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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안 쓰는 ‘영어강의’…대학평가 노리고 마구잡이 개설

입력 : 2019-05-20 23:00:00 수정 : 2019-05-21 11:4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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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들 부실한 강의 도마에 / 외국인 학생 유치 위해 강좌 늘려 / 서울 주요 대학 강의 5∼40% 차지 / 한국어에 서툰 영어 섞어서 수업 / 유학생들 “내용 알아듣기 힘들다”

“음, 어… ‘언옵트루시브 뉴스(unobtrusive news·언론보도 전까지 알기 어려운 뉴스)’는 트레인(train) 탈선, 지진. 오케이?”

지난 13일 서울 소재 한 대학의 신문방송학 수업이 이뤄진 강의실. 영어로 강의를 진행하던 교수는 전공용어가 나오자 힘겹게 설명을 이어갔다. 나중에는 아예 한국어로 내용을 전달하며 강의를 마무리했다. 수강생 50명 중 교수의 서투른 영어를 신경 쓰는 학생은 한 명도 없어보였다. 학생 대부분이 수업을 아예 듣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학생은 “이 수업은 교수도 학생도 벽보고 자기 할 일 하는 시간”이라며 “교수가 영어를 쓰지 않아 지난해 강의평가 ‘테러’를 받은 이후 바뀐 게 이 정도”라고 했다.

19일 세계일보가 서울시내 대학들을 조사한 결과 2019년 1학기 기준 영어강의 비율을 공개한 4년제 대학 13곳의 평균 영어강의 비율은 19.9%로 나타났다. 시립대와 서울대가 각각 5%와 10%였고 경희대·세종대가 15%, 서강대 18%, 이화여대·동국대가 20%를 영어강의로 채웠다. 또 연세대 32%, 고려대 38%, 성균관대가 40%의 비율로 영어강의를 개설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처럼 국내 대학들이 외국인 학생 유치 및 국제화 등을 내세워 영어강의를 늘리는 데 힘쓰고 있지만 실제로는 영어를 쓰지 않는 등 형식적으로 수업이 진행되는 경우가 많아 학생들이 불만을 호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수도권 내 대학을 졸업한 정모(24·여)씨는 4학년 때 영어로 진행되는 전공수업을 들었을 당시의 경험을 잊지 못한다. 담당 교수는 수업 첫날 학생들에게 “영어로 100%, 한국말로 100%, 반반 셋 중에 골라보라”며 손들게 했다. 정씨는 “학생들이 눈치껏 ‘반반’을 골랐지만 학기가 지날수록 강의는 100% 한국말로 진행됐다”고 했다. 서울의 한 대학에 다니는 중국인 유학생 조단니(23·여)씨는 “유학생에게 상대적으로 수월한 영어 전공강의를 찾아 신청했는데 교수 발음을 알아듣기도 어렵고 수업 중 한국어를 많이 쓴다”며 “결국 두 외국어로 두 번 공부하게 됐다”고 토로했다. 교수들이 안 되는 영어로 애써 영어 강의를 하는 이유는 세계 주요 대학평가기관의 순위 평가에 주요 대학이 목을 매는 현실 탓이다. 대학평가기관은 국제화 지표를 평가점수에 반영한다. QS아시아대학평가는 국내로 들어온 교환학생 비율 점수 등 총점의 10%를 국제화영역 점수로 반영한다. 타임스고등교육(THE) 대학평가의 경우에도 캠퍼스 내 외국인 학생 비율 점수 등이 총점의 7.5%에 반영된다. 구정우 성균관대 교수(사회학)는 “영어강의로 유학생을 끌어와야 각종 대학평가에서 높은 국제화점수를 받는다”며 “(영어강의 부실 문제는) 영어강의 수 늘리기에만 집중한 대학에서 전반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했다.

무작정 영어강의를 개설하는 것보다는 학내 구성원이 모두 필요로 하는 내실 있는 영어강의 수업을 늘려가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서울대 곽덕주 교수(교육학)는 “국제화가 불가피한 흐름이라면 교수가 한국학생과 외국학생들이 모두 영어로 상호작용할 수 있는 강의구조를 의식적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광주교대 박남기 교수는 “대학을 평가하는 기관들이 실속있는 영어강의를 만들도록 평가지표를 바꿔야 한다”며 “영어강의가 필요한 교과인지, 수업 듣는 외국인 학생 비율은 어느 정도인지 등을 평가하는 지표가 추가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남혜정·곽은산 기자 hjna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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