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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만송이 꽃밭속을 거니는 황홀경 피노 누아 [최현태 기자의 와인홀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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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5-18 11:00:00 수정 : 2019-05-18 01: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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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물방울 1권 학산문화사

“꽃밭이야”. 일본 아기 다다시의 와인만화 신의 물방울 1권에서 소믈리에 수습생 시노하라 미야비는 손님이 남긴 와인 한 모금을 마신 뒤 이렇게 표현하며 황홀경에 빠집니다. 누구나 알지만 마셔본 이는 거의 없는 세계에서 가장 값비싼 와인 프랑스 부르고뉴의 로마네 꽁띠(Romanee Conti)를 생산하는 도멘 드 라 로마네 꽁띠(Domaine de la Romanee Conti)의 리쉬브루(Richebourg) 1999년산. 신의 물방울 속 저명한 와인 평론가 칸자키 유타카가 2003년 발간한 프랑스 와인이라는 책에 리쉬브루 1990년산이 18만엔으로 등장는데 와인서처닷컴(wine-searcher.com)을 검색하면 리쉬브르 1999년산은 현재 평균가격이 600만원 정도입니다. 로마네 꽁띠는 보통 수천만의원을 호가하는데 지난해 10월 뉴욕 소더비 경매에 나온 로마네 꽁띠 1945년산 한병은 55만8000달러(약 6억6400만원)에 달했답니다. 당연히 기자도 로마네 꽁띠를 마셔보지 못했고 아마 죽을때까지 구경조차하기 힘들겁니다. ‘누구나 알지만 마셔본 이는 거의 없는 와인’이라는 말이 실감나네요.

신의 물방울 1권 학산문화사

꽃밭의 한가운데 있는 것 같다는 미야비의 표현처럼 부르고뉴 프리미엄 피노누아 와인을 대표하는 두드러진 캐릭터중 하나는 화려한 꽃향입니다. 리쉬브르는 100가지 꽃향으로 표현되는데 잘 만든 마을단위 피노누아는 처음에 이런 꽃향이 아주 우아한 향수처럼 은근하게 퍼지다가 시간이 좀 지나면 영화속 팜므파탈처럼 아찔할 정도로 강렬하게 오감을 자극합니다.

 

최고급 피노 누아 와인이 생산되는 프랑스 부르고뉴는 모든 포도밭에 등급이 매겨져 있답니다. 그만큼 매우 철저하고 세밀하게 포도밭의 품질을 관리한다는 얘기죠. 레지오날(Regional), 꼬뮌(commune·마을), 프리미에 크뤼(1er Cru), 그랑크뤼(Grand Cru) 등 4단계로 나뉘는데 가장 등급이 낮은 레지오날이 제일 넓은 52%를 차지하며 24개 지역으로 나뉩니다. 이어 쥬브레 샹베르땡(Gevrey Chambertin), 샤샤뉴 몽라셰(Chassagne Montrachet)  등으로 불리는 등 꼬뮌 단위 포도밭이 37%를 차지하며 꼬뮌은 44개입니다. 이 꼬뮌의 포도밭은 위치, 경사도, 방향, 햇빛 노출, 토양 등에 따라 프리미에 크뤼(9.6%·600여개) 또는 그랑크뤼(1.4%·33개)로 분리됩니다. 와인 병에 ‘쥬브레 샹베르땡 1er Les Cazetiers’라고 적혀 있으면 꼬뮌 단위 쥬브레 샹베르땡 마을의 프리미에 크뤼급 포도밭에서 생산된 와인이고 구체적인 포도밭 이름은 ‘레 까제티에’로 이해하면 됩니다. 그랑크뤼급은 이처럼 면적이 적은만큼 생산량도 얼마안돼 가격이 비쌀 수 밖에 없습니다.

칠레 주요 와인산지

그렇다면 칠레 와인은 어떨까요.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와인 칠레 와인인데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저가 와인 이미지를 떠올립니다. 진하고 달콤한 과일향과 높은 알코올 도수, 다소 거친 카베르네 소비뇽, 까르미네르 등의 레드 와인으로 대표적이죠. 날씨가 더워 포도가 과숙하면서 일명 ‘찐득이’와인이 주를 이루는 것으로 알고 있답니다. 부르고뉴 프리미엄 피노 누아에 맛들린 소비자라면 칠레 와인쪽으로는 눈길도 안줄 정도죠.

만년설로 뒤덮힌 안데스 산맥
태평양의 험볼트 해류와 안데스에서 내륙으로 찬 공기를 불어 넣어주는 칠레 와인 산지

하지만 칠레의 지형과 기후는 매우 톡특합니다. 지도에서 보듯 칠레 국토는 세계에서 가장 길고 날씬하게 남북으로 뻗어 있습니다. 길이 4300㎞, 평균 넓이 177㎞에 달하는데 덕분에 기후와 자연환경이 매우 다양합니다. 북쪽은 지구상에서 가장 메마른 곳으로 불리는 아타카마 사막, 동쪽은 험준한 안데스 산맥, 남쪽은 파타고니아 빙하 지대, 서쪽은 태평양 및 코스탈 산맥 등 천혜의 자연 장벽으로 둘러싸여 있답니다. 이런 독특한 자연환경 덕분에 토양과 작물이 필록세라 같은 병충해에서 잘 보호됩니다. 특히 안데스 산맥 만년설이 녹아 흘러 내리는 깨끗한 물과 오염되지 않은 토양 덕분에 최고급 품질의 포도가 생산됩니다.

와인메이커 프란시스코 배티그(Francisco Baettig)
에라주리즈 비네도 채드윅, 돈 막시미아노, 카이,쿰브레
세냐

그렇다면 부르고뉴 그랑크뤼에 필적할 만한 토양이 칠레에도 있지 않을까요. 이런 궁금증을 갖고 칠레의 한 와이너리 오너가 유명 양조가인 프란시스코 배티그(Francisco Baettig)와 함께 최고의 토양을 찾는 탐험에 나섭니다. 바로 4명의 칠레 대통령과 2명의 대주교를 배출한 칠레 최고의 명문가 에라주리즈(Errazuriz)의 에두아르도 채드윅 에라주리즈(Eduardo Chadwick Errazuriz) 회장입니다. 가문의 창시자에게 헌정하기 위해 이름을 따서 만든 에라주리즈 대표와인 돈 막시미아노(Don Maximiano)와 제임스 서클링이 칠레와인 최초로 100점 만점을 부여한 비네도 채드윅(Vinedo Chadwick), ‘미국 와인의 아버지’ 로버트 몬다비(Robert Mondavi)와 의기투합해 1995년 칠레 최초의 합작와인으로 탄생한 세냐(Sena) 등 칠레와인의 끊임없는 혁신을 이끈  칠레 대표 와이너리랍니다.

에두아르도 채드윅 에라주리즈 회장

2016년 채드윅 회장을 첫 인터뷰한 기자는 최근 다시 한국을 찾은 채드윅 회장을 만났습니다. 에라주리즈의 혁신은 지금도 계속되고있더군요. 그의 손에 들린 와인은 의외로 화이트 와인인데 에라주리즈가 칠레 아콩카쿠아 코스타(Acomcagua Costa)에서 탄생시킨 라스 피자라스(Las Pizarras) 피노 누아와 샤르도네입니다. 놀라운 것은 첫빈티지인 2014년산 샤르도네가 제임스 써클링 96점, 2015년산이  98점을 받았습니다. 로버트 파커가 운영하는 와인 애드버킷(Wine Advocate)에서도 95점을 받으면서 화려하게 데뷔했습니다. 피노 누아도 제임스 써클링이 2015년산에 98점, 2014년산에 98점을 부여했고 와인 애드버킷과 와인 스펙테이터(Wine Spectator)에서 동시에 92점을 받았답니다.  

에라주리즈 피노 누아와 샤도네이

 “에라주리즈의 혁신은 늘 진행형이에요. 아콩카구아 코스타는 험볼트 해류가 흐르는 바다와 가장 가까운 와인산지여서 기후가 늘 서늘해요. 특히 쿨클라이밋이 늘 유지되는 고도가 높은 힐사이드중에서 각고의 노력끝에 부르고뉴의 그랑크뤼 포도밭과 떼루아가 유사한 곳을 찾아냈고 이곳에 피노 누아와 샤르도네를 재배하고 있답니다. 포도가 너무 익어버리면 산도가 떨어지죠. 따라서 전통적인 부르고뉴 그랑크뤼 와인처럼 조기 손수확해 좋은 포도송이만을 골라 만드는 와인이에요”.  피노누아는 4개 구획으로 볼칸 포니엔테 (VOLCAN PONIENTE 0.8 ha), 살바도르 (SALVADOR 3.1ha), 퀸초 피자라스 볼카니코 (QUINCHO PIZARRAS VOLCANICO 0.7 ha), 엘 우쵸(EL HUACHO 2.1 ha)입니다. 샤르도네는 페드레갈 노르떼(PEDREGAL NORTE 3.2 ha), 오르노 치코(HORNO CHICO 1ha), 오르노 그란데(HORNO GRANDE 0.7 ha) 3곳입니다.

에라주리즈의 피노누아와 샤르도네가 와인전문가들과 소비자들을 사로잡은 것은 압착하지 않고 포도 무게때문에 자연스럽게 흘러 나오는 최상급 뀌베(Cuvee)인 프리런 주스만 사용하고 20% 정도는 포도송이째 발효하며 프렌치 오크에서 14개월 숙성해  복합미를 더했기때문입니다. 새 오크 사용은 최대한 줄여 너무 과도한 오크향이 묻어나지 않도록 했답니다. 특정구획 포도의 프리런 주스로만 만드니 생산량은 아주 작아요. 연간 1000박스 약 1만2000병만 소량 생산됩니다. 

에라주리즈 샤도네이

피자라스(pizarras)는 스페인어로 편암과 점판암이 섞이 변성암을 뜻하는데 토양 이름을 와인 이름으로 사용해 떼루아를 부각했습니다. 라스 피지라스 샤도네이 2017년은 매우 드라이하고 일조량 좋은 빈티지라 너무 과숙안되도록 조기 수확해 신선함을 유지했습니다. 색깔도 소비뇽블랑 같군요. 상큼한 레몬과 강렬한 감귤류 껍질, 라임, 패션푸르트 등 시트러스 계열의 향이 아름답게 올라옵니다. 해안가에 오는 짭짤한 미네랄과 기분 좋은 산미가 돋보이네요. “새오크를 15%만 사용해 13개월 숙성한 라스 피자라스 샤도네이는 더운 지방에서 절대로 맛볼수 없는 스타일인데 미네랄 캐릭터 뚜렷하게 느껴집니다. 포도나무가 아주 깊게 뿌리를 내리면서 토양의 미네랄을 포도가 잔뜩 머금었기 때문이죠”. 

에라주리즈 피노누아

라스 피자라스 피노 누아(Las Pizarras Pinot Noir) 2017은 한 모금 마시는 순간 부르고뉴에서도 화려함으로 소문난 샹볼 뮈지니(Chambolle Musigny )를 떠올리게 합니다. 영한 빈티지에 오는 향신료의 톡 쏘는 맛이 있지만 숙성잠재력이 뛰어나 시간이 지나면 아름답고 우아하게 변해갈 것으로 기대되네요. 로즈 힙, 야생 라즈베리, 딸기 등 붉은 과일과 꽃잎, 말린 과실향이 다가옵니다. 바다바람을 머금은 듯한 미네랄이 매력적입니다. 모래토양에서 자란 피노 누아는 풀바디의 묵직한 캐릭터를 지니는데 아콩카구아의 점판암은 산도가 좋고 미네랄이 뛰어난 특징을 지니게 된다는 군요.

에두아르도 채드윅 에라주리즈 회장

채드윅 회장이 생각하는 프리미엄 와인이란 무엇일까요. “독특한 테루아 특성에 잘맞는 품종이 어떤 것인지 알아야해요. 토양 특성에 따라 세분화해서 어떤 구획에서 어떤 스타일의 와인들이 나오는지 연구해야합니다. 피노 누아의 경우 섬세함의 정도라든지 숙성잠재력이라든이 이런 조건들을 다 갖춘 포도밭을 잘 선택해서 재배해야 프리미엄 와인을 얻을 수 있답니다”.

 

에라주리즈처럼 칠레 와이너리들이 피노 누아를 본격적인 생산할려는 움직임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비오비오(Bio Bio) 등에서 아주 소수의 와이너리들이 피노 누아와인 생산을 시도하고 있어요. 토양의 특성에 맞춰야 하기때문에 남부 시원한 기후 가진 곳이라던지 아콩카구아 코스타 처럼 태평양 연안이어서 시원한 기후를 가진 곳이라던지 토양이 미네랄을 함유한 곳에서 조금씩 만드는 수준이랍니다. 아콩카구아 코스타는 해발고도가 100~150m여서 그리 높지는 않지만 해류 바로 옆이라 서늘한 기후 유지된답니다”.

에라주리즈 돈 막시미아노
에라주리즈 빌라 돈 막시미아노

채드윅 회장은 돈 막시미아노의 세컨 와인격이라 할 수있는 빌라 돈 막시미아노(Villa Don Maximiano) 2016도 소개합니다. 2년동안 공들여 세상에 첫선을 보인 와인이라는군요. 돈 막시미아노가 소비자가 20만원을 넘기때문에 돈 막시미아노의 캐릭터를 잘 유지하면서도 소비자들이 부담없는 가격으로 즐길수도록 세컨 와인을 만들었다는 설명입니다.  까베르네 쇼비뇽 40%, 쁘띠 베르도 25%, 말벡 20%, 까베르네 프랑 15%를 섞은 보르도 스타일의 블렌딩입니다. 20년이상 장기숙성할수있는 큰 골격을 지닌 돈 막시미아노에 비해서 복합미는 다소 떨어지지만 우아하면서 실키한 탄닌, 신선한 과일향과 향신료향이 도드라집니다. 빌라 돈 막시미아노는 균형미가 잘 갖춰져 오래 숙성하지않고 바로 마실 있다는 점이 장점입니다. 돈 막시미아노를 만드는 포도밭 바로 인근의 힐사이드 빈야드에서 자라는  오랜 수령의 포도나무를 사용합니다. 에라주리즈가 까르미네르 품종을 빼고 만든 최초의 보르도 스타일 와인이며 블랙 커런트, 코코아, 커피, 구운 견과류를 느낄 수 있습니다. 오래 숙성된 와인의 특징인 가죽향도 부담스럽지않게 스며들어있습니다.

 

최현태 기자 htcho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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