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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처럼 잘하고 있어요”…유튜브 키즈콘텐츠 속 성 고정관념 심각

입력 : 2019-05-17 10:00:00 수정 : 2019-05-16 19:5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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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노동·화장은 여성의 일로 표현 / 남자 아이에겐 남성성 강요 / 女=핑크·男=파랑…색상도 남녀 구분 / 키즈콘텐츠에 대한 적절한 규제 필요
유튜브의 한 어린이 채널에서 여자 어린이가 아기 돌보는 것을 “엄마한테 배웠다”고 말하고 있다. 유튜브 캡처

#1. “너 아기 돌볼 줄 알아?”

 

지난해 11월 유튜브의 한 어린이 채널에 올라온 영상 속 장면이다. 아빠와 딸이 아기 인형으로 역할극을 하고 있다. 엄마 역할을 맡은 딸이 “엄마한테 (아기 돌보는 것을) 많이 배워왔다”고 말하자, 또 다른 인형으로 분한 아빠는 “엄마처럼 잘하고 있어요”라고 응원한다. 아빠와 딸이 놀이를 하고 있는데도 아기를 돌보는 일이 엄마의 일인 것처럼 보이는 대목이다.

 

#2. 유튜브의 또 다른 어린이 채널에서는 어린 남매가 등장하는데, 가사 노동에 대한 성 역할이 은연 중에 구분되고 있다. 남동생이 “누나 배고파. 뭐 맛있는 거 없을까”라고 묻자, 누나는 “이걸로 맛있는 요리 해줄게”라며 주방도구 장난감으로 요리를 하는 듯한 모습을 취한다. 이 채널은 다른 영상에서도 누나가 남동생에게 먹을 것을 챙겨주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15일 언론개혁시민연대가 공개한 ‘유튜브 키즈 콘텐츠 모니터링 결과 발표’의 사례다. 언론연대가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유튜브 채널 상위 11개를 6개월 동안 모니터링한 결과 상당수의 콘텐츠가 남녀의 성 역할을 구분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가사노동’, ‘화장’은 여성의 역할?

 

언론연대가 모니터링한 키즈 콘텐츠의 상당수는 남녀의 성 역할을 뚜렷하게 구분하진 않았지만, 암묵적으로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드러냈다. 특히 여자 어린이가 등장하는 콘텐츠에서 가사노동은 여성의 일인 것처럼 표현됐다.

 

간혹 남자 어린이가 음식을 하는 경우에는 그것이 ‘특별한 일’인 것처럼 묘사됐다. 한 어린이 채널에서는 남자 어린이가 아빠를 위해 미역국 라면을 끓이는데, 이날이 아빠의 생일이라는 점이 강조된다. 아빠는 아들이 끓인 미역국 라면을 먹으면서 “엄마가 해준 맛이야”라고 반응한다. 엄마가 평상시 집안일을 하는 사람처럼 보이는 대목이다. 

 

색상에 있어서도 핑크색은 여성, 파란색은 남성의 색인 것처럼 표현됐다. 한 어린이 채널에 등장하는 여자 어린이는 핑크색 옷을 입거나 핑크색 장난감을 갖고 노는 경우가 많다. 집안의 가구도 대부분 핑크색이다. 반면 이 채널에 등장하는 아빠는 주로 파란색 옷을 입고 등장한다. 대비되는 두 색상이 마치 여성과 남성을 구분 짓는 듯한 인상을 준다. 

 

최근에는 여자아이가 등장하는 영상에서 화장을 주제로 다루는 경우가 늘고 있다. 한 어린이 채널에서는 엄마가 딸에게 “우리 이제 예쁘게 화장해볼까”라고 말한 뒤 기초화장부터 파운데이션, 립스틱을 바라는 등 실제 화장을 이어간다. 또 다른 채널에서는 엄마가 딸에게 “공주처럼 되려면 먼저 00아. 화장을 한번 해볼까”라고 말한다. 이밖에도 아이가 화장품 장난감을 가지고 화장을 하는 모습을 취하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이 예쁜지를 거듭해서 묻거나, 예쁘다는 말을 듣는 장면이 여러 채널에서 등장하고 있다. 마치 여자 어린이는 예뻐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거나, 화장을 하면 예뻐질 수 있다는 듯한 인상을 준다.

 

◆“사내녀석이 뚝”…성차별은 남성도 피해자 

 

남자 어린이의 경우에는 남성성을 강요하는 경우가 많았다. 한 어린이 채널에서는 좀비를 보고 놀라는 남자 어린이가 울음을 터뜨리자 “사내녀석이 뚝 그쳐”라고 다그치는 장면이 나온다. 마치 남성은 약한 모습을 보여선 안된다고 가르치는 듯한 모습이다. 

 

반대로 남성이 나약한 모습을 보일 때는 웃음소재로 활용되기도 했다. 한 어린이 채널에서 성인 남성이 장난감을 붙잡고 놓지 않는 아이를 끌어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장면에서는 웃음소리가 효과음으로 나왔다. 남성의 경우 여성에 비해 망가지는 역할로 등장하는 경우도 많았다. 

 

이날 모니터링 결과발표에 이어 진행된 토론회에서는 유튜브 속 키즈 콘텐츠에 대한 적절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한국여성민우회 이윤소 미디어운동본부 부소장은 “최근 유튜브에는 여자 어린이를 대상으로 화장을 하는 내용의 콘텐츠가 증가하고 있다”며 “이런 콘텐츠를 본 아이들은 외모를 가꾸는 것이 여성의 역할인 것처럼 생각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 부소장은 “최근에는 어린이들이 유튜브를 보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촬영해서 올리는 경우도 많다”며 “유튜브가 어린이의 놀이문화로 자리매김하는 만큼 이런 콘텐츠의 영향과 방향에 대해 고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시민단체 ‘정치하는 엄마’들의 강미정 활동가는 “유튜브와 같은 창작물에 대한 규제의 필요성이 제기되면 창작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 나오곤 한다”며 “하지만 키즈콘텐츠의 경우 그 대상이 어린이라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부모들이 잠깐의 시간을 얻을 생각으로 아이들에게 유튜브를 시청하게 하지만, 그 사이 아이들은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이 내면화되고 마케팅에 노출되기도 한다”며 “아이들이 진정한 자유나 존엄성을 생각하기도 전에 소비시민으로 커가는 것 같아 걱정된다”고 말했다. 

 

권구성 기자 k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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