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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센병 환자들은 몸에 상처가 나도 통증을 느끼지 못한다. 병 조각이 바닥에 흩어져 있으면 일반인들은 피해서 걷지만 통각이 망가진 한센인들은 그냥 밟고 지나간다. 마침내 발에 피가 나고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지경에 이른다. 그래서 한센인들은 동료 환자 중에 누가 통각을 회복했다는 소리를 들으면 진심으로 축하해준다.

아픔조차 느끼지 못하는 한센인들의 고통을 마음으로 어루만진 이가 육영수 여사다. 육 여사는 생전에 전국의 한센병 환자촌 77곳을 모두 방문했다. 소록도를 찾았을 때는 고름이 묻은 환자들의 손을 얼굴에 대고 환한 미소를 지었다. “저희들이 드릴 것이라곤 이것밖에 없습니다.” 한 환자가 눈물을 글썽이며 붕대를 감은 손으로 사과를 내밀었다. 육 여사는 입고 있던 앞치마로 그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이렇게 소중한 선물은 난생 처음 받아봅니다. 이거 여기서 먹어도 되죠?” 그러고는 사과를 덥석 베어 물었다.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훗날 육 여사가 저격범의 총탄에 맞아 세상을 뜨자 소록도 사람들은 공덕비를 세워 추모했다. 육 여사가 최고의 국모로 국민들의 가슴에 자리 잡은 것은 이런 공감 덕분이다.

공감이란 상대의 생각에 귀를 기울이고 그에게 마음의 주파수를 맞추는 행위이다. 상대와 함께 느끼고 함께 감정을 공유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레몬을 한입 가득 물고 있는 사람을 보고 있다면 막연히 ‘아! 정말 시겠다’라는 생각에 그치지 않고 자기 입에 침이 고이는 것이 바로 공감이다. 남의 딱한 처지를 보고 차마 외면하지 못하는 것도 그의 내면에 공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정치권에 한센인 비하 논란이 뜨겁다. 한 야당 정치인이 방송에서 “상처가 났는데도 고통을 느끼지 못한 채 방치해 상처가 더 커지는 병이 한센병”이라며 문재인 대통령을 한센병 환자에 빗댄 것이 화근이었다. 당사자는 하루 만에 한센인들에게 자신의 부적절한 발언을 사과했다. 그러나 고약한 뒷맛은 좀체 가시지 않는다. 자신의 정의만 믿고 타자의 인격을 짓밟는 폭력이 아직도 곳곳에서 춤을 추는 까닭이다. 정신적 통각장치가 고장난 이들이야말로 진짜 한센병 환자가 아닐까.

배연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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