가 마시는 커피는 0.002g. 나머지 0.998g은 커피찌꺼기로 버려집니다. 커피찌꺼기 발생량에 관한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몇 년 전 환경부가 2014년 수입량을 기준으로 추정한 양이 10만3000t이었던 걸 감안하면 지금은 11만∼12만t에 이를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나라 폐기물법상 커피찌꺼기는 생활폐기물과 함께 버려집니다. 일반 쓰레기와 함께 종량제봉투에 담겨 매립·소각되는 것이죠.

 

문제는 커피찌꺼기가 사용하기에 따라 금쪽 같은 자원이 되기도 한다는 겁니다.

 

◆축사에 커피향이?

지난달 26일 찾은 충남 청양군의 한 한우농장에는 소똥냄새 대신 커피향이 풍겨왔습니다.

뭐, 정말 커피를 내릴 때처럼 모카번을 떠올리게 하는 향긋한 냄새는 아니었지만, 축사 특유의 악취는 분명 아니었습니다.

한우농장이 뜬금없는 커피향으로 가득한 건 톱밥 대신 깔린 커피찌꺼기 때문입니다. 서울에서 실어온 것이죠. 만약 종로, 동작, 구로, 송파, 강동, 용산, 중구에 있는 커피전문점에서 커피를 주문하셨다면, 그때 쓰고 버려진 커피가 여기 어딘가에 깔려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이 농장에 사는 한우 400마리는 커피 위에서 먹고, 자고, 볼일을 봅니다.

약 45일마다 커피찌꺼기를 갈아주는데 새로 깐 찌꺼기일수록 색이 짙습니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수분조절제로서 역할을 다한 찌꺼기는 농장 한쪽에서 숙성과정을 거칩니다. 별도의 장비가 필요한 건 아니고, 한 달 보름간 축분을 실컷 받았으니 가만히 놔둬도 뜨끈뜨끈 열감이 느껴질 정도로 저절로 발효가 됩니다. 톱밥 대용 찌꺼기에서 퇴비로 변신하는 거죠.

이 퇴비는 퇴비공장이나 인근 농가가 가져가는데 축사를 싫어하는 농부들도 퇴비만큼은 앞다퉈 가져간다고 하네요. 커피찌꺼기를 회수하고 퇴비로 보내는 과정은 전부 무상으로 이뤄집니다.

농장을 운영하는 정진원 대표도 축사 바로 옆에 있는 가족 논에 커피 퇴비를 뿌렸습니다. 여기서 수확하고 남은 볏짚은 다시 소의 여물이 됩니다. ‘수분조절제→퇴비→여물→축분→수분조절제→…’ 이런 식으로 선순환하는 구조가 만들어진 것이죠.

이종진 송파구청 자원순환과 재활용사업팀장은 커피찌꺼기 재활용이 ‘일석삼조, 일석사조’의 효과가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 관내 558개 커피전문점 중에 345곳이 이 사업에 참여하는데 업소당 하루 평균 3㎏의 커피찌꺼기가 나옵니다. 큰 매장에서는 20∼30㎏씩 나오기도 하고요. 원래대로라면 t당 8만∼10만원을 들여 소각하거나 매립해야 하는데 이런 처리비용이 안 들죠. 매장 입장에서는 종량제봉투를 그만큼 덜 써서 좋고요. 또 수분조절제로 쓰고 난 뒤에는 퇴비로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니까 환경에도 좋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정 대표가 처음부터 환경을 생각해서 이 일을 시작한 건 아닙니다.

“축사가 있으면 냄새 난다고 민원이 많이 들어오거든요. 그런데 커피찌꺼기가 탈취효과가 있다고 하잖아요? 혹시 톱밥 대신 찌꺼기를 써보면 어떨까 싶었죠.”

서울시는 그의 제안을 받아들여 커피찌꺼기 수거에 참여할 자치구를 모집했고, 첫해인 지난해에는 송파구 등 5개 구가, 올해는 7개구가 참여하고 있습니다.

◆활용도 높지만 수거체계가 발목

이 밖에도 커피찌꺼기를 활용하는 사례는 많습니다. 커피전문점 중에서는 스타벅스가 대표적입니다.

스타벅스에서 톨 사이즈 아메리카노 한 잔을 만들 때마다 14g의 원두가 한 번 쓰고 버려집니다. 스타벅스는 커피찌꺼기가 선순환될 수 있도록 2015년과 2016년 각각 경기도, 환경부와 협약을 맺고 전국 매장에서 발생한 커피찌꺼기를 전문 업체를 통해 회수해 퇴비로 만들고 있습니다.

2014년 4%였던 커피찌꺼기 재활용률은 2016년 77%, 지난해 97%에 이릅니다. 거의 전량 퇴비화되는 것이죠.

이 퇴비는 평택, 이천, 보성, 하동, 제주도 농가에 제공되고, 여기서 재배한 농산물은 스타벅스 매장에서 판매되는 다양한 푸드상품의 재료로 다시 사용됩니다.

환경재단도 지난해 말 현대제철, 한국생산성본부와 함께 커피박 재자원화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당선작 중에는 상품화를 눈앞에 둔 것도 있었는데요, ㈜동하가 만든 커피박(커피찌꺼기) 바닥재도 그중 하나입니다.

 

등산로나 자전거도로에 깔린 데크는 합성목재로 만들어진 게 많습니다. 합성목재는 폐목재 분말과 플라스틱을 섞어 만드는데, 커피박 바닥재는 폐목재 대신 커피박을 쓰는 겁니다.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는 폐목재 분말을 대체할 수 있고, 나무를 베지 않아 탄소배출량 감소에 일조할 수도 있습니다. 또 사용 후에는 전량 다시 가루로 만들어 재활용할 수도 있고요.

식생모듈을 만들기도 합니다. 식생모듈은 공원이나 대로에 세워진 커다란 나무심는 상자를 말합니다. 커피찌꺼기로 만든 모듈은 강도도 강하고, 원래 찌꺼기의 색깔이 진하기 때문에 나무 느낌을 내려고 일부러 색을 칠할 필요도 없습니다.

커피를 내리면 위에 얇은 기름막이 뜰 때가 있죠? 커피찌꺼기에도 기름 성분이 많습니다. 그러니 화력 좋은 고형연료(펠릿)를 만들 수도 있습니다. 보통 수입산 나무로 만든 우드펠릿은 ㎏당 3500㎉, 국내산 우드펠릿은 4000㎉을 내는데, 커피찌꺼기는 4500∼5000㎉의 열을 낸다고 하네요.

 

자, 그럼 이쯤에서 의문이 듭니다. 아니 커피찌꺼기가 이렇게 쓸모가 많으면 왜 그냥 버리는 거지?

그 이유는 수거체계가 없기 때문입니다. 매장마다 돌며 커피찌꺼기를 회수하는 것도 돈이 들기 때문에 누가 얼마큼 비용을 지불할지 버리는 쪽과 수거하는 쪽의 이해관계가 맞아야 하는데 현재는 그렇지 못하죠. 청양 한우농장에 보내는 커피는 기존 자치구와 계약한 폐기물 수거업체가 ‘곁다리’로 찌꺼기를 가져오고 있습니다. 스타벅스는 스스로 비용을 부담하고요. 점포 수나 판매량이 많지 않은 커피숍의 경우 굳이 커피찌꺼기를 위해 추가 비용을 들이기 부담스러운 입장이겠죠.

하지만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도 대형 프랜차이즈는 매장에서 사용된 일회용컵을 수거하는 시스템이 구축돼 있으니 이를 활용할 수 있죠.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은 “커피찌꺼기만 갖고는 사업모델이 안 나온다”며 “1년 전부터 매장 내 일회용컵 사용 단속이 강화돼 기존 수거업체들이 (수거량이 적어)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커피찌꺼기와 묶어 수거 체계를 만들면 된다”고 말합니다. 이어 “일회용컵뿐 아니라 찌꺼기도 재활용 시스템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커피박 식생모듈을 개발한 이호철 포이엔 대표도 비슷한 말을 합니다.

“커피를 내리고 나면 자원화할 수 있는 좋은 성분이 찌꺼기에 많이 남아 있는데 그대로 버려지는 게 너무 아까워요. 비료나 합성목재 대용품 등 활용될 곳이 굉장히 많은데 제도적으로 재활용을 좀 뒷받침해주면 좋을 것 같아요.”

쓰레기와 자원의 갈림길에서 커피찌꺼기가 제대로 경로를 찾았으면 좋겠네요.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친환경적 커피는?… 봉지 > 캡슐 > 드립 > 에스프레소

 

주부 박하은(38·여)씨는 신혼 때 선물받은 캡슐커피 머신을 몇번 쓰고는 찬장에 그냥 보관 중이다. 캡슐 성분인 알루미늄이 환경에 매우 안 좋다는 기사를 본 이후부터다. 그는 “캡슐커피에 비하면 번거롭지만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훨씬 덜할 것 같아 이제는 커피머신을 사용한다”고 말했다.

 

실제 미국이나 유럽 환경단체 중에는 캡슐커피를 1회용 플라스틱컵 못잖은 환경파괴 주범이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하지만 커피콩을 재배해 캡슐이나 분말 형태로 제조해 최종 잔재물을 버릴 때까지 모든 과정을 평가하는 ‘생애주기평가(LCA·Life Cycle Assessment)’를 하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주장도 있다.

 

최근 미 정보기술전문지 ‘와이어드’에 따르면 알프레드 힐 영국 바스대 교수(화학공학)가 커피 생산 모든 과정을 평가한 결과 환경 영향이 가장 적은 것은 인스턴트 커피로 나타났다. 이어 캡슐커피가 뒤를 이었고, 필터·드립커피는 그다음, 전통적인 에스프레소 방식은 환경에 부담을 많이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힐 교수는 “커피 전 생애에서 온실가스 배출이나 물 사용, 화학비료 사용 같은 환경영향은 커피를 재배하는 과정에서 벌어진다”며 “같은 양의 커피를 내린다고 했을 때 캡슐은 필터나 드립보다 더 적은 양의 커피를 사용하기 때문에 환경영향도 적다”고 전했다.

 

2016년 스웨덴왕립공대(KTH) 연구진도 캡슐커피가 5.7g의 커피를 사용하는 데 비해 필터커피는 7g을 쓴다며 작은 차이지만, 연간 전세계적으로 수십억잔의 커피가 소비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라는 연구를 내놓기도 했다. 캡슐을 만들기 위한 알루미늄 추출과정까지 다 따져도 그렇다는 것이다.

 

환경평가 수행기업 콴티스는 2015년 커피 생애주기 평가에서 드립커피는 이산화탄소 196g, 캡슐커피는 198g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고 밝혔다. 드립커피의 영향이 적은 것 같지만 보고서는 ‘한잔의 커피를 내리기 위해 커피나 물이 정확히 필요한 만큼만 쓰였을 때’라는 전제와 함께 “현실적으로 드립커피는 이러한 조건을 맞추기 어려워 낭비되는 커피량에 따라 배출량이 더 늘어날 수 있다”고 전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그렇지만 캡슐에 쓰이는 플라스틱이나 알루미늄은 제대로 분리수거되지 않으면 수백년간 썩지 않고 쓰레기로 남는다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이 때문에 일부 캡슐커피업체는 캡슐 회수 시스템을 부분적으로 도입하고 있지만 큰 성과는 보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회수 자체도 번거롭지만, 불순물이 묻은 포장재는 재활용이 어려운 것처럼 커피 캡슐 역시 사용 후 남은 커피찌꺼기를 제거하고 버려야 하기 때문이다.

 

청양=윤지로 기자 kornyap@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뉴진스 민지 '반가운 손인사'
  • 뉴진스 민지 '반가운 손인사'
  • 최지우 '여신 미소'
  • 오마이걸 유아 '완벽한 미모'
  • 이다희 '깜찍한 볼하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