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핵 문제가 북·미 대치로 잠시 쉬어가는 동안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는 미·중 경쟁이 최고조로 끓어오르고 있다. 미·중 무역전쟁이 몇 개월째 달아오르고 있으며, 지난 주말 싱가포르 아시아안보회의(샹그릴라 대화)에서는 안보 문제를 놓고도 미·중이 대립했다. 이 같은 국면에서 동남아 국가들은 변화된 환경에 적절하게 대응하고 있지만 한국은 전략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일 폐막한 싱가포르 샹그릴라 대화에서 아시아 국가들은 미·중 무역전쟁에 대한 불만을 표출했다. 리셴룽 싱가포르 총리는 개막 연설에서 “미국은 중국의 부상을 받아들여야만 한다”고 촉구했다. 미얀마 국방장관도 “(일대일로 사업 등) 중국의 사업에 대해 미국이 이야기하는 ‘빚-함정 외교’는 과장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시아 국가들의 이 같은 성토는 미국의 기대에 어긋났다는 게 외신의 분석이다.
이재현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5일 “아시아 국가들은 미·중 경쟁에서 적당히 균형을 유지하면서 생존과 자국 이익에 가장 이상적인 조합을 찾고 있다”고 설명했다.

‘화웨이 제재’에 나선 미국이 한국에 은근히 화웨이 배제를 압박하고 있고, 한국인 중국 체류 비자 발급요건이 강화되는 등 우리는 미·중 경쟁 구도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지만, 동남아 국가들은 은근히 이 기회를 이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중국 선전시는 베트남 북동부 하이퐁 지역에서 중·베트남 경제무역협력구를 운영하고 있는데, 무역전쟁 이후 중국 기업이 다수 이동하면서 오히려 해당 지역은 호황을 맞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현 연구위원은 “전통적으로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국가들은 어느 쪽 편도 들지 않는다”며 “미·중 경쟁을 적당히 이용하면서 자기편으로 끌어들일 때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폭이 가장 넓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세안에 정통한 한 정부관계자는 “동맹으로 미국과 묶여 있는 우리와 동남아 국가들의 전략은 다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미·중 대치는 태평양지역에서 향후 몇십년을 주도할 이슈이기 때문에 발빠른 대처와 전략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아세안 국가들과의 협력이 대안 중 하나라고 보고 있다.
홍주형 기자 jh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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