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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환경 생각하면 고기 ‘못’ 먹죠”…채식의 세계 [S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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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5-25 19:00:00 수정 : 2023-12-10 16: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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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 활용 소시지, 가지로 만든 스시… / 채식 날로 진화… 관련 인구 급증

“이것도 콩으로 만든 거예요?” “네.”

 

지난 18일 오전 서울 은평구 불광동 서울혁신파크 앞. 부스 수십개가 빼곡히 들어선 ‘제6회 비건 페스티벌’ 행사장에서는 이 같은 문답이 쉴 새 없이 오갔다. 핫도그와 치킨, 떡볶이, 파스타 등 여러 먹거리들의 내음이 행인들의 발길을 끌었다. 여느 축제와 다른 점이라면 모든 메뉴 앞에 ‘비건’이라는 단어가 들어갔다는 점이다. 대기자만 10명 넘게 줄지어 있던 핫도그 부스에선 콩으로 만든 소시지를 넣은 핫도그를 맛볼 수 있었다. 고기로 만든 소시지처럼 육즙이 나오는 건 아니었지만 먼저 알고 먹지 않는 이상 ‘보통’ 핫도그와의 차이를 못 느낄 정도였다. 비건 스시 부스에선 해산물이 아닌 가지나 절인 토마토 등을 활용해 만든 스시가 눈에 띄었다.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비건 먹거리를 구경하던 다양한 연령대의 참가자들은 각자 준비해 간 접시에 음식을 담아 맛보기도 했다. 여기저기서 놀랍다는 반응이 터져나왔다. 먹거리뿐만 아니라 가방이나 비누, 동물사료 같은 비건 제품들도 주목을 받았다. 이날 비건 페스티벌 현장에는 주최 측 추산 1만2000여명이 몰렸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채식이 하나의 생활 양식으로 당당히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동물성 식품을 전혀 섭취하지 않는 비건까진 아니더라도 유제품을 먹는 ‘락토’와 달걀 등을 먹는 ‘오보’, 해산물까지는 먹는 ‘페스코’, 상황에 따라 육식을 하지만 가급적 채식을 추구하는 ‘플렉시테리언’까지 단계별로 다양한 유형의 채식이 존재한다.

 

◆규모 아직 작지만 꾸준히 성장

 

국내 채식 시장 규모는 여전히 그리 큰 편이라고 할 순 없지만,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24일 한국채식연합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채식 인구는 전체 인구의 2~3%인 100만~150만명으로 추산된다. 10년 전인 2008년 15만명과 비교해보면 10배 가량 는 셈이다. 이처럼 채식 수요가 늘면서 관련 서비스들도 인기를 끌고 있다.

 

2012년 7월 12일 개설된 네이버 카페 채식공감의 월별 방문자 수는 올해 들어 배 이상 증가했다. 지난해 내내 1000∼2000명선에 머무르다 올해 1월 3786명, 2월 4509명, 3월 5250명, 4월엔 7351명으로 급증한 것이다. 이 카페의 월별 가입자 수 역시 지난해 내내 두 자릿수였다가 작년 12월부터 계속해서 세 자릿수를 기록하고 있다.

 

채식 메뉴가 있는 음식점을 소개하는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앱) 채식한끼에 등록된 식당 수는 지난해 3월 약 300곳에서 올해 5월 1700여곳까지 늘었다. 2016년 5월 처음으로 열린 비건 페스티벌의 참여 인원과 참여 부스 역시 1회에 각각 1500명, 60개였던 것이 회차를 거듭할수록 늘어나는 등 지속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관련 상품도 인기를 끌고 있다. 미국 대체육류 브랜드 비욘드미트와 독점계약을 맺은 동원F&B에 따르면 지난 3월부터 이달까지 국내에서 팔린 비욘드미트는 5000여팩에 달한다. 동원F&B 관계자는 “세계적으로 채식 시장 규모가 커지고 있는데, 국내 시장 역시 수요가 분명하다고 판단해 선제적으로 투자에 나섰다”고 전했다.

 

 

◆그들이 채식을 시작한 이유는

 

채식주의자들은 어떤 계기에서 채식을 시작하게 됐을까. 각자의 사정이 있겠으나 가장 많이 꼽히는 이유는 동물과 환경 보호다. 1년째 페스코 채식 중이라는 이모(28·여)씨는 “육식을 위해 사육하는 동물들이 엄청난 양의 메탄가스를 배출한다는 얘길 듣고 작은 행동이나마 지구온난화를 막는데 도움이 되고 싶었다”고 말했다.

 

동물권단체 동물해방물결의 윤나리 공동대표는 동물들을 보호하고자 채식을 시작했다. 비건인 윤 대표는 “육식 때문에 잔인하게 도살당하는 동물이 적잖다”면서 “동물 착취를 방지하는 최선의 방법은 채식”이라고 강조했다. 동물해방물결은 이달 2일 서울 도심에서 ‘탈육식’ 캠페인의 시작을 알리는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한국채식연합 이원복 대표는 “채식을 시작한 사람들을 연령대별로 살펴보면 20·30대가 많은데, 이 세대의 특징 중 하나가 소비할 때 실용성 외에 윤리성까지 중시한다는 것”이라며 “다양한 매체를 통해 공장식 축산의 폐해와 잔인한 동물실험 등을 접하면서 육식에 대한 거부감이 커진 점이 영향을 미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채식주의자로 살아간다는 것

 

하지만 아직까지 대한민국에서 채식주의자로 살아가는 건 녹록지 않은 일이다. 무엇보다 채식을 유별나게 보는 시선 때문에 ‘채밍아웃’(채식주의자임을 밝히는 것)을 꺼리게 된다고 한다. 직장인 김모(42)씨는 “다른 사람과 식사할 때마다 불편하다”며 “채식주의자로 사는 건 자발적으로 핸디캡을 껴안는 일”이라고 표현했다.

 

페스코 채식을 하는 강모(27·여)씨는 “가족들마저도 내 앞에서 고기 먹는 걸 어려워 한다”며 “나름대로 신경을 써주는 것일테지만 오히려 더 불편하게 느껴진다”고 털어놨다. 강씨는 “채식 메뉴가 있는 식당이 아직까지 많지 않은 것 같다”며 “남자친구가 ‘먹을 수 있는 게 얼마 없네’라고 할 때면 괜시리 미안해진다”고 말했다.

 

직장에 다니는 채식주의자들이 회식 자리에서 곤혹을 느끼는 경우도 다반사다. 채식 하는 이유를 매번 설명해야 하거나 고기를 먹으라는 압박을 받는 것이다. 채식한끼 박상진 대표는 “전에 회사를 다닐 때 ‘고기 알레르기가 있다’고 말하곤 했다”며 “그런데도 ‘고기를 먹어야 건강하다’고 권유하는 사례가 종종 있었다”고 했다.

 

◆“완벽주의 탈피·제도 고쳐야”

 

이 밖에도 ‘채식 완벽주의’ 때문에 힘들어 하는 채식주의자가 많다. 채식에도 단계별로 여러 유형이 있으나 이를 잘 모르는 주위 사람들이 ‘채식 한다면서 왜 달걀(또는 생선)을 먹느냐’ 같은 질문을 해대는 탓에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한다. 채식주의자 스스로가 완전채식(비건)을 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는 경우도 흔하다.

 

채식 전문가들은 성공적인 채식주의자가 되기 위해서는 이런 완벽주의의 강박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채식한끼 박 대표는 “식습관이 하루아침에 바뀌는 것도 아니고, 추구하는 채식을 못 지켰다고 좌절할 필요는 없다”며 “채식에는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으니 한 끼부터 시작해 점차 늘려나가면 된다”고 조언했다.

 

사회적으로 보다 ‘채식 하기 좋은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한국트렌드코리아 박성희 수석연구원은 “돼지고기를 싫어하는데 회식 때 상사가 삼겹살을 먹자고 하면 곤란하지 않겠느냐”며 “채식주의자들은 일상적으로 겪는 일인데, 우리 사회가 이들을 좀 더 배려해 사회적 다양성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채식영양연구소 이광조 박사는 “유럽 국가들이나 미국은 학교 급식부터 채식 메뉴가 잘 돼있는데, 우리나라 급식은 단백질을 꼭 육류로만 섭취해야 하는 것처럼 운영된다”며 “채식을 하려 해도 못 하게 만드는 제도부터 고쳐야 채식주의자를 유별나다고 보는 시선이나 이들이 겪는 어려움이 개선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주영·박유빈 기자 buen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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