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 종식 이후 각국 군대에서 설자리를 잃어가던 전차가 부활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슬람국가(IS)를 비롯한 테러조직이나 무장세력과의 비정규전이 늘어나면서 수십t에 달하는 둔중한 전차를 일선에서 물러나게 하는 사례가 늘어났다.
하지만 러시아의 크림 반도 점령을 계기로 대규모 전면전 위협이 다시 부각되면서 미국과 러시아, 유럽 국가들을 중심으로 신형 전차 개발 또는 기존 전차의 성능개량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여기에 4차 산업혁명 기술을 접목하려는 움직임도 있어 전차의 시대는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마르고 닳도록 쓴다’…성능개량 추세 확대
미국 등 서방 국가들은 기존 전차의 성능을 높이는 작업에 중점을 두는 모양새다. 미국은 M-1 에이브럼스(Abrams) 전차를 개발한 뒤 성능개량을 통해 M-1A1, M-1A2, M-1A2 SEP를 일선에서 운용해왔다.
1979년부터 생산된 M-1 전차는 105㎜ 포에 가스터빈 엔진을 장착, 시속 72㎞로 달릴 수 있다. 열화우라늄을 이용한 복합장갑과 레이저 거리측정기, 탄도계산기 등을 갖춰 야간에도 전투가 가능하다. 이후 성능개량을 처겨 포탑 전면장갑 두께가 강화됐다. 1986~1992년 생산된 M-1A1은 120㎜ 포와 화생방방호장치(NBC)를 장착, 공격력과 방어력을 높였다. 이같은 성능 덕분에 1991년 1차 걸프전에서 M-1A1으로 무장한 미국 기갑부대는 T-72 전차로 구성된 이라크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둘 수 있었다. 1992년 생산된 M-1A2는 M-1A1에 통합전술지휘체계(C4I)와 전차장 전용 열상 조준기를 장착했다.
최종 개량형인 M-1A2 SEP는 신형 가스터빈 엔진과 컬러 디스플레이, 고속무선통신장치 등을 탑재했다. 복합장갑도 경량화되어 무게도 M-1A2보다 줄어들 예정이며, 내부 장비들을 LCD 디스플레이로 통합해 전차 무게가 1~2t 정도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러시아는 1차 걸프전에서 T-72 전차로 무장한 이라크군이 미군의 M-1A1에 참패하면서 신형 전차 개발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하지만 경제난으로 전차부대가 축소되면서 신형 전차 개발도 어려워지자 기존 전차 개량으로 선회했다. 그 결과물이 바로 T-90 전차다.
1995년부터 생산된 T-90은 러시아 전차 특유의 원형 포탑 대신 서방과 유사한 각진 모서리를 가진 포탑을 장착하고 있어 외형적으로도 눈에 띄는 전차다. 기존과 동일한 125㎜ 포를 사용하지만 5㎞ 떨어진 목표물을 파괴할 수 있는 대전차미사일을 함께 사용해 화력 향상을 꾀했다. 1000마력 디젤엔진을 탑재해 연비를 높였으며, 전장관리체계와 자동추적장치 등을 장착해 전투력을 높였다.
방호 분야에서는 슈토라와 아레나 시스템을 장착한다. 슈토라는 대전차미사일이 날아오면 연막과 레이저 교란 등을 실시해 전차를 보호한다. 아레나는 50m 전방에서 대전차미사일을 요격한다.
T-90을 대폭 개량한 T-90AM은 신형 주포를 탑재해 사거리를 2㎞ 늘렸다. 전용 탄약실을 만들어 탄약과 승무원을 분리, 승무원 보호 능력을 높였다. 1200마력 디젤엔진을 탑재해 기동력을을 향상시켰다.
독일의 경우 1980년대 레오파르트-2 전차를 생산해 운용했지만, 냉전 종식 이후 전차 운용에서 한계를 드러냈다. 당초 레오파르트-2 전차를 대체할 레오파르트-3 전차를 개발할 계획이었으나 냉전이 끝나면서 취소됐다. 레오파르트-2의 성능개량은 A4 수준에서만 계획되어 있었다. 일부 개량이 이뤄졌지만, 장비 교체 대신 기존 장비의 문제점을 개선하는 수준에 그치면서 다른 전차와의 성능 격차가 벌어졌다.
이같은 상황은 2013년까지 계속됐으나, 우크라이나 위기로 독일은 레오파르트-2 전차의 성능개량을 가속화한다. 그 결과 레오파르트-2A7이 등장한다. 레오파르트-2A7은 시가지 전투에 초점을 맞춘 전차다. 지능형 신관을 탑재한 고폭탄을 사용해 매복한 보병부대와 교전할 수 있도록 했으며, 원격사격통제체계를 채택해 승무원이 전차 안에서 기관총을 사용한다. 급조폭발물(IED) 작동을 방해하는 전파교란장비도 탑재했다. 하지만 독일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프랑스와 함께 신형 전차를 개발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도 T-64 전차를 개량해 일선에 배치했다. 우크라이나군은 동부 지역 분리주의 반군 진압 과정에서 180대의 전차를 잃었다. 야간투시장치가 없다보니 러시아의 지원을 받은 반군의 T-72B3 전차에 밀릴 수밖에 없었다. 이에 따라 우크라이나는 위성항법체계와 디지털 무전기, 최신 열영상장비 등을 갖춘 개량형 T-64 전차 100여대를 만들어 육군에 배치했다.
◆2030년대 전장에서 쓰일 전차 개발 ‘윤곽’
기존 전차의 개량과 더불어 신형 전차 개발 작업도 본격화되는 분위기다. 장비 추가 장착을 위한 공간이 부족해 기존 전차의 추가 성능개량이 쉽지 않은 현실을 감안한 조치다.
신형 전차 개발에서 가장 앞선 나라는 러시아다. 러시아는 T-14 아르마타(Armata) 전차를 생산해 장기적으로는 T-72와 T-80 전차를 대체할 예정이다. T-14 전차는 원격조종 포탑에 125㎜ 포를 장착했다. 발사속도는 분당 10~12발이며 최대 사거리는 8㎞에 달한다. 낮에는 5㎞, 밤에는 3.5㎞를 관측할 수 있는 광학 영상장비를 장착했다. 5㎞ 떨어진 곳에 있는 적 전차를 파괴할 수 있는 대전차미사일 발사가 가능하다.
T-14 전차에 맞서 유럽도 신형 전차 개발에 팔을 걷어붙였다. 프랑스와 독일은 지난해 6월 전투기와 전차, 위성, 자주포의 공동개발에 합의했다. 프랑스는 전투기, 독일은 전차 개발을 주도할 예정이다. 프랑스와 독일이 사용할 신형 전차는 2024년까지 독일 주도로 상세 작전요구성능을 설정할 계획이다. 개발이 순조롭게 진행되면 2035년 레오파르트-2 전차를 대체할 것으로 보인다.
새로 개발될 전차는 140㎜ 대구경 포를 장착할 가능성이 있다. 프랑스 방산업체 넥스터는 최근 프랑스 육군의 르클레르 전차에 140㎜ 포를 시험 적용했다. 50t급 전차에 140㎜ 포를 장착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기존 120㎜ 포에 비해 화력이 70% 늘어났다. 반면 시가전에서 사용이 제한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도 있어 실제 적용 여부는 미지수다. 스텔스 설계가 적용된 원격조종 포탑도 거론된다.
우리나라는 K-2 흑표전차와 함께 105㎜포를 장착한 K-1, 120㎜포 탑재 K-1A1 전차와 디지털 전장관리체계, 피아식별장치 및 전후방 감시카메라 기능을 추가한 K-1E1, K-1A2 전차를 운용중이다. K-3라 불리는 차기 전차 개발 필요성도 제기되지만, 본격적인 움직임은 드러나지 않고 있다.
2030년대 이후 등장할 신형 전차는 적외선 탐지장비를 회피하기 위한 스텔스 기능과 초경량, 고강도의 나노복합소재를 적용해 방어력을 높일 것으로 보인다. 레일건을 장착해 유효사거리 및 파괴력 증대를 통한 공격력 강화 조치도 예상된다. 인공지능(AI)에 의한 전투체계 통제 가능성도 높다. 1대의 전차로 다양한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 보편화된 현실에서 미래 전차는 지상전에서 변함없이 핵심 역할을 맡을 것으로 전망된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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