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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이 미소지었나요?”… ‘억지 친절’ 강요하는 고객 설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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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5-14 06:00:00 수정 : 2019-05-13 22:0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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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스트푸드업계, 만족도 설문에 / ‘공손했나’ ‘눈 마주쳤나’ 선택지 / 설문 결과 직원 처우와 직결돼 / 감정노동 요구, 인권침해 소지 / 전문가들 “잘못된 관행 바꿔야” / 서울시 올해부터 설문 실태조사

‘웃어주지 않음.’

최근 유명 패스트푸드 업체 중 한 곳인 KFC 매장을 이용한 은지영(29)씨는 할인 쿠폰을 받기 위해 고객만족도 설문조사를 하다 이 선택지를 보고 의아했다. 고객만족도를 위한 일반적 질문이 아닌 직원의 친절함에 만족하지 못한 이유를 구체적으로 묻는 문항이었기 때문이다. 은씨는 “손님에 웃어주지 않는 직원은 친절하지 않다는 말인데 좀 과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같은 문항엔 ‘감사인사를 받지 못함’, ‘무례하거나 불손함’ 등의 선택지도 있었다.

프랜차이즈 패스트푸드 업체가 운영 중인 고객 대상 설문조사가 매장 직원들에 정도가 지나친 감정노동을 조장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런 식의 과잉 친절 요구가 감정노동자에 대한 인권 침해 소지가 있다는 지적까지 나오면서 서울시 산하 연구기관은 고객평가 제도에 대한 실태조사에 나서기로 했다.

13일 세계일보 취재결과 주요 패스트푸드 업체 6곳(맥도날드·버거킹·파파이스·KFC·롯데리아·맘스터치) 중 롯데리아와 맘스터치를 제외한 4곳이 상시 고객 설문조사를 운영하고 있었다.

이 중 버거킹과 파파이스는 직원 친절도를 묻는 문항에서 ‘직원이 “주십시오” 또는 “고맙습니다”와 같은 공손한 말을 쓰지 않았다’, ‘직원이 미소를 보이지 않았고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바로 인사를 받지 않았다’, ‘뭔가 산만한 느낌이 들었거나 전혀 서두르지 않았다’ 등 선택지를 공통적으로 제시하고 있었다. 맥도날드의 경우 직원 응대에 대한 만족도를 물으면서 선택지에 ‘첫 인사 없음’, ‘감사인사 없음’, ‘불친절함’, ‘무뚝뚝함’ 4개 답변을 제시하고 있었다.

정혜선 가톨릭대학교 보건대학원 교수는 “감정노동은 상호적인 것이기에 무조건 웃거나 미소짓도록 강요하는 건 잘못된 관행”이라며 “평가항목에 일률적으로 이런 부분을 넣어서 평가하는 건 검토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대호 서울시 감정노동종사자권리보호센터(감정노동센터) 연구위원도 “친절도를 평가한다면 제대로 된 정보 제공 등이 중심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업계 측은 이런 설문조사는 서비스 개선을 위한 정보로만 활용된다고 강조했다. 버거킹 관계자는 “고객이 버거킹에 대한 평가를 더 수월하게 할 수 있게 하기 위한 장치”라며 “해외 본사에서 전 세계 매장의 서비스 질을 개선하고 발전시켜 나가기 위한 자료로 수집되고 있다”고 말했다. 파파이스 관계자는 “설문조사 문항은 기본적으로 미국 본사에서 지시한 것”이라며 “단지 고객에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활용할 뿐”이라고 했다.

 

매장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설문조사가 감정노동을 강요하는 결과로 이어진다고 호소한다. 설문조사 결과가 직원들의 처우와 직결돼 있어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고 한다. 신정웅 알바노조 위원장은 “감정노동자에 대한 패스트푸드 업계의 고객평가가 지나치게 일방적”이라며 “아르바이트생 입장에선 소명의 기회 없이 결과에 따라 훈계나 징계를 받게 된다”고 토로했다.

시스템상 실제 응대한 아르바이트생을 특정하는 게 가능하기 때문에 설문조사에서 나쁜 평가를 받으면, 사유서를 쓰게 하거나 재계약을 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신 위원장은 “설문조사로 지적받은 아르바이트생이 점장이나 관리자와 사이가 좋지 않은 경우엔 트집이 잡혀 과하게 혼나는 식의 직장 내 갑질로도 이어진다”고 덧붙였다.

서울시 감정노동센터는 올해부터 서비스 업계의 고객 설문조사 실태를 조사할 예정이다. 감정노동센터 관계자는 “실태조사를 통해 설문조사 문항 중 노동자들에게 불필요한 감정노동을 겪게 하는지를 알아볼 것”이라고 말했다.

 

김승환·유지혜 기자 kee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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